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탐방

천연기념물 탐방 9

시조시인 2012. 7. 10. 13:41

[9차 탐방]    

0 탐방일 : 2012. 7. 7 () ~ 7. 8 ()

0 탐방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김제 봉남면 왕버들

 

                                                                            김 재 황

 

 

                                      드넓은 벌판 위에 장승처럼 서는 마음

                                      철 따라 젖은 바람 온 몸으로 맞았으니

                                      사람들 온갖 짓거리 이미 알고 있겠다.

 

                                      조그만 물소리도 하나하나 꿰고 나면

                                      밤하늘 저 달까지 이야기 벗 되는 것을

                                      사람들 시린 하소연 그냥 들어 주겠다.

 

 

                                                            주: 201277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296

 

 

<탐방 제 16> 김제 봉남면 왕버들

 

0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 296

0 소재지 : 전북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 299-1

0 지정일 : 1982. 11. 4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이고, 한국 일본 중국등 온대지방에 자생한다. 버드나무보다 키가 크고 잎이 넓다. 수형이 수려하고 새 순이 돋고 잎이 피어날 땐 진분홍 빛을 띠어 아름답다. 그러므로 도심지 공원조경수나 가로수로도 제격이다.

 

김제 벌 농경지 사이의 하천 뚝 가에 자라잡고 있는 이 나무의 수령은 500년으로 추정되며 수고 12m 흉고 둘레 8.8m에 가지 뻗음은 동서 20m 남북 19m로 기록되어 있다. 나무 중심부 원줄기는 腐朽되어 없어짐으로써 수형이 좀 꺼벙한 듯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이고, 밑둥치가 뒤틀리고 凝縮된 모습이 오랜 年輪을 느끼게 한다.

 

농경시대로부터 지금까지도 이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신성시되고 왔고 음력 33일과 77일에는 마을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고사를 지내고 전 부락민들이 모여 풍물놀이도 벌인다고 한다.

 

이 나무 앞에 세운 안내판에는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되어 있지 않고 <전북도 기념물>로 되어 있어서 의아스럽다. 안내문의 영문 번역에도 誤記가 있기에 천연기념수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나무에 고사를 지낸다는 문구의 영역에서 “held ad the tree"로 씌어져 있음)

이 나무의 지척 거리에도 용문산 은행나무에서 본 바와 같이 피뢰침 첨탑이 세워져 있어서 소중한 노거수를 낙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관리당국의 노력이 가상하게 느껴진다.

이 나무로부터 400~500m 떨어진 마을 안쪽에 또 한그루의 울창한 巨木이 눈에 띄므로 농로를 따라 찾아가 보니 그것은 수령 200~300년 쯤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였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보호수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전통 있는 농경지대에는 부락마다 성황수나 정자목이 있을 법한 일이어서 그렇게 이해하고 돌아섰다.

                                                                 (글: 자은 백승돈)

 

 

 

                                                 (사진: 지목 이정민 촬영)

 

 

 

                                             김제 봉남면 느티나무

 

                                                                   김 재 황

 

 

                               마을의 지킴이로 긴 세월을 살았으니

                               힘든 삶 이야기들 오죽 많이 들었을까

                               그렇게 썩은 가슴에 돌 하나가 생겼으리.

 

                               널따란 그늘 펴고 사람들을 끌었으니

                               뜨는 달 웃음빛에 어찌 소원 없었을까

                               그래서 동아줄 묶고 모두 손을 모았으리.

 

 

                                                주: 201277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280

   

 

<탐방 제 17> 김제 봉남면 느티나무

 

0 지정번호 : 천연기념물 제 280

0 소재지 : 전북 김제시 봉남면 행촌리 230-2

0 지정일 : 1982. 11. 4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일본 대만과 중국 등지의 온대지방에 분포하는 낙엽 활엽 교목이다. 가지가 사방으로 고르게 퍼져서 울창하고 둥근 樹冠을 형성하므로 넓은 그늘을 지어서 쉼터를 제공하는 정자나무 역할을 한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기에 오랜 전통이 있는 마을마다 성황목이나 당산나무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넓은 김제 벌판을 배경으로 풍채 있게 우거져 자리 잡고 있는 이 나무의 수령은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수고 15m 흉고 둘레 8.5m의 우람한 노거수로서 이 마을의 守護神樹로 여겨진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엔 부락민들이 제사를 드리고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도 벌인다고 한다.

