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탐방

천연기념물 탐방 8

시조시인 2012. 6. 17. 09:47

[8차 탐방]

0 탐방일 “ 2012. 6. 16 ()

0 탐방지역 : 경기도 양평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김 재 황

 

 

                                       산사를 뒤에 두고 산기슭에 우뚝 서서

                                       긴 세월 부는 바람 큰 가슴에 안고 있다.

                                       비움이 무엇인가를 물소리로 깨달은 듯.

 

                                       마음눈 넓게 뜨고 명상 속에 잠기다가

                                       저 범종 울릴 때면 그 먼 하늘 날았으리.

                                       버리니 가벼워짐을 구름 따라 즐겼으리.

                                                                                                                           (천연기념물 제30호)

 

 

 

<탐방 제 15> 용문사 은행나무

0 천연가념물 제 30

0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

지정일 : 1962. 12. 3

 

천연기념수로서의 은행나무는 지난 6차 탐방 시에 문묘 은행나무를 찾아갔을 때 은행나무의 일반적 특성 등에 관해서는 이미 고찰해 본 바가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에서 1,500년까지로 추정되며 수고 67m에 근원둘레 15.2m巨木으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동양권에서도 최상위권 노거수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은행 열매가 열려 있음으로써 초고령이지만 斷産을 하지 않은 듯해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말기 경순왕(재위 :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이 있고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다가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라서 거목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 밖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정미년(1907) 대일 항쟁을 하던 의병의 본거지가 된 용문사를 왜군이 불을 질렀을 때, 이 은행나무는 불에 타자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나라에 變故가 있을 때에는 그것을 알리는 徵候를 보였다고도 한다.

 

이 나무는 조선조 세종 때 당상관인 정 3품의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고 살아왔는데 현 시대에도 이 나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尊崇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 용문사 올라가는 길목에는 최근(2007)에 이 나무를 기리고 崇慕하는 제단을 조성해 놓았다. 이름 하여 <護國 靈木 銀杏樹 祭壇>이라 했고, 이 제단에서는 이 나무에게 철따라 제사를 드린다고 한다.

 

이 나무 지척 거리에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철탑이 세워져 있는데 그 철탑에는 송전선이나 통신선 따위는 가설되어 있지 않아 그 용도가 무엇인지 의아스러웠다. 공학적 識見이 있는 枝木에게 물으니, 그것이 은행나무의 낙뢰를 막으려는 피뢰침 탑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흔히 노거수가 벼락을 맞아 천수를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중한 은행나무의 安危를 염려해 그런 만반의 조치를 취해 놓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글: 자은 백승돈)

    

 

 

 

  2012년 6월 9일, 세 사람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만나러 갔다. 자은 백승돈 형은 샘골 농원에서 승용차로 직접 용문사로 오고, 나와 지목 이정민 형은 전철 제기역에서 만난 후에 지목 형의 봉고 차를 함께 타고 용문사로 향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용문사에 도착하였는데, 자은 형은 벌써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녹시)

 

 

[탐방별기]

 

8차 탐방은, 이달 중~하순 간에는 우리 3인 각자의 일정 관계로 시간을 맞추지 못하게 되어 前次 설악산 지역탐방에서 1주 간격이지만 좀 앞당김으로써 616()에 양평지역 용문산을 가기로 하였다.

 

綠施枝木은 서울서 출발하고 自隱은 강원도 횡성 샘골농원에서 출발해 용문산 관광지에서 만났다. 봄 가뭄이 극심해 비를 기다리지만 갠 날씨에 간혹 빗방울이 조금 떨어질 뿐이었다.

 

용문산 관광지는 경로우대가 있어서 무료입장인데 이젠 증명서를 내 보일 것도 없이 얼굴만 보고도 그냥 들여보내 준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지만 누가 봐도 틀림없는 늙은이가 다 되어 버린 게 좀 서운하다.

 

관광지 園內에는 고금 시인 묵객들의 크고 작은 詩碑語錄을 새겨 놓은 石碑들이 즐비하다. 그중 다산 정약용의 한시 <望 龍門山>의 번역시를 옮겨본다.

 

아득한 저 용문산 산색이,

아침 내내 나그네의 배()를 비추고 있네.

골 깊어 오직 나무만 보이고

구름 그치자 이어서 안개가 일어난다.

무릉도원이 있는 줄을 진즉에 알고서도

서울 거리와 인연을 끊기 어려워라.

절이 숨어 있는 곳

아름다운 숲과 물을 슬프게 바라보네.”

