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장은 작은 운동장만큼 널찍했는데, 그 곳에서 쉬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나도 넓게 기지개를 켜며 사방을 둘러보니 마침 꽃을 가득 피운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갔다. 이 조선소나무는 우리의 나무다. 위의 길쭉한 게 수꽃이다. 건드리니 꽃가루를 내뿜는다. 그리고 귀여운 솔방울도 달려 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조금 내리막 길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평지와 다름없다. 세 등산객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다정하다. 죽마고우일까? 그러나 나는, 비탈길이니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겠다.
사실 여기는 처음 공개하는 나만의 자리이다. 나는 평소에는 이 자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자리를 펼치고 앉아서 시집 등을 읽는다. 하루 종일-. 한여름에 여기에 와서 앉아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솔솔 바람이 불며 귓볼을 간지른다. 소나무 향기에 취해 시를 읽는 재미를 누가 또 알겠는가?
여기는 제2의 내 휴식처이다. 신갈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를 쓴다. 아니, 신갈나무가 나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를 나는 그저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그게 아주 멋진 시가 된다. 보기에도 멋지지 않은가!
또 하나의 팻말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향한 화살표가 연주대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향한 화살표는 사당역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내가 올라온 길 쪽이다. 아직도 산길은 평탄하다.
잠시 쉬며 오른쪽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저 아래 건물들이 보인다. 바로 서울대학교 교정이다.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우리나라의 인재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다시 또 바윗길이 나타난다. 이런 곳을 걸을 때면 아주 조심해야 한다. 잘못 발을 헛딛으면 발을 다치기 십상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만 한다. 그게 얼마나 미안한 일이겠는가.
험한 길을 지나면 비교적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인생도 이와 같아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즐거운 일도 있다. 그래서 인생은 한 번쯤은 살아 볼 만하다. 글쎄, 같은 삶을 두 번 살라고 하면 살 사람이 있을까? 어쩐지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을, 다시 군대를 가라고 하는 바와 같을 성싶다.
험한 바윗길을 지나서 비교적 평탄한 길이 다시 시작된다. 나는 여기에서 하마터면 미끄러질 뻔했다. 조심 조심! 남이 보거나 말거나 나는 조심해서 발을 딛는다. 삶 또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나만의 지족에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바위가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한다. 조심조심 이 바위 옆을 지나면 관악산의 명물 하나가 나타난다. 이 바위가 그 이야기를 지금 건네고 있다.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바위이다. 관악산을 오른 사람이라면 이를 모르면 안 된다. 이 정도의 상식은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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