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차 탐방]
탐방일 : 2013. 3. 16(토) ~ 17(일)
탐방지역 : 경북 경주시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경주 괘릉리 소나무
김 재 황
누구나 빈손으로 찾아가서 쉬는 자리
목소리가 크더라도 시끄럽지 않은 자리
정자목 그 이름값을 오래도록 하고 있네.
바람이 활개 치며 달려가기 마땅한 곳
멀찌감치 임금 무덤 기나긴 꿈 잠기는 곳
세월을 몸에 두르고 당집 하나 껴안는다.
주: 2013년 3월 16일 촬영
경주 명목. 천연기념물 추천
<탐방 제45호> 경주 괘릉리 소나무
0 지방기념물
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338
0 지정일 : 알 수 없음
★ 우리는 이미 천연기념물로서의 소나무를 여러 곳에서 만나 본 적이 있지만 이번 괘릉리 소나무는 천연기념물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 하위 지방단위 보호수로도 지정되지 않은, 이를테면 무관(無冠)의 무명송이다. 그러나 많은 탐방객들이 이 나무를 찾아봤고 인터넷에도 소개가 되어 있어 우리도 이 나무를 만나보기로 하였다.
★ 이 나무의 소재지 괘릉리의 ‘걸 괘’자 괘릉(卦陵)은 묘 자리에서 물이 솟아나 관을 높이 걸어 올리고 묻었다는 전설의 왕릉인데, 문무왕릉이 감포 해변 수중에서 발굴되기 전까지는 이곳을 문무왕 릉으로 추정 했었으나 지금은 신라 28대 원성왕릉으로 바꾸어 추정하는 왕릉이다.
★ 그런 신비의 고장에 자리 잡고 있는 ‘괘릉리 소나무’는 성황신이 깃든 신당목으로 우람한 밑둥치에서 이미 범상치 아니한 신수 영목다운 면모를 느끼게 한다. 아름드리 밑둥치에서 여섯 개의 가지가 분지되었으나 그 중 일부는 고사하였고 살아남은 몇 가지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기이한 형상을 갖추었다. 고사한 가지 밑으로는 어린 후계 나무를 보식해 키우고 있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는 부락민이 모여 성황제를 지낸다고 한다.(글: 자은 백승돈)
(촬영: 지목 이정민)
경주 동부동 은행나무
김 재 황
물어물어 찾았더니 문이 굳게 닫혔는데
서울 손님 체면이라 담도 넘을 수 없어서
고운 임 훔쳐보듯이 발돋움을 하였네.
마당에는 두 암나무 좀 떨어져 서 있는데
어떤 놀이 하고 있나 널뛰기나 하고 놀지
멋쩍게 나그네 마음 아는 체도 안 하네.
주: 2013년 3월 16일 촬영
경상북도 보물 제66호
<탐방 제46호> 경주 동부동 은행나무
0 지방기념물 제 66호
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동부동 193
0 지정일 : 1986년 12월 11일 지정
★ 이 나무는 옛 경주박물관이고 현재 경주문화원인 유적지 경내에 있는 두 그루의 은행 노거수이다. 아직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지방 보호수로서 이름이 나 있어 이왕 경주지방 탐방에 나선 김에 찾아보게 되었다.
★ 천연기념수로서의 은행나무는 국내 최 장수인 용문산 은행나무와 서울 문묘은행나무를 탐방한 바 있어 은행나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기에 그만두더라도, 이 두 나무도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노거수들이다.
★ 아마 그 시절 이 자리에 경주부의 동헌을 세울 때 기념수로 심은 나무라 하니 유구한 역사성을 간직한 명목이라 하겠다. 약 30여 미터를 격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는데 그 중 남쪽 나무의 수세가 보다 더 왕성하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경주 오류리 등나무
김 재 황
조금만 참았다가 왔더라면 좋았을 걸
돋은 잎이 우거지면 물소리도 들릴 것을
휑하니 신라 하늘이 가지 새를 누빈다.
듬직한 팽나무를 감고 올라 즐거운가,
봄소식이 오든 말든 수잠 속에 들었으니
섣불리 슬픈 전설을 깨우지는 마시게.
주: 2013년 3월 16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89호
<탐방 제47호> 경주 오류리 등나무
0 천연기념물 제 89호
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527
0 지정일 : 1962. 12. 3
★ 천연기념수로서의 등나무는 국무총리 공관에도 있는데 그것을 찾아보기 위해 탐방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총리 공관에 전화로 요청을 해 봤으나 개방이 불가하다는 답변이었다. 대통령이 거하는 청와대도 개방하는 시대에 총리공관이 왜 그토록 폐쇄적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어쨌든 이번 경주탐방에서 최초로 등나무 천연기념수를 만나보게 되었다.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덩굴성 식물로 봄에 보랏빛 꽃을 피우며, 줄기는 오른쪽으로 꼬여 감으며 10m 이상 자란다. ‘우리나라에는 남쪽에서 자라는 애기등’과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등나무’ 등 2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정원수나 환경미화용 등 조경의 소재로 많이 가꾸어지고 있다.
