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탐방 제11차]
탐방일: 2012년 8월 18일~19일
탐방장소: 함평 일원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함평 기각리 붉가시나무
김 재 황
추위를 천성으로 싫어하는 나무지만
북으로 조심조심 가장 멀리 올라왔네,
이제는 견딜 만한지 가지런한 숨소리.
바다를 좋아해서 섬마을을 떠올리고
하나로 맞댄 가슴 먼 사랑을 부르더니
청고깔 고운 열매를 꿈속에서 빚는다.
주: 2012년 8월 18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110호
<탐방 제 21호> 함평 붉가시나무 자생 북한지대
0 천연기념물 제110호
0 소재지 : 전남 함평군 함평읍 기각리 산 12-2
0 지정일 : 1962.12.03
★ 붉가시나무는 참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서 추위에 약해 주로 산기슭과 계곡의 陽地에 서식한다. 목재 재질이 단단하고 보존성이 좋아 내구성이 요구되는 가구나 선박 등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붉가시나무라는 이름은 그 목재가 붉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暖帶林을 구성하는 대표적 상록수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 분포한다.
육지에서는 이 붉가시나무가 서식하는 함평 대동면 이 지역이 北限界地로서 식물 분포학상 보존가치가 있기 때문에 비록 수령은 200여 년에 불과하지만 이 나무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 나무는 원래 개인소유의 집터 울타리 밖의 협소한 둔덕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군청 당국에서 그 집터를 사들이고 주변 정비 사업을 함으로써 지금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서의 안정된 면모를 잘 갖추었다.
★ 이 붉가시나무 몇 그루에는 連理枝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쉽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群落 맨 뒤쪽 은밀한 곳에 숨어 있어서 이곳을 탐방하는 이들은 留念하지 않으면 그것을 보기 어려울 듯싶다.
“連理枝”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읊은 白居易의 시<長恨歌>에도 등장하는데 이르기를 ‘在天願作 比翼鳥(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길 원하고) 在地願爲 連理枝(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길 원하네...)’라고 하였다. 여기서 비익조는 암수의 날개가 각각 한 쪽뿐이어서 암컷과 수컷의 날개가 갖추어져야만 날 수 있는 새이고, 연리지는 나뭇가지가 자라다가 서로 엉겨 붙어 樹液이 상통하는 그런 모습인데 남녀 사이 또는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요즘도 새로 만나 사랑이 굳게 맺어지기를 바라는 젊은 남녀들이, 예컨대 남산타워 철책 같은 데에다 자물통을 잠가 놓는 등 이벤트를 하지만 혹시 그럴 마음이 있는 청춘남녀가 있다면 여기에서 소개하는 함평 기각리의 붉가시나무 연리지를 찾아가 ‘인증 샷’하기를 권한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함평 대동면 줄나무
김 재 황
해풍을 막아내랴 불의 기운에 맞서랴
‘팽나무’ ‘개서나무’ ‘느티나무’ 몇 그루씩
향교 앞 열린 길가에 기다랗게 줄 섰다.
말없이 베푸는 일 나타내는 그 나무들
‘푸조나무’ ‘회화나무’ ‘곰솔’까지 한 그루씩
빠지면 안 된다는 듯 손을 함께 잡았다.
주: 2012년 8월 18일 촬영
천연기념물 108호
<탐방 제 22호> 함평 대동면 줄나무
0 천연기념물 제108호
0 소재지 : 전남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산 948-2
0 지정일 : 1962.12.03
★ 줄나무는 특정 수목의 이름이 아니고 길가나 도로 변에 가로수처럼 길게 줄 지어 심겨진 나무들을 지칭한다. 함평 대동면의 줄나무는 향교 초등학교 옆의 옛 도로가에 길게 줄 지어 심겨진 팽나무,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푸조나무, 곰솔 그리고 회화나무 등를 통틀어 이르는데 당초에는 그 나무들의 수효가 300여 그루가 넘었다 하나 지금은 많이 줄어서 1백여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나무들은 대략 360여 년 전에 이 지역 유림 대표들이 내교리에 있던 함평 향교를 현 위치로 옮기면서 나무들도 함께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 이 나무들이 심겨진 것은 풍수지리사상에 기인하는데 함평 명륜당 대남쪽에 있는 水山峰이 火氣를 품고 있어서 그 재앙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보다는 인근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우리 선조들이 자연의 역경을 잘 극복하려는 지혜가 담겨 있는 문화유산의 성격이 짙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 줄나무는 도로변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므로 수세가 날로 쇠약해지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그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함평 손불면 이팝나무
김 재 황
달뜨는 한밤중에 둘이 몰래 만난 다음
긴 손가락 마주 걸고 천년 가약 맺었는지
동산에 두 그림자가 서로 몸을 껴안았네.
허기에 시달리던 조금 멀리 지난 봄날
어찌 그리 곰살갑게 웃음꽃을 피웠는지
지금도 그늘 아래에 배부른 꿈 널려 있네.
주: 2012년 8월 18일 촬영
천연기념물 강력 추천
(시도기념물 제117호)
<탐방 제 23호> 함평 양재리 이팝나무
0 전남도 기념물 제117호
0 소재지 : 전남 함평군 손불면 양재리 산 96-1
★ 이팝나무란 이름은 꽃이 필 때 樹冠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이게 됨으로써 이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밥그릇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立夏 절기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나무→이파나무→이팝나무로 그 음이 訛傳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 중부이남 지역에 분포하는데 일본과 중국에도 있으나 세계적으로는 희귀종에 속한다.