 

관광지에서 용문사로 올라가는 산길은 우거진 숲속을 걷게 되어 있고 길가 한편엔 계곡물을 끌어다 대었는지 계속 실개천이 졸졸 흘러내리기에 정취를 더한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행락객들이 많아서 건전한 레저 문화를 느끼게 한다.

 

은행나무 탐방을 마치고 천년고찰 용문사에도 들어가서 대웅전과 관음전, 그리고 신축중인 종루도 둘러봤고 물맛이 괜찮은 石間水도 몇 모금씩 마셨다.

 

다시 하산해 관광지 園內에 있는 양평군립 친환경 농업박물관을 들어가 보았다. 양평군이 수도권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청정 이미지가 있어 내친김에 친환경농업을 標榜하는데 이 박물관에서는 印象에 남는 이렇다 할 친환경농업 관련 전시물은 보지 못했다.

 

그보다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양평군 郡誌와 관련된 전시실이다. 그중 양평출신 근현대의 인물로서 <의병장 김백선>에 관해 유의해 봤다. 김백선의 묘소는 청운면 갈운리 6번국도 도로변에 있어 횡성과 서울 집을 오가면서 자주 지나치며 보아 왔다.

 

그는 구한말에 산짐승을 사냥하던 포수 출신으로 동학난(최근 혁명으로 재정립)이 나자 난동자를 토벌하는 데에 공을 세워 조정으로부터 절충장군의 첩지를 받았다. 상민출신으로서는 파격적인 신분상승이 된 것이다.

 

그 이듬해 을미년에 명성황후의 시해 참변이 나자 항일 의병이 도처에서 봉기했고, 김백선도 산포수 400여 명을 규합해 본격적인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유림의 거두 유인석이 이끄는 유생 중심의 의병대에 합류해 선봉장으로서 전공을 세웠고 충주지역 전투에서는 본진의 응원을 받기로 약조한 가운데 전투를 치르다가 본진의 응원이 없어 敗退했고, 본진으로 돌아온 김백선은 응원키로 했던 중군장 안승우에게 칼을 빼어 들고 강력 항의했다.

 

이를 지켜보던 의병대장 유인석이 같은 유림출신 手下 중군장을 두둔하는 마음이 동했던지 大怒하여 일개 포수출신의 무식한 상놈이 분수를 모른다.”라고 一喝하며 그를 공개처형해 버렸다. 김이 過激했던 것인지 유가 偏狹한 것인지는 판단키 어려우나 김백선은 그렇게 虛妄한 죽임을 당했고 그를 믿고 따르던 포수출신 의병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림으로써 유인석 의병대의 존재도 그 후 有耶無耶되고 말았다.

 

김백선의 묘 아래에는 그가 戰場에서 타던 말의 무덤도 함께 있는데 그 말은 주인이 죽어 본가로 運柩되자 멀리 떨어진 戰場에서 집을 찾아 들어왔고 食飮을 전폐하고 3일간 그 주변을 徘徊하다가 따라 죽었다고 한다. 마치 삼국지 관운장의 적토마를 연상케 한다.

 

이 전시관에는 김백선이 친필로 署名이 된 병풍 크기의 詩文인지 語錄인지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筆致豁達하고 流麗하다. 유인석이 꾸짖은 바와 같이 무식한 상놈이 아니었음을 알겠고, 한낱 勇夫로만 여겨 왔던 김백선을 새삼스럽게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박물관에서 <만다라> 전시실도 들어가 보았다.

만다라는 梵語로 둥근 원을 의미한다는데 진리와 우주를 형상화한 도안이다. 사찰의 벽에 장식해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불교미술의 한 장르인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자면 현기증이 날 만큼 미세하고 치밀하고 정교하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색깔로 물들인 모래 알갱이로 한 알씩 짜 맞춤으로써 그런 도안을 만든다. 완성하는 데에 한 3~4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걸 만들자면 고도의 집중력과 예술적 감각이 요구되어 그 과정이 마치 명상 수행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忍苦의 시간을 보내며 다 만들고 나면 스승이 와서 손바닥으로 휘저어 한 순간에 모두 흩어 버려서 虛脫空虛를 느끼게 한다는데 그것도 修練이라고 한다.

 

천연기념 노거수 탐방에 겸하여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끊임없이 여러 가지를 배우고 생각해 본다는 취지에 따라 이런저런 내용의 탐방별기를 적어보게 되었다. 녹시와 지목은 귀경하고 나는 다시 횡성으로 복귀하느라 헤어지지만, 를 운전해야 하는 관계로 즐기는 대포한 잔 없이 로 대신했다. 그러나 오늘의 제8차 양평지역 여행도 의미 있고 유익한 탐방이 되었음을 우리 3인은 공감하였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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