 

특히 이 나무의 뿌리 뻗음이 壯觀이어서 사방으로 꿈틀거리며 땅 속으로 파고 든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모습을 표현하는 用言으로 强忍” “不屈” “凜然그리고 힘의 蘊蓄등을 떠 올려 보지만 그 모든 것을 합한 그런 모습이다. 이 나무 옆에는 높고 널찍한 정자가 세워져 있는데 우리가 찾아간 그 시간에도 村老 몇 분이 모여앉아서 한담을 즐기고 있었다.(글: 자은 백승돈)

 

 

*천연기념물 강력 추천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김제 망해사 팽나무

 

                                                                   김 재 황

 

 

                            갯벌을 만지듯이 앉아 있는 절이 한 채

                            그 낙서전 안뜰에서 한 쌍 인연 맺었는데

                            밤낮을 나눈 이야기 이리 끝이 없는가.

 

                           스님은 염불 외고 두 나무는 손을 잡고

                           멀고 긴 길 걸을수록 넓고 깊게 이룬 믿음

                           서로를 아끼는 마음 아직 탑을 쌓는가.

 

 

                                           주: 201277일 촬영

                                                      도지정 기념물 제114

 

 

<탐방 제 18> 김제 망해사 팽나무

 

0 지정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 114

0 소재지 :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신포리 1004

 

팽나무는 낙엽 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 다음으로 흔한 정자나무의 수종이다. 이 나무를 두고 부르는 이름도 자단수, 포구나무, 청단, 박자수, 달주나무, 편나무 등 異名別名이 많다. 줄기는 잿빛으로 미끈하고 잎은 장타원형으로 互生하며 꽃은 5월경 어린가지 잎겨드랑이에 노랑 빛깔로 핀다. 열매는 처음엔 등황색이다가 익으면 까맣게 변하는데 새들의 먹이가 된다. 樹皮와 잎은 약재로 쓰이고 특히 여름에 채취하는 나무껍질에는 사포닌과 알칼로이드 성분이 있어 말려두고 다려 마시면 폐의 기능을 좋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望海寺 팽나무는 아직 천연기념물로는 지정되어 있지 않고 단위기념물로 되어 있으나 천연기념물로 승격시킬 만한 由緖도 있는 노거수이다. 천년고찰 망해사(671년 신라시대 창건) 경내에 조선왕조 중엽, 전설적인 고승 진묵대사(1562-1633)法堂 居所樂西殿을 지으면서 그 뜰에 두 그루의 팽나무를 심은 것이라 한다. 낙서전 전면의 좀 큰 나무(수고 21m)할배나무, 거기서 바다 쪽으로 조금 비켜 서 있는 작은 나무(수고 17m)할매나무로 친근감 있게 불리어지고 있는데 이 두 나무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 나무를 심었다는 진묵대사에 대한 奇想天外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중 두어 가지를 소개한다. 그가 어려서 출가해 동자승으로 있을 때 주지스님의 분부에 따라 羅漢 神將에 향불을 사르는 일을 맡아 하는데 神將이 주지 스님의 꿈에 나타나 부처의 焚香使役을 감당키 송구스럽다고 하소연하더라는 것이어서 그가 生佛現身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자라면서 더욱 총명하고 영특하여 儒生과도 교분을 맺으며 그에게서 儒敎 經典을 빌려 보는데 십여 권의 경전을 一瞥하고 모두 暗誦하더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 번은 川邊에서 川獵꾼들이 물고기를 잡아서 노구솥에 천렵 국을 끓이는데 그곳을 지나던 진묵스님이 입맛을 다시며 솥을 들여다보니 짓궂은 천렵꾼들이한 사발 퍼주랴?’하였다. 스님은 옳다구나 하고 펄펄 끓는 노구솥을 들어서 그 국을 들이마셔 버렸다. 놀란 천렵꾼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奇行은 계속된다. 스님은 그 옆 물웅덩이에 엉덩이를 까고 들어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니 항문을 통해 물고기가 줄줄이 빠져나와 펄떡펄떡 헤엄을 치는데 다만 그 중 한 마리는 꼬리가 없어 뒤뚱뒤뚱 하기에 이상히 여기고 노구솥을 들여다보니 솥바닥에 물고기 꼬리 하나가 눌어붙어 있더라고 한다.

