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오르다가 또 하나의 표지판을 만났다. '해태'라니? 경복궁의 정문 잎에서 본 그 해태상을 말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어느 바위를 말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 곳이 산불이나 산악사고의 지점을 알리는 명칭으로 기억할 뿐이다.
또 내리막 길이 나타난다. 이는 아주 불리하다. 돌아올 때에는 다시 올라와야 하니까. 보기에도 아주 미끄러워 보인다. 이런 곳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한다.
다시 바위 위로 올라서야 한다. 관악산은 유난히 바위가 많다. '불의 산'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그래서 모래도 많고 그 때문에 미끄러지기도 쉽다.
잠시 쉬며 북쪽을 바라본다. 흐린 날씨 때문에 서울 한복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평화로운 모습이다. 모습만 그럴 뿐,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그 끔찍한 '육이오'전쟁을 겪었다. 그 당시에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미아리 쪽에서 쿵쿵 대포소리가 들렸다. 지금도 그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쉬고 있을 뿐이다.
다시 바윗길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극기훈련이다. 하지만 이런 길이라고 겁낼 필요는 없다.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전진해야 한다. "국력은 체력!" 힘차게 나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서는 젊은 등산객들이 믿음직스럽다.
나는 늘 바라보는 관악산이지만 그 기세가 자못 당당하다. 어느 등산객이 말했다. "웬만한 산은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인데 관악산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그럴까? 관악산이야말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온 국민의 산'이다.
다시 바윗길이 나타난다. 그저 앞으로의 전진만 있을 뿐이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쉬지 않고 걷는다면 머지 않아서 목적지에 닿게 된다. 그러나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소나무를 다시 찍었다. 암꽃을 겨냥하여 찍었는데, 잘 나오지 않았다. 소나무 잎은 그 한 묶음이 2개씩이다. 그래서 2엽송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백송은 그 잎의 묶음이 3개씩이고 잣나무는 그 잎의 묶음이 5개씩이다. 그래서 5엽송이라고 하면 '잣나무'를 가리킨다.
관악산에는 아름다운 철쭉류가 피어난다. 벌써 꽃이 피었다가 지고 있다. 그 빛깔이 연분홍이다. 그리고 잎사귀의 돋아남이 색다르다.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눈에 보이기에 우선 찍었다. 아마도 조금 더 높이 오르면 활짝 핀 철쭉꽃을 만날 수 있을 터이다.
조금 더 오르니 적사함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관악산은 겨울이 더욱 위험하다. 그리고 이 곳이 더욱 미끄러운 곳인 성싶다. 그래서 이 곳에 적사함을 설치해 두었을 게다. 나도 몇 해 전의 겨울에 관악산을 오르려고 시도한 적이 있지만 약수터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갔다. 물론, 아이젠(Eisen)을 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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