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목 이정민 촬영)
일산의 송포 백송
김 재 황
무덤을 곁에 두니 삶이 오히려 푸른지
장군 손에 이끌려서 더욱 기개 지녔는지
이 땅을 딛고 선 모습 먼 세월도 누른다.
아이들 아직 어린 조잘거림 듣고 살면
하늘까지 한 가슴에 껴안을 수 있다는 듯
그 팔을 넓게 벌리고 모든 바람 맞는다.
-(천연기념물 제60호)
제 4차 천연기념 노거수 탐방
<탐방 제 8호> 고양 송포백송 (천연기념수 제 60호)
0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산 207번지
0 지정일 : 1962. 12. 3
0 탐방일 : 2012. 4. 7
★ 천연기념수로서의 백송은 이미 제 1차 탐방에서 조계사 경내 <수송동 백송>과 헌법재판소 경내 <재동 백송>을 만난 적이 있지만 또 한 그루의 천연기념수인 <고양 송포백송>을 이번 4차 탐방에서 찾아가 만난다.
★ 樹齡이 250년에서 500년까지로 추정된다는 이 백송은 樹高11.5m에 胸高둘레가 2.9m, 지상 1.4m에서 두 갈래로 갈라졌고 거기서 60cm쯤 올라가 다시 두 갈래씩 갈라져 5~10m의 가지가 이리 저리 고르게 뻗어 있어서 마치 부채 살을 활짝 펼쳐놓은 모양의 울창한 樹形을 갖췄다.
★ 백송은 중국 화북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나 원산지에서도 그리 흔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도 희귀하여 10여 그루가 존재할 뿐이다. 백송은 중국과의 문물 교류를 알려주는 나무로, 역사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한다고 문화재청이 告知하고 있다.
★ 이 백송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紛紛한데 그 하나는 선조 때 鄕民 유하겸이 중국 사절에게서 2그루를 얻었고 그중 하나를 그의 知人 최 모씨에게 주어 그가 조상 묘지 주변에 심었는데 그것이 그 후손인 최씨문중에서 자랑스럽게 여기고 소유 관리하는 오늘의 <송포백송>이라는 것이다.
★ 그런데 동명이인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보다 100여 년 후인 현종~숙종 연간의 실존인물로서 兪夏謙은 1677년에 서장관의 직책으로 중국 燕京을 다녀왔고 그의 묘소와 신도비가 백송의 인근에 있다.
★ 또 다른 說에 의하면 조선 초기 六鎭을 개척한 김종서의 휘하 장수인 최수원이 심었다고도 전한다. 육진 개척 시기는 세종재위 년 동안 1430년대의 일이니 또 다시 일백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렇듯 오락가락하는 由來에 대해 당사자인 <송포白松>公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으니 어리석은 인간은 그저 갑갑할 뿐이다.(글: 자은 백승돈)
(지목 이정민 촬영)
파주 적성의 물푸레나무
김 재 황
아직은 가는 길이 열려 있지 아니한 곳
많은 산이 둘러싸서 아늑하게 놓인 자리
수작골 접힌 자락에 네 숨결이 머무네.
지금은 초봄이라 잎이 피지 않았기에
벌거벗은 네 몸뚱이 바로 볼 수 있었으니
그 모두 우리 인연이 각별하기 때문이네.
-(천연기념물 제286호)
<탐방 제 9호>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 (천연기념수 제 286호)
0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 465번지
0 지정일 : 1982. 11. 4
0 탐방일 : 2012. 4. 7
★ 물푸레나무는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을 파랗게 물들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溫 暖帶性 수목으로서 한국, 일본, 만주 등지에 분포하고, 4·5월에 개화하나 꽃잎이 없고 열매는 9월에 갈색으로 익는다.
★ 이 나무의 樹齡은 150년으로 추정되며, 樹高 15m에 胸高 둘레 2.7m 및 根元 둘레 3.7m의 巨木이다. 줄기가 위로 곧게 자랐고 樹冠이 고루 발달하여 웅장한 느낌을 준다. 그렇듯 물푸레나무로는 드물게 크고 綠陰樹, 亭子木으로 이용되는 등 생물학적 민속적 보존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한다고 문화재청이 告知하고 있다.
★ 물푸레나무는 재질이 굳고 강해 각종 농기구의 손잡이 등 부품으로 이용되고 강원 산간지대 눈이 많이 오는 고장에서는 눈 올 때 신는 신발인 “설피”로 엮는 재료가 된다. 樹皮는 健胃劑, 消炎劑, 收斂劑등 한방 약재로도 쓰인다.
★ 물푸레나무 科에는 ‘개나리’ ‘수수꽃다리(라일락)’ ‘이팝나무’ 등도 그에 속하는데, 그중 물푸레나무를 대표수종으로 呼稱하게 된 것은 이 나무가 우리 생활 속에서 친숙한 때문이다. 농경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농기구의 나무 재료로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재질이 단단해 耐久性이 있는 물푸레나무가 제격이라 하겠다.
★ 이 나무는 말리지 않아도 잘 타고 火力도 좋아 땔감으로도 쉽게 잘려나가, 그런 이유로 老巨樹가 귀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목재 代替材로 PVC, FRP, PE 등 석유화학 제품들이 넘쳐나고, 化石燃料와 전기 에너지로 炊事 煖房을 하는 시절이니 물푸레나무도 弱冠에 伐木당하는 禍를 이제는 免할 수 있게 되었다.(글: 자은 백승돈)
[探訪 別記]
☆ 아직도 썩 물러가기를 아쉬워하는 듯싶은 꽃샘추위가 불과 2~3일 전만 하더라도 강원 산간지역에 폭설을 퍼 부었으나 제 4차 탐방에 나서는 4월 7일은 하늘이 맑고 햇볕도 따스해 완연한 봄 날씨였다. 우리 3인은 역시 제기동에서 만나 枝木이 운전하는 그의 승용차로 시원스레 뚫린 自由路를 달려서 오늘의 탐방지인 고양 일산과 파주 방면으로 향한다.
