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차 탐방]
탐방일 : 2012. 6. 9 (토) ~ 6. 10 (일)
탐방지역 : 강원도 인제군, 고성군, 속초시 일원
(사진촬영: 지목 이정민)
속초 설악동 소나무
김 재 황
열리는 설악동 길목 짙은 안개 내려앉고
오가는 사람들 없이 깊은 고요 가득한데
점잖게 헛기침 한 번 크게 하고 날 본다.
제법 더위 높을수록 긴 그림자 끌리지만
느린 바람 다가오면 먼 추억에 잠겨들고
나직이 혼잣말 몇 번 털고 나서 맘 연다.
(천연기념물 제351호)
<탐방 제 13호> 설악동 소나무
0 천연기념물 제 351호
0 소재지 :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20-5
0 지정일 : 1988. 4. 30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는 총 37그루인데 그 중 백송(5), 반송(5), 곰솔(6), 처진 솔(4)을 제외한 순수 재래 소나무는 17그루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나무로는 官爵을 받았다는 속리산 정이품송, 등기가 되어 있고 납세도 한다는 예천의 석송령, 유배된 단종을 걸터앉게 하여 그의 비운을 지켜봤다는 영월 청령포의 관음송 등이 있으나 그들은 차기탐방의 즐거움으로 유보(Next Pleasure)해 두고 이번엔 설악산 자락의 <설악동 소나무>를 찾았다.
★ 설악동 소나무는 속초에서 설악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으며 수령은 500여 년이다. 수고 16m, 흉고둘레 4m, 가지퍼짐의 동서길이 21.4m, 남북길이 19.4m 등의 노거수다. 오랜 세월 동안 민간신앙의 대상인 성황수로서 오가는 행인이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며 돌을 던짐으로써 나무 밑둥에 돌무더기가 많이 쌓여 있었으나 관할 당국이 주변 정비를 하면서 모두 치워버렸기에 전통적인 城隍樹로서의 본래 모습을 잃었다.
★ 지상 2.5m 높이에서 3개의 가지로 갈라졌으나 그 중 두 개는 고사했고 한 개의 원가지만 살아남아 있다. 1987년 10월에 속초시에서 나무의 부후된 부위를 도려내는 외과수술을 실시하여 수형을 가다듬었으나 노거수로서의 위용은 좀 부족한 듯싶다. 그러나 이 나무를 올려다보게 되면 설악산 준령이 이어지는 배경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속초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김 재 황
우거진 나무들은 입 무겁게 길을 가고
숨결 트며 엎드리는 갖가지 바위 생김새
묻어 둔 이야기들이 파릇파릇 돋는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발자국들 여기저기
숨었다가 일어서서 흰 꽃 피운 그 숨결들
날개 단 목숨들마저 둥그렇게 손잡는다.
(천연기념물 제171호)
<탐방 제 14호>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0 천연기념물 제 171호
0 소재지 : 강원도 속초시, 인제군, 고성군, 양양군 일원
0 지정일 : 1965. 11. 5
★ 천연기념물 중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11곳인데 그 중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은 희귀 동식물 및 자연경관보호목적으로 지정된 곳이다. 태백산맥의 북부인 강원도 인제군 양양군 속초시와 고성군에 걸쳐서 173.4 평방 Km에 달한다.
★ 이 지역은 연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10도 미만의 저온지대로서 구역 내의 최고봉인 대청봉(1708m)은 연중 5~6개월 동안 흰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설악이란 명칭이 주어졌다. 연간 강우량은 1200mm 내외이다.
★ 서식하는 식물은 94과 392속 822종으로 조사되었고 신갈나무나 단풍나무 등 낙엽활엽수림과 소나무나 잣나무나 가문비나무 등 상록 침엽수림이 혼재하는 혼성림이 주류를 이룬다. 그 외 요소요소에는 눈잣나무군, 지빵나무군, 왜소형 털진달래군, 눈향나무군 등이 형성되어 있다.
