봉쥬르, 나폴레옹

(55) 귀족들의 각축전

시조시인 2008. 10. 19. 00:56

(55)

  프랑스에 새로운 공화정부가 세워졌지만, 아직은 튼튼하게 자리를 잡지 못해서 나라 안은 어지러웠습니다. 게다가 지난 시절의 귀족들은 과거가 좋았다며 왕의 통치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사이비 애국자’들입니다. ‘사이비’(似而非)는 ‘진짜같이 보이나, 실은 가짜인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겉은 제법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은 아주 다른 것’을 뜻합니다. 이는 ‘사시이비’(似是而非)의 준말입니다.

그들은 억지춘향이로 지금의 공화정부를 무너뜨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요. ‘억지춘향이’이란, ‘안 되는 일을 억지로 우겨서 겨우겨우 이루어지게끔 만든 일’을 가리킬 때에 쓰는 말입니다. 이는, 고대소설 ‘춘향전’에서 변 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구슬리는가 하면 어르다가 끝내는 핍박까지 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참으로 더러운 ‘축록’입니다. ‘축록’(逐鹿)은, 사냥꾼이 사슴을 �음에 빗대어서 ‘사람들이 정권이나 지위를 얻으려고 서로 다투는 일’을 말합니다.

중국 한나라 때의 일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진희(陳豨)를 고조가 토벌하러 간 사이에, 내통하고 있던 회음후(淮陰候) 한신(韓信)은 서울에서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다가 사전에 들통이 나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 난을 평정하고 돌아온 고조가 이 사실을 알고는 황후인 여후(呂后)에게 한신이 최후에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여후는 한신이 ‘뫼통의 계략을 듣지 않은 게 분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뫼통’이란 사람은 제(齊)나라의 세객(說客)으로, 고조가 항우와 천하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울 때에 제왕(齊王)이었던 한신에게 독립을 권한 사람입니다. 이에, 고조는 뫼통을 잡아들여서 그 사실을 물었습니다. 뫼통이 순순히 시인하자, 화가 난 고조는 당장에 뫼통을 삶아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뫼통은 세객답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조금도 죽임당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었으므로 천하는 모두 이를 잡으려고 쫓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폐하는 훌륭히 그 사슴을 잡으신 거지요. 저 악당인 ‘도척’의 개가 요(堯)나라를 향하여 짖었다고 요나라가 나쁜 건 아닙니다. 개는 주인 외에는 누구에게나 짖는 법입니다.”

앞의 고사 중 ‘진이 잃은 사슴을 천하의 사람들이 잡으려고 쫓는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에서 ‘축록’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쉽게 말해서 ‘축록’은 ‘감투싸움’입니다. 그까짓 ‘감투’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감투’는 한자로 ‘坎頭’ 또는 ‘甘頭’라고 표기합니다. 이는, ‘말총이나 헝겊 등으로 차양 없이 민틋하게 만든 관모’의 하나입니다. 감투는 탕건과 비슷한데, 턱이 없는 차이를 지닙니다. 즉, ‘탕건’(宕巾)은 전날에 벼슬아치가 갓 아래에 받쳐 쓰던 ‘관의 한 가지’입니다. 말총을 잘게 세워서 뜨는데,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졌습니다. 집에서는 그대로 쓰고 있었으며, 밖으로 나갈 때에는 갓에 받쳐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도척’(盜跖)이란 사람은, 중국 춘추시대의 큰 도적입니다. 공자와 같은 시대의 노(魯)나라 사람이지요. 현인(賢人) 유하혜(柳下惠)의 아우인데, 그의 도당 9천 명과 떼를 지어 다니면서 항상 온 나라를 휩쓸었다고 합니다. 그 후, ‘몹시 악한 사람’을 비유하여 ‘도척’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귀족들은 무슨 꼬투리든지 잡아서 각축전을 벌이고자 했으므로, 나라 안의 서민들은 안심하고 일할 수 없었습니다. ‘꼬투리’는 ‘어떤 일이나 사건의 실마리를 가리킬 때’에 주로 사용합니다. 원래 ‘꼬투리’란, ‘콩이나 팥이나 완두 따위의 콩과식물의 씨가 들어 있는 껍질’을 말합니다. 한자로는 ‘협’(莢)이라 쓰지요. 그리고 각축전에서 ‘각축’(角逐)은 ‘실력이 비슷한 사람이나 팀끼리 승리를 위해서 경쟁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래, ‘각’(角)은, 동물들이 서로 뿔을 맞대고 싸우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입니다. 그래서 서로 다투고 겨룬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그런가 하면, ‘축’(逐)은, ‘쫓는다.’는 의미를 지닌 글자입니다. 뿔을 지닌 동물들은 번식기가 되면 서로 뿔을 맞대고 싸우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뿔은 수놈이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그리 싸우는 이유는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추접하게 감투를 얻으려고 싸우는 모습보다, 사랑을 얻으려고 싸우는 모습이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김재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