 

진묵대사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육식도 즐겼다는데 술을 穀茶, 해산물인 굴을 石花라고 칭했다. 그 말들은 그로부터 由來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직후 포로 송환을 교섭하러 일본에 건너가서 와 담판을 버리던 유정 송운대사의 奇事異蹟에 대해서는 널리 잘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같은 시대의 진묵대사도 그에 못지않은 道力 높은 高僧이었음을 알 수 있다.(글: 자은 백승돈)

 

 

[ 탐방별기 ]

 

9차 탐방은 오랜 가뭄 끝에 비다운 비가 흡족히 내림으로써 전국이 완전 해갈되었고 다시 날이 활짝 갠 77~ 8일 양일 간에 전북 김제 지역으로 여행하는데 이 지역 천연기념수 탐방과 겸하여 금산사 입구 금풍저수지 부근의 <동심원>을 방문키로 하였다. 동심원은 <東谷 宋在郁>이 사재로 세운 사설 소공원이다. 그는 198711월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호적을 독도에 올려놓은독도호적 제1으로 사회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동곡은 녹시와 나와 함께 정동 배재학당에서 동문수학한 고교 동창이다. 아직도 公私多忙한 그가 시간을 내기에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으나 제기동 우리의 집합 장소에 그가 나와서 우리와 동행하게 되었다. 녹시는 그간 그와 交遊가 있었겠지만 나는 수 십 년 만에 재회하는 것인데, 그 옛적 俊秀美靑少年의 모습이 지금은 重厚老紳士로 변했으나 그 면모의 바탕은 그대로여서 곧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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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 위쪽에 있는 동심루 

가장 위쪽의 국토회복기원비 

배재학당의 세 친구. 중앙 동곡 


 

지목의 차를 합승하고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 간의 新開 고속도로를 달려 김제에 당도하여 우선 동곡의 동심원을 방문하였다. 금산사 입구, 금평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帝妃山 자락에 자리 잡은 同心圓Full Name<東 同 童心圓>이다.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우리 東夷겨레를 사랑하자는 뜻이 담긴 이름이라고 한다. 원내를 거닐자면 <溫故知新>, <忠 禮 孝>, <淸泉洗心> 등의 揮毫가 새겨진 대리석이나 화강암의 석비가 눈에 들어오고, 기암괴석의 수석과 조형물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의 人格心性修練하고 나아가서 민족혼과 애국심을 일깨우려는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읽혀진다. 그 중 우물가 석축 벽에 심겨진 <淸泉洗心> 석비의 휘호에는 爲 宋在郁 同志, 海葦로 친필 서명이 되어 있다. 海葦는 제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의 雅號이다.

 

원내 높직한 둔덕에는 同心樓라고 懸額한 대형 樓閣이 세워져 있는데 樓臺 위에서 내려다보는 금평저수지의 遠近景壯觀이다. 누각 벽에는 독도와 울릉도의 사진들과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고구려 고분벽화의 복사본인 듯싶은 신비스런 사진들이 빙 둘러 붙여져 있고 <有備無患>의 대형 액자도 걸려 있다. 이 동심원 원내 조형물의 壓卷은 단연 조선영토회복기원비이다. 文武人石 20여 기가 양 옆으로 堵列해 서 있는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마치 광개토대왕비를 연상할 만큼 우람하고 육중한 비석을 만나게 된다. 비석 전면에는 <朝鮮領土回復祈願碑>縱書로 굵직하게 刻字했고 뒷면에는 옛 고조선 疆域의 지도가 새겨져 있다.

 

그 밑에는 祈願文이 씌어져 있는데 그 全文을 옮겨 둔다.