★ 정상부 일대에는 바람꽃, 쥐손이풀, 대서호 등 고산식물이 군집되어 있다. 특산식물로서는 설악 조팝나무, 찰피나무, 큰꽃긴잎여로, 세잎종덩굴 큰바리 등을 꼽을 수 있다. 기타 자생식물로는 에델바이스, 금강초롱, 금낭화 등이 있다.(글: 자은 백승돈)
[ 탐방 별기 ]
☆ 천연기념물 제 7차 탐방은 “녹음방초 승화시”로 일컬어지는 6월의 상순에 강원도 설악산 지역으로 정했다. 이번 탐방에는 천연기념 노거수를 찾는 것과 아울러 <설악시인 이성선>의 추모기행을 겸하기로 하였다.
☆ 이성선 시인은 우리 3인과는 “북악산기슭 안암 언덕”에 있는 학교의 같은 학과에서 동문수학한 동기동창이다. 지난 5차 탐방 때 <신림동 굴참나무>를 함께 찾았던 윤성호 시인은 이성선 시인과는 각별한 교분을 맺었던 사이로서 이번 탐방에 동참함은 물론이고 이 시인의 追慕行脚을 주선하고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 윤 시인을 포함해 우리 4인은 예의 제기동 역두에서 만난 다음, 지목의 차로 이곳저곳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서 홍천과 인제를 경유해 미시령을 넘었고 곧바로 고성군 토성면 성대리 이성선 시인의 생가 동네를 찾았다.
☆ 1941년에 ‘동루골’이라고도 불리는 전형적인 산간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이 시인은 “우주와 인간과의 친화를 오묘한 시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하여 한국 서정시의 또 다른 典範을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 시단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2001년 5월에 홀연히 타계한 이 시인의 詩碑가 옛 고향집 뒤쪽 둔덕에 세워져 있다.
☆ 화강석의 우람한 시비에는 영문학자 원로시인 김종길 선생이 고른 “미시령 노을”이라는 작품이 새겨져 있는데 그 전문을 옮겨 본다.
< 미시령 노을 >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 나는 이성선 동문과는 학교 졸업 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짧은 기간이지만 농촌진흥청에서 다시 만났고 서둔동 하숙촌에서 함께 생활했다. 서로 隔離되어 있는 기간엔 편지로 정을 나눴고 간혹 自作詩를 첨부해 내게 評을 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 이번 이 동문의 추모기행에 나서면서 오래된 나의 私文件을 뒤져서 그 당시 받았던 그의 端雅하고 또박또박한 글씨체의 편지 몇 통과 함께 그가 등단하기 몇 년 전의 習作詩도 찾아 내게 됨으로써 그것을 생전에 이 시인과 교분이 두터웠던 윤 시인에게 건넸다.
☆ 미시령고개를 넘기 전에 백담사 입구에서 그 고장 토속음식으로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별미로 이름이 나 있는 성대리 동루골 막국수로 새참을 먹고 나서, 1967년 여름에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이 시인의 생가를 들러보고 속초로 향했다.
☆ 속초에는 또 한 명의 同科 同期同窓인 송기영 동문이 살고 있기에 그를 만났다. 송 동문은, 구 농림수산부 사무관으로 근무하다가 축협으로 전직해 사료사업소 CEO를 역임하고 정년퇴직한 후, 10여 년 전쯤 이 속초에 자리를 잡고 노년기를 지내고 있다.
☆ 그는 性情이 발랄하고 쾌활하기에 다니는 교회에서는 성가대를 지휘하는 등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고, 현직 때 사료사업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규산염 계열의 신소재를 활용한 건강용품 개발에도 심취해 있는 등 패기만만한 모습이다. 설악동 소나무는 그의 안내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 저녁식사를 겸한 酒席은 동명항 부둣가의 해산물 뷔페(buffet)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즐겼다. 이 집의 酒母格인 아낙은 우리와 동년배인 칠순급이라지만 훤칠한 키와 날씬한 몸매에 마치 <조수미>를 닮은 강한 인상도 풍기는데 아직은 “女人”의 매력이 남아 있다.