★ 이 나무는 두 그루가 함께 자라는데 한 그루는 수고 14m, 흉고둘레 3m 로 수령이 약 200년으로 추정되고 다른 하나는 수고 12m, 흉고둘레 1.4m로 수령이 약 100년 정도로서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심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팝나무에 전해오는 한결같은 이야기는 꽃이 많이 피고 적게 피는 것으로서 그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분 요구량이 많은 이팝나무는 강우량이 많으면 꽃이 만발하기 때문에 특히 要水量이 큰 벼농사의 풍작과 흉작을, 마치 이밥 모양의 만발한 이팝나무 꽃에 비추어 점쳐 보게 된 듯싶다.
★ 이 나무는 전남도 기념물로 아직 천연기념물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나무 앞에 세워 놓은 안내판에는 천연기념물로 표기되어 있어 좀 의아스럽다. 하지만 그 자격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참고로 천연기념물에 등록된 이팝나무로는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와 광양 유당공원 이팝나무가 있다.(글: 자은 백승돈)
[탐방별기]
☆ 제11차 함평지역 遠거리 탐방에 나서는 8월 18일은 暴炎과 暴雨가 교차하는 사나운 날씨에서 잠시 小康국면이었다. 날은 개었고 아직도 老炎은 남아 있으나 暴炎은 좀 수그러들어 여행하기에 무난한 날씨였다. 우리 3인은 제기동서 만나 역시 지목의 차로 네비게이터가 안내하는 대로 고속도로를 이리 저리 바꿔 가며 쉬엄쉬엄 운행하면서 다섯 시간여 만에 함평에 당도하였다.
☆ 이번 함평지역 탐방에서는 녹시가 문단에서 알게 된 현지 유력인사 <K선생>과 연락이 되어 그분의 영접과 안내를 받게 되었다. 이번 탐방목표인 3개소는 서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우선 읍내 중심지역에 있는 붉가시나무 군락부터 찾아 봤고, 그 다음은 대동면 향교리에 列植된 줄나무를 탐방하였으며, 이어서 좀 외곽지에 있는 양재리 이팝나무를 찾아가 보았다.
☆ 우리를 안내해 주는 K선생으로부터 함평에다가 상해 臨時政府 청사를 옮겨다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나서 찾아가 보았다. 처음엔 상해 臨政 청사가 老朽해 헐릴 위기에 처하자 그 건물을 해체해 국내에 반입하여 복원한 것인가 여겼으나 그건 아니고 그 건물의 원형을 이곳에다가 複製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 臨政 要人 중 이 고장 출신인 金澈 선생은 有足했던 家産을 모두 처분해 상해 임정의 재정과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이에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생가 터를 중심으로 동상과 기념관을 세우고 더 나아가 임정 청사 복제관도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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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청사 | 김철 지사의 부인이 목 맨 노송 | 김철 지사 동상 |
☆ 뜰 한쪽에는 김철 志士의 부인이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老松 한 그루가 서 있는데, 倭警의 핍박을 견디기 어려웠을 뿐더러 또한 남편에게 가족의 安危를 염려하지 말고 오로지 독립운동에만 전념케 하려는 매운 뜻이 담긴 自決 決行이었다니 그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경내에는 안중근의사 동상도 세워져 있다. 안 의사의 이등박문 처형의거는 임정이 수립되기 십여 년 전의 일이고 김철 지사와도 聯關性을 찾기 어려우나 항일 독립운동의 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라 하겠다.
☆ 동상 앞 표지석에는 “의병대장 안중근”이라 표기되어 있어 某種의 ‘오버액션’이 느껴지기도 한다. 안 의사가 법정에서 인정심문을 받을 때 스스로 밝힌 신분이 <의병 참모중장>이라 하였는데, 여기에 있는 동상을 세운 이 고장 사람들이 아마도 그 때문에 ‘의병대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여겨진다.
☆ 우리를 안내해 준 K 선생은 아직 年富力强한 육십대 초반이지만 몸에서 에너지와 氣運이 무럭무럭 발산되는 정력적인 모습이다. 학력도 다채로워서 국내에선 기독교계 신학대학을 나오고 필리핀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미국 남가주대와 ‘솔로몬대’ 그리고 ‘스위트와터’성서대 등에서 문학박사, 교육학박사, 신학박사 등의 학위를 받았다는 최고의 지식인이다. 현재 종교계, 문학계, 언론계, 교육계등 각계에 걸쳐서 맡고 있는 직함이 이십여 개에 달할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鐵人과 같은 그를 통해 한 개인의 능력 범위가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가를 驚異感으로 가늠해 보게 된다.
☆ 함평읍에서 일박을 하고 이튿날 귀경길에 오르기 전에 함평 자연생태공원을 방문하였다. 함평은 산업개발시기에도 소외된 지역이었던지 공단이나 산업시설이 별로 들어서지 않았기에 지금에 와선 그것이 오히려 친환경 생태 보존지역으로 浮上하고 脚光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함평군은 이에 착안하여 “하늘에는 나비와 잠자리, 땅에는 꽃과 난초, 물에는 수생식물과 물고기”를 주제로 광활한 터전에 다양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였다, 우리 3인은 그곳을 들러서 일주하며 구석구석 꼼꼼히 모든 것을 玩賞하였다.
☆ 귀경길은 下行했던 길을 되짚어 順行하여 좀 늦은 오후 시간대에 서울로 돌아왔고, 그대로 헤어지기가 서운하여 지목이 답십리 집에다 차를 갖다 두고 그 부근 우리가 자주 가는 ‘병천순대’ 집에서 성공적으로 마친 제11차 탐방을 자축하는 뒤풀이를 한 다음에 헤어졌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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