 

여기 영토 찾는 기원을 심노니

아 내 조국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땅

어서 어서 하나 되게 하소서 

   

단기 4327년 삼짓날 독도인 송재욱

 

그런데 한 가지 신비스러운 것은 기원문을 새긴 碑面에는 한반도와 북서쪽 요동에서 동북만주 일원에 이르는 옛 고구려 영토의 영역이 뚜렷한 紋樣으로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물갈기工法으로 비면을 곱게 다듬다 보니 그런 문양이 저절로 發顯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의 석재는 옛 시절 어느 門中에서 사용하려고 대강 다듬어 놓았다가 무슨 緣故였는지 사용치 못하고 땅 속에 埋沒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出土되어 장안평 골동품 巨商의 손에 입수된 것을 동곡이 어렵사리 교섭해 매입했다고 한다. 땅속에서의 오랜 長眠 끝에 제자리를 찾은 神石靈岩이 아니겠는가 여겨진다.

 

宋在郁 동창은 고교시절에는 정의감 있고 方正한 모범생이었고 농과계 대학생 시절에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강한 청년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사회에 진출해서도 可謂 우리시대의 보기 드믄 義人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동심원 방문을 마치고 동곡의 안내로 <봉남면 왕버들>과 거기서 약 십리쯤 격리된 <봉남면 느티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이 부락은 동곡의 고향 마을로 그의 伯氏가 지금도 宗家를 지키고 살고 있다. 우리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古宅을 함께 방문했다. 지금은 현대식으로 개축이 되었으나 넓게 둘러쳐진 기와 덮인 울담이며, 넓은 정원의 고목이 된 정원수등은 지역 명문가의 형세를 가늠해 보게 된다. 정원 한쪽에는 갓 쓰고 도포 입은 동곡 祖父等身大 坐像이 안치되어 있어서 先祖에 대한 공경심이 극진한 명문집안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교회의 원로 長老인 동곡은 明日 主日禮拜를 거를 수 없는 노릇이기에 김제역에서 기차로 上京하고, 우리 3인은 이 고장에서 하루 체류키로 하였다. 숙소를 정하고 김제 시가지를 둘러보니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전형적 중소 지방도시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 지역 특산 토속음식 같은 別食을 체험하고 대포도 좀 곁들일 생각으로 전통 재래시장을 찾아가서 아무리 둘러봤으나 먹자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특이한 점이다. 시장하신 그리스도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단 얘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김제 전통시장을 나무랄 것도 없기에 가게에서 빵과 카스텔라를 사고 치킨 집에 들러 닭튀김 한 상자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온 후에 먹자 자리를 펼쳤다. 마침 동곡이 약술로 비축해 뒀던 5년 묵은 매실주 대짜 한 병을 준 것이 있기에 그것을 다 마시며 밤이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룻밤 지내고 상경하기에 앞서 이 지역 명문대찰인 금산사를 찾았다.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록에 자리 잡은 금산사는 백제 때(599) 처음 산문이 열리었고, 신라시대(766)에 진표율사가 크게 중창하여 33철로 된 미륵불상을 모신 후 미륵신앙의 근본 도량과 법상종 종찰로 번창한 고찰이다. 조선조 임진왜란 때는 드넓은 산사 경내가 처영 스님이 지휘하는 각처에서 모여든 1500여 승병의 훈련장이 되어 왜군에 항쟁하였는데 정유재란 때는 그 보복으로 인하여 장엄했던 80여 동 사찰건물과 40여 동 암자가 모두 소실당하는 전화를 입었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복원 불사를 거쳐서 오늘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절에는 39의 거대 미륵불상을 봉안한 국보 62호인 미륵전이 있고 그 외에 등록된 보물급 유물로는 당간지주, 석련대, 육각 다층석탑, 방등계단, 오층석탑, 노주, 석등, 혜덕왕사 탑비, 대장전, 북강 삼층석탑 등이 보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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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보리수 옆에서 안암골 세 친구 

커다란 불상이 있는 미륵전 


 

금산사 탐방을 마치고 서둘러 귀경길에 올랐고 어제 行路의 역방향으로 고속도로를 달려서 주말 행락객의 귀경 러시가 몰리기 전에 서울로 돌아왔다. 아직 해가 벌건 대낮이지만 그냥 헤어지기도 서운하여 지목의 고장 답십리로 가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 김제의 별난 전통시장 생각이 나서 일부러 답십리 재래시장의 먹자거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 곳 순댓국집에서 순대술국을 시켜 장수막걸리 몇 병을 마시며 성공적인 제9차 김제지역 탐방을 자축하였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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