☆ 첫 번째 탐방목표인 고양 송포백송을 찾는 데는 무던히 애를 먹었다. 차에 裝着된 네비게이터의 도움을 받지만 그 안내가 명쾌하지 못해 엉뚱한 곳을 많이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 일대 산과 들이 도회지로 개발되면서 어쩌다가 듬성듬성 남겨진 자그마한 綠地帶 둔덕을 여러 곳 헛짚었고 주변 상가 店主나 행인들에게 무수히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다.
☆ 그 일대를 빙 빙 돌다가 눈에 띈 <백송초등학교> 교장실을 綠施가 찾아 들어가서 PC 프린터로 出力한 그 부근 시가지 詳細圖面 한 장을 얻었다. 그 도면에 백송의 정확한 위치를 표시해 줌으로써 그것을 들고 수소문 끝에 낯을 가리고 애를 먹이던 백송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천연기념수 송포백송에서 校名을 借用한 게 분명하니 ‘校長이 그걸 모를까 보냐?’라는 綠施의 생각이 適中한 것이다.
☆ 모름지기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이라면 寶物까지는 아니더라도 所重하고 자랑스러운 貴物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관할하는 행정관서나 지역 주민들도 관심과 애착을 가질 만하건만 길 안내 표지판 하나 없이 방치되고 무관심한 듯 보여서 씁쓸한 느낌이 든다.
☆ 백송의 由來와도 有關한 것으로 傳해지고 있는 兪夏謙의 묘지부근에 만두 칼국수 집(☎ 031-913-8940)이 있어서 점심을 먹는다. 이 집의 屋號가 <백송>이어서 혹시 천연기념수 송포백송을 탐방하려는 이가 있으면 이집부터 찾아가 안내를 받는다면 우리처럼 애를 먹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 다음 탐방목표인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를 찾아 길을 나선다.
이미 信賴가 떨어진 네비게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 주민과 행인에게 물어서 가는 데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 軍 部隊 射擊訓鍊場 안에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防護防柵을 넘어 들어가 哨兵을 만나 허락과 안내를 받으려 했으나, 哨所 근무병은 없고 다만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修養館이 인접해 있어 그곳 사람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해 주도록 軍으로부터 위임받고 있는 듯 보였다. 그에게 內諾을 받고 천연기념수의 정확한 위치정보를 얻고 나서 들어가 보게 되었다.
☆ 그 일대는 한국동란 전에는 “수작골”이라는 부락이 들어섰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모두 疏開되었고 殺伐한 군인들 사격훈련장으로 변모하여 황량하고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그러나 地勢가 安易하고 無緣히 펼쳐진 樹海에는 紫色 빛 煙霧가 서려 있어 첫눈에 봐도 마치 武陵桃源景의 느낌이 든다. 군사지역의 規制에서 풀린다면 용인 에버랜드와 동격의 造園이 가능할 것으로 敢히 추정해 본다.
☆ 防柵 初入에서 천연기념 老巨樹에 이르는 길은 길이라고 할 것도 없어 바퀴 차량은 진입할 수도 없고 캐터필러의 無限軌道 장비나 겨우 들어갈 수 있는 險路다. 주변에 잡목이 우거진 가운데 孤高한 姿態로 서 있는 무건리 물푸레나무를 對面하는 첫 느낌은, “아! 우람하구나, 멋있다.”하는 歎聲이 절로 나올 만하다. 이 시기에는 잎이 피지 않은 裸木이지만 잎이 우거지면 可謂 壯觀일 듯싶다.
☆ 수작골 마을이 있던 시절에는 그 주변이 농경지여서 부락민들은 고된 들일을 마치고 그 그늘 밑에서 새참을 먹기도 하고 늘어지게 휴식을 즐겼을 성싶은 정겨운 風光이 떠올라 오늘의 살벌하고 황량한 분위기로서는 今昔之感이 있다.
☆ 귀로에 고양시 소재 <한국농원>을 들렀다. 한국농원은 대형 유리온실을 설치하고 파프리카를 養液栽培하는 곳이다. 애기주먹만한 락울(Rock Wool) 單子에 뿌리를 박고 링겔 營養注射를 맞듯 養液을 공급받아 키 2.5~3m까지 直立해 자라며 울긋불긋한 어른 주먹만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두 棟의 초대형 유리온실에는 그런 모습으로 재배되고 있는 파프리카 草本이 약 15만 주에 이른다고 한다.
☆ 이 농원의 사업주인 이병찬 사장은 우리 3인과 함께 “안암언덕“에서 同門修學한 동기동창으로 동 업계의 선두주자다. 우리에게는 파프리카가 낯설어 국내 소비가 없던 시절에 對日 수출사업으로 기반을 다졌다. 지금은 국내소비도 확대되어 수출을 않더라도 內需市場 공급이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지만 오랜 去來先 과의 信義를 지키기 위해 계속 수출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장이 저녁자리를 마련해 오랜만에 동문 4인이 會同하여 취하지 않을 만큼 기분 좋게 마시며 情談을 나눴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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