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탐방

천연기념물 탐방 3

시조시인 2012. 4. 10. 16:14

                                                                                                                  (지목 이정민 촬영)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김 재 황

 

 

 

                                    언제 검은 그림자가 다시 이곳을 넘볼지

                                    푸른 가시 내밀고서 비탈길을 지킨 세월

                                    아무리 깊은 밤에도 잠이 들지 못한다.

 

                                    지금 정자 지붕에는 누가 꿈을 이끄는지

                                    간지러운 입김 자락 그 가지에 감기는데

                                    끝끝내 추운 어둠을 맺고 풀지 못한다.

                                                                          -(천연기념물 제78호)

 

 

강화탐방기

<탐방 제 6>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천연기념수 제78)

0 소재지 : 강화읍 갑곶리 1016

0 지정일 : 1962. 12. 3

0 탐방일 : 2012. 3. 3

갑곶리 탱자나무는 강화도의 國難 克服史와 무관치 않다.

일찍이 고려 때는 쿠빌라이 몽고군이 쳐 들어와서 조정이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펼쳤고, 조선조로 와서 후금(후에 청나라)이 쳐들어온 정묘호란(1627)때는 인조와 조정이 강화로 피난했으며 누루하치 청나라 태조가 직접 쳐들어온 병자호란(1636)때는, 왕비를 비롯한 내명부와 대군 몇몇은 강화로 먼저 피했으나, 국왕과 핵심 신료 들은 적군에 의해 강화로 들어가는 길이 끊기는 바람에 남한산성으로 어가를 돌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거기서 삼전도의 치욕을 겪게 되었다.

그렇듯 강화도는 외침이 있을 경우에 국왕과 조정이 국난을 피할 수 있는 최후의 堡壘로서 요소요소에 성벽을 쌓고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등 要塞化하였다. 성벽 주변에는 외적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하려는 의도로 가시가 억센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조성했는데, 지금 은 무너져서 겨우 흔적만 남아 있지만 그때 심은 탱자나무는 아직도 살아남아 우리 선조들의 國難克服 의지와 힘겨웠던 국토방위 노력의 일면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탱자나무는 온난대성 식물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영호남에 분포하고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서식할 수 있는 北限界地로서 생육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탱자나무 울타리 조성 당시 조정은 강화유수에게 관리책임을 부여하고 그 생육상태를 정기보고토록 했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령은 400년으로 추정되며 根元둘레는1m이고 동서남북으로 길이 2~4m의 가지가 벋어 있다.

(글: 자은 백승돈)

 

                                                                                                                 (지목 이정민 촬영)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김 재 황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잊고 지낸 옛 메아리

                                     낮은 들에 안개처럼 넓게 힘없이 깔릴 때

                                     너 혼자 우뚝한 채로 거센 외침 머금는다.

 

                                     옳지 못한 일들이야 그대로 못 넘기는 듯

                                     보이는 것 모두 콕콕 깨는 아픔을 주느니

                                     너 하나 있음으로써 온 나라가 눈을 뜬다.

                                                                             -(천연기념물 제79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천연기념수 제79)

0 소재지 : 강화읍 화도면 사기리 135-10

0 지정일 : 1962. 12. 3

0 탐방일 : 2012. 3. 3

이 나무는, 강화도 남단 조선말기 큰 선비인 이건창의 생가 부근 도로변에 덩그러니 외롭게 뿌리를 박고 버티고 있는데, 역시 외적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성벽의 가시 울타리 목으로 갑곶리 탱자나무와 동 시대에 심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근원둘레 1m, 동서남북으로 길이 2~ 3m씩 가지가 벋었으나 많이 노쇠하였으므로 수목 외과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 중 용틀임하듯 길게 뻗은 가지는 최근에 枯死단계에 이른 듯싶어 애처롭게 보인다.

역시 국난극복과 국토방위의 소중한 유물로서 天壽를 다할 때까지 잘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탱자나무와 관련된 고사 하나를 소개한다.