☆ 그런 일에는 枝木이 능해 몇 마디 예의 “수작”을 주고받더니 금방 친해져서 걸스카우트 하던 소녀시절로부터 음악 감상실을 輾轉하던 여고시절, 또 와일드한 교풍의 경희대 여대생 시절로 이어지는 그녀의 人生歷程 이야기꽃을 피우게 만든다.
☆ 그녀 인생의 종반부에선 동해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속초까지 와서 해변 가에 섰으나 소싯적 한강 광나루에서 헤엄치기를 잘 배워 뒀으니 물에 뛰어들어도 죽지는 못 할 것 같아 그만두고 그렇게 살아간다고 大尾를 장식한다.
☆ 숙소는 윤 시인이 멤버십을 갖고 있는 영랑호 타워 콘도에다 방을 정했다. 부설 천연 알칼리 온수탕에서 온천욕도 즐기고 간단한 酒菓를 사다가 둘러앉아 마시며 밤이 깊도록 정담을 나눴다. 화제의 방향이 식량자원이나 농생명 과학으로 흘러가면 그 분야에 해박한 지식인인 농학박사 윤 시인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경청하기도 했다.
☆ 야간과 아침나절 두 차례에 걸쳐서 영랑 湖畔을 산책했다. 영랑호는 원래 바다였던 곳인데 태백산맥의 급경사를 따라 흐르는 하천이 토사를 쓸어내려 해안을 따라 길게 퇴적되면서 사주를 만들고 灣의 입구를 바다와 격리시킴으로써 호수가 되었다는 그 “석호”에 해당한다.
☆ 석호로 흘러드는 하천은 규모가 작아 운반토사의 양이 많지 않기에 석호를 쉽게 메우지는 못하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메워질 시한부 운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시한이란 것이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니 인간의 시간척도로는 따질 것이 못 된다.
☆ 영랑호라는 이름은 통일신라시대 화랑인 영랑이 술랑과 남랑 등 동료들과 금강산 수행을 다녀오는 길에 들러 그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풍류를 즐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슬을 감춰 둔 곳”이란 표현으로 영랑호의 신비를 나타냈다.
☆ 호수 주변의 풍광을 眺望할 수 있는 언덕에 영랑정이란 정자가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속초 8경의 하나라는 범바위가 있어 올라가 보았다. 범바위 위에 난짝 올라앉은 둥그런 바윗덩이들이 기묘하다. 이 바위들은 수천만 년 전에 땅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화성암의 일종인데 그것이 풍화되어 모래나 흙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硬度에 따라 단단한 부위는 계속 남고 무른 풍화물질이 제거되면서 그런 모양의 바위가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 1974년 이래 영랑호 유원지를 개발하면서 주변 기슭이 모두 파헤쳐져서 콘도, 아파트, 골프코스로 변하고 호반에는 일주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런 무차별 난개발로 호수 수질은 오염되고 호변 수초대는 소실되는 등 자연호의 특성을 거의 상실하였다고 환경운동가들은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레저를 즐기려는 행락객들에게는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 속초를 떠나 다시 미시령을 넘어 백담사에 들렀다. 절에 이르는 산간 험로 7Km는 마을버스를 타는데, 숙달된 전문기사가 아니면 운행하기 어려운 難 코스다. 깊은 계곡에는 봄 가뭄의 영향으로 물이 거의 말라 있다. 바닥을 드러낸 암반은 물길에 따라 깊이 파여 있어 헤아리기 어려운 長久한 세월을 느끼게 한다.
☆ 백담사 경내에도 이성선 시인의 詩碑가 세워져 있다. 아담한 화강석 시비에는 그의 山詩 30 “나 없는 세상”이 새겨져 있다. 그 전문을 옮겨 둔다.
<나 없는 세상>
나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 물속에는
산 그림자 여전히
혼자 뜰 것이다.
그의 사후, 유골이 백담사 경내를 흐르는 하천에 뿌려질 것을 마치 예견이나 한 듯해 잠시 숙연해진다.
☆ 주말 행락객의 귀경 러시가 시작되기 전에 좀 일찍 서둘러 서울로 돌아와서 설악산 시인 이성선 동문의 추모를 겸한 제 7차 천연기념 노거수 탐방을 마무리하였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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