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김 재 황
좁아진 하늘만큼 오늘 더욱 젖는 가슴
기지개를 크게 켜니 숨결 소리 들려오고
연초록 고운 잎들이 흐르는 말 보탠다.
아파트 불빛 따라 밤은 한층 짧아지고
낮은 자리 딛고 서니 멀어지는 바람 소리
봄이야 이미 왔어도 옅은 꿈만 집힌다.
(천연기념물 제271호)
[제 5차 탐방]
탐방일 : 2012. 4. 21 (토)
탐방지역 : 서울
<탐방 제 9호>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
0 천연기념물 제 271호
0 소재지 : 서울관악구 신림동 721-2
0 지정일 : 1982.11.4
★ 通常 참나무라고 불리는 樹種은 다양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그리고 신갈나무가 모두 그에 속하는데 오늘 찾아가 만나는 천연기념물인 노거수는 굴참나무에 해당한다. 굴참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줄기에 코르크가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어서 영명으로는 Oriental Cork-Oak Tree라고 불린다.
★ 굴참나무는 잎이 밤나무와 비슷해 좁고 길며 입자루(葉柄)가 있다. 그 열매인 상수리는 도토리보다는 좀 크고 식량사정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救荒 먹거리로 이용되기도 했고, 야생동물들의 주요 먹이가 된다.
★ 참나무科 樹種은 번식력과 성장력이 강해 산간 瘠薄地에서도 잘 자란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한반도 산림수목 遷移 전개과정에서 遷移의 결과에 도달하는 極相에서의 優點種이 소나무 등 針葉수림에서 참나무류의 활엽수로 바뀔 전망이라고 한다. 남산위의 “저 소나무”도 “저 참나무”로 애국가를 바꿔 불러야 할 때가 온다면 “바람서리에도 불변하는 우리기상”은 어찌될 건가 그것이 염려스러워진다.
★ 이 나무의 樹高는 16m, 根元둘레는 2.9m, 동서남북으로 16~20m의 가지가 벋어 老巨樹의 위용을 잘 갖췄다. 이 나무는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귀주대첩의 명장 강감찬 장군(947~1031)이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傳說이 있어 천년 노거수라고도 하나 樹齡 감정결과 250여 년으로 추정된다 하여 그 後繼木이 아니겠는가 여겨진다.
★이 나무는 이 지역이 도시로 개발되기 전인 전통 농경시대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靈驗이 높은 神樹 靈木으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推仰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글: 자은 백승돈)
[탐방별기]
☆ 제 5차 탐방은 벚꽃이 滿發한 여의도나 보라매공원쯤 가서 賞春을 즐기고 겸하여 신림동 굴참나무를 찾기로 하였으나 탐방에 나선 4월 21일은 봄비 치고는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는 雨天이었다. 3인은 전철 2호선 신대방역에서 만나 이미 꽃잎이 모두 날려 버렸을 “벚꽃놀이”는 그만두기로 하고 우산을 받쳐 들고 오늘의 주 탐방 목표인 신림동 굴참나무를 찾아갔다. 우리 3인은 누구 하나 不順한 日氣를 원망하거나 불편해하는 법이 없이 오히려 우리의 全天候 探訪 熱意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서로 激勵하였다.
☆ 이번 탐방에는 綠施의 <상황문학> 同人 윤성호 詩人이 우리의 천연기념 노거수 탐방을 격려하는 뜻에서 동참해 주었다. 윤 시인은 우리 3인과 “안암 언덕”에서 같은 科를 1년 앞뒤로 同門修學한 동창이고 농진청에서 水稻作 분야의 연구관으로 奉職한 농학박사이기도 하다. 노거수의 위치를 綠施나 윤 시인이 대강 알고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고 더욱이 大路에서 그곳으로 접어드는 골목길 입구에 길 안내 표지판도 높직이 달아 놓았기에 관할 행정관서의 배려가 嘉賞하게 느껴진다.
☆ 아파트(건영2차) 단지 입구에도 장대한 느티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있으나 그것은 보호수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은 듯 아무런 표지판도 없고, 團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철책이 둘러쳐진 오늘의 탐방 대상인 굴참나무 노거수가 눈에 들어온다.
☆ 이 지역은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지금은 신림동에 속하나 ‘60년대에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된 이래 도시 재개발이 시작된 2000년대 초까지 낙골 또는 난곡으로 불리던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蘭谷의 지명은 조선중기 광해군 때의 무인 강홍립(1560-1627)이 인조반정으로 권좌에서 내몰려 유배당해 은거하면서 난초를 많이 길렀던 데서 유래한다고 하니 예전에는 이곳이 귀양지가 될 만한 奧地였음을 알 수 있다.
☆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단지를 조성하면서 이 나무 주위를 높게 成土하여 노거수는 우묵한 웅덩이 속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또한 고층아파트가 앞을 가로막아 햇볕을 쬐기도 어려워졌고 더욱이 나무 주변의 공터는 주차장이 들어서서 마구 뿜어대는 매연을 들이마셔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長久한 세월을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激變의 시대를 지내온 老巨神樹는 心氣가 심히 불편해하지 않을까 적이 염려가 된다. 다만 힘겨워 보이는 곁가지 이곳저곳을 원통형 쇠 파이프로 扶腋해 놨고, 우묵한 바닥이 물웅덩이가 되는 것만은 막아 보려고 배수관을 공들여 심어놓은 모양새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 노거수 탐방을 마치고 그 부근의 尹 詩人 저택 3층에 차려진 <문인 사랑방>을 방문하였다. 쾌적하고 격조 있는 분위기 속에, 중후한 질감의 원목 책장에 빼곡히 진열된 많은 藏書와 이 시대에는 보기 어려운 LP/SP음반들, 우아하게 茶道를 즐길 만한 茶禮用品들, 전산장비와 CD류 등은 물론이고, 고품격 오디오 시스템이 특히 돋보인다.
☆ 윤 시인은 自然科學徒이지만 文學과 寫眞, 그리고 音樂에도 造詣가 깊은 다재다능한 才士이고, 특히 音響을 鑑賞하고 耽溺함에는 마니아(mania) 水準이다. 그가 LP음반으로 들려주는 음향은 音癡級의 門外漢이 듣기에도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 그 음향기기 장비가 고도의 음향공학적 所産이어서 하다못해 機器 連結 케이불선이나 스피커 받침대와 그것을 고이는 “슈즈”의 재질도 최상의 음질을 보장하기 위해 특수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제작된 1~2미터의 케이불선이 몇 백만 원짜리가 있다고 하니 이 역시 지식 정보화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싶다. 그 미세한 音響과 音質을 感知하고 耽溺하는 마니아가 있어서 그 분야 첨단기술도 無限 分化發展하는 게 아니겠는가 여겨진다.
☆ 윤 시인의 사랑방에서 나와 3인은 綠施의 고장인 낙성대로 가서 삼겹살집에서 “한 잔”을 들고, 칼국수집에서 “저녁”을 때운 다음, 또 커피숍에서 “후식”하며 그렇게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縱橫無盡 情談을 나눴고 온 종일 줄기차게 봄비가 내리는 날의 제5차 탐방일정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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