南橘北枳(남귤북지)四字成語淮水 남쪽 귤나무를 淮北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는 뜻이다. 사람도 그가 처해 있는 환경 여건에 따라서 하게도 되고 하게도 된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중국 春秋戰國시대 나라의 안영이라는 관리는 용모가 볼품없이 꾀죄죄하고 短軀였지만 智略이 있고 英特하여 국왕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때 나라와 외교문제가 생겨 使臣을 파견하게 되었는데 안영이 그 소임을 맡게 되었다. 안영을 접견한 나라 靈王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볼품없는 외모를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나라에는 인물이 그렇게도 없는가, 당신 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다니!”

그러나 안영은 顔色하나 변하지 않고 泰然히 가로되, “ 우리 제나라에는 외교원칙이 있어서 큰 나라에는 큰 인물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인물을 사신으로 보냅니다. 나는 小人中 小人인지라 귀국에 사신으로 발탁이 되었소이다.” 그때 마침 捕吏가 죄수를 잡아끌고 지나가는 장면이 보이기에 초나라 왕이 포리에게 묻길 어느 나라 백성인고?”하니 제나라 사람이옵니다.”라고 아뢴다. 초나라 영왕이 안영을 돌아다보며 齊人은 도둑질을 잘 하는가?” 하고 詰問하니 안영이 답하기를 南橘北枳라 원래 제나라 백성은 도둑질을 모르는데 땅에 와서 사람이 달라진 듯 하오이다.”

안영은 후일 제나라 재상의 班列에 오른 인물이다.

三國志에도 사마 휘수경선생이 유현덕에게 천거하며 극찬한 인물로 봉룡과 봉추 이야기가 나오는데 봉룡은 제갈공명이고, 그에 버금간다는 봉추는 안영 못지않게 볼품없고 심히 얼굴이 얽기도 한 醜男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듯 예전에는 외모와는 별개의 雄志智略을 품은 인물이 있었는데, 요새는 외모가 받쳐주지 못하면 경쟁력에서 한풀 꺾이고 들어간다 해서 걸핏하면 얼굴을 뜯어고치는 成形수술이 盛行하는 시대가 되었다.

코미디 같은 얘기지만 시중에 5만 원짜리가 귀한 것은,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자들이 마늘 밭이나 양파 밭에 파묻어 둔 것도 있겠지만, 성형외과 의사들이 모두 긁어모아다가 감춰 뒀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화 천연기념수 탱자나무를 설명하다보니 이야기가 엉뚱한 데까지 흘렀다. 소문처럼 그렇게 떼돈을 벌지 못하는 성형의사가 혹시 있다면 미안한 일이다.(글: 자은 백승돈)

 

[探訪別記]

세 번째 천연기념수 탐방은 서울을 벗어나 강화도로 가 보기로 하였다. 탐방에 나서는 33일은 비록 경칩을 며칠 앞둔 봄의 길목이지만 그맘때쯤 의례 찾아오는 심술궂은 꽃샘추위도 없이 和暢하고 溫和하여 나들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3인은 제기동에서 만나 枝木이 손수 운전하는 승용차로, 요즘 시장이 바뀌어 橋脚 개조공사를 하느니 마느니 시비가 붙은 양화대교를 건너고 공항로와 김포 시가를 거쳐서 강화도에 진입하였다. 출발한 지 두어 시간이 더 걸렸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縮小版이다. 先史時代 고인돌의 유적이 있고 國祖 단군왕검의 얼이 서린 마니산 참성단이 있다.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正中間地點으로서 우리민족의 靈山이며 天氣地氣奎集点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高麗시대에는,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그 세력을 떨친 몽고군의 침입을 당해 38년 동안 臨時도읍지로서 대몽항쟁을 펼치기도 하였으며 朝鮮조에서도 후금과 청의 丁卯丙子 兩 胡亂때는 국왕과 조정이 戰亂을 피한 곳이기도 하다.

近世에 와서는 西歐 외세의 침입과 도발에 대항해 힘겹게 抵抗을 했던 戰績地이기도 하다. 그렇듯 강화도는 단순 行樂處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의 受難史를 되돌아보며 국토방위와 국가수호의 의지를 다져 볼 수 있는 국민의 산 교육장으로 인식되고 활용되어야 할 곳이다.

오늘 탐방의 主對象 중 하나인 갑곶리 탱자나무는 강화도 초입 <갑곶돈대> 옛 성곽 터의 비탈에 잘 보존되어 있어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갑곶돈대는 고려 때 대몽항쟁에서 江華海峽을 지키던 주요 要塞로서 대포가 배치된 砲陣地이다.

대포는 바다를 건너서 섬으로 접근하려는 賊船沮止하는 장비인데 彈丸격인 鐵丸爆發性이 없고 다만 적선에 命中시킴으로써 物理的 打擊할 뿐이어서 그 威力이 그리 크지 못했을 듯하다. 역사를 考察해 보지 못했지만 아마 최무선의 화포 발명 이전의 장비가 아닌가 여겨진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도 널리 소개되고 당국에서도 강화 特化 먹거리로 자랑스럽게 弘報하는 <더리미 장어구이>집을 찾아들어가 보았다. 끼니로 먹을 만한 식사 메뉴는 없고 다만 장작불 장어구이가 있다는데, 1인분이 3~4만 원이고 3인이 먹으려면 최소 1kg의 갯장어를 사서 구어야 하며 그 값이 10만 원이라고 한다. 그건 역시 지갑이 두둑한 美食家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의 시가지 중심에 자리 잡은 대중음식점에서 값싸고 푸짐한 음식으로 마음 편히 포식하였다.

新築해 최근 移轉入住하였다는 강화 역사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고인돌공원 내에 세운 박물관은 우리나라 開國 始原부터 청동기시대, 고려, 조선, 근 현대에 이르는 우리 선조들이 남긴 문화재를 통해 오랜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우리민족이 겪은 처절한 수난의 역사를 통해 國難克服國家守護의 의지를 일깨울 국민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장소라고 하겠다.

오늘의 두 번째 탐방목표인 사기리 탱자나무는 강화도 가장 南端에 위치하여 길을 찾아 나서는 데에 애를 좀 먹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만나는 갈림길에서 운전대를 잡은 枝木이 방향감각을 잃지 않고 잘 찾아들어갔고, 또 길에서 만나는 주민들에게 묻고 물은 다음에야 마침내 도로변 바윗돌 무더기 틈에 외롭게 서 있는 그 나무를 찾아냈다.

그 나무와 길 하나 건너 지척거리에는 조선말기 암행어사를 지낸 文章家인 이건창의 生家가 있기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 조선말기 시대의 憂國之士인 매천 황현의 친필로 된 <明美堂>이란 현액이 걸려 있다. 생가는 최근에 復元해 놓았다지만 그 시대 사대부의 단출한 살림살이 모습을 느끼게 한다.

강화도를 오가면서 김포 시가를 지나는데, 그곳에 首都圈 주택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한 지 십여 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마구 파 헤쳐 놓은 어지러운 모습이다. 이왕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도 왠지 무질서하고 亂開發이 된 느낌이 든다. 그에 관한 枝木의 견해를 들어보면 이렇다. 도시개발의 마스터플랜이 없이 허가관청은 허가권을 편의에 따라 즉흥적으로 濫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질타한다.

강화도에서 받은 印象은 의외로 섬이 크고 아직도 개발할 餘地가 많다는 느낌이 든다.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 협력사업 단지를 거기다가 차리면 좋을 거라는 의견을 枝木披瀝한다. 歸京길도 그리 순탄치는 않아 밤이 늦어서야 入京하였고 별미집으로 枝木이 안내한 답십리의 병천순대국집에서 飯酒를 곁들이어 늦은 저녁을 들며 오늘의 강화탐방 성과를 자축하였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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