★ 오류리 등나무는 네 그루가 두 그루씩 모여 팽나무를 감싸고 우거져 있다. 이 나무들에 대해서는 애절한 사연이 전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득한 옛날 신라 때, ‘용림’이라고 불리던 이 마을에 어여쁜 두 자매가 살았는데 이웃집 준수한 총각을 각자 은밀히 사모하였다. 그 총각이 전장에 출정하여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두 자매는 실의에 빠지어서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때 비로소 자매가 함께 그 한 총각을 사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이왕에 그리 된 바에 살 맘이 없어, 두 자매는 손을 맞잡고 연못에 투신해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런데 전사했다는 소문은 헛소문 이어서 그 총각은 전공을 세우고 화랑이 되어 금의환향을 했다. 이웃 두 처녀의 애절한 사연을 듣고 동정과 연민으로 괴로워하다가, 그도 끝내 참지 못하고 연못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 그 후 그 연못에서는 등나무와 팽나무가 돋아나 등나무는 팽나무를 휘감아 얼싸안고 자라는데, 등나무는 자매의 현신이고 팽나무는 화랑의 현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럴 듯한 전설 때문에 애처롭기 이를데 없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경주 월성 육통리 회화나무
김 재 황
바람 소리 아니 나도 빈 가지는 흔들리고
산뻐꾸기 안 울어도 아들 마음 담긴 마을
팔 벌린 나무 그림자 온밤 내내 새웠겠다.
온다 하던 봄비 대신 햇살 가득 쏟아지고
고요 홀로 인사하는 세월 멈춘 그 한복판
흰 빛만 나무 기둥에 오늘 밤도 둘리겠다.
주: 2013년 3월 16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 318호
<탐방 제49호> 경주 육통리 회화나무
0 천연기념물 제 318호
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
0 지정일 : 1982. 11. 4
★신라 흥덕왕릉 부근에 있는 이 나무는 수령 600년의 노거수이다. 이미 상당히 노쇠하여 아름드리 밑둥치는 속이 텅 비었고 여기저기 상처는 외과수술로 아물려 놓았다.
★이 나무에 전해오는 전설은 고려 말 이 마을에 김영동이란 청년이 왜구토벌에 출정하면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는 부모에게 ‘자기가 못 돌아오더라도 이 나무를 자기 대하듯 보살펴 줄 것’을 당부했다. 그 후, 전사한 김 청년의 뜻에 따라 온 부락민이 잘 보살펴 키운 나무라고 한다.
★가까운 거리에 마을 노인 회관이 있어 이 나무를 잘 보살피고 있는 모습이 느껴진다. 오늘날 까지도 부락민은 이 나무에 정월 대보름날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글: 자은 백승돈)
(사진촬영: 지목 이정민)
경주 양동리 서백당 향나무
김 재 황
느긋하게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참으려고 글 썼다는 손씨 종택 나타나고
그 뜰에 푸른 자태로 지난 소사 읊는다.
어린아이 걸음마냥 작은 냇물 흐르는데
조상에게 욕됨 없이 이씨 종택 마주서고
참 짙게 그림자 끌며 옛 생각에 잠긴다.
주: 2013년 3월 16일 촬영
경상북도지정문화재 제8호
<탐방 제48호> 경주 양동리 향나무
0 지방기념물 제 8호
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223
0 지정일 : 1974년 12월 10일 지정
★ 천연기념수로서의 향나무는 이미 창덕궁 향나무와 서울 선농단 향나무를 위시하여 각처에서 여러 그루를 탐방한 바 있다. 이곳 경주 양동리 향나무는 경북도 지정 보호수급이지만 천연기념수의 반열에도 오를 만한 명성이 있는 노거수이다.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경주 양동 마을의 월성 손씨 종택 뜰 안에 자리 잡은 이 나무는 수령 600년의 노거수이다. 근원둘레 12m의 아름드리 밑둥치는 마치 동양 신선도에 그려지는 우람하고 기괴한 모습이다. 지상 1m에서 사방으로 가지가 뻗음으로써 울창한 수세도 잘 갖추었다.
★조선 초기 문신 손소가 세조 2년(1456년)에 이 마을로 귀향하여 이 고택을 짓고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 집의 당호를 서백당이라 지었는데 이는 하루에 ‘참을 인’ 자를 100자씩 쓴다는 의미이고 후손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아마 그 시절의 선비들은 참아야만 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사연들이 그토록 많았던 게 아니었을까.(글: 자은 백승돈)
(사진 촬영: 지목 이정민)
경주 독락당 중국주엽나무
김 재 황
새 단장에 어수선한 옥산서원 안채 뒤뜰
깊디깊은 중국 하늘 바라보는 나무 하나
아직은 나목인 채로 그리운 맘 펼쳤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아픈 이가 있기 마련
가시 지닌 나무라고 어찌 베풂 없을 건가
아프게 뿌리 내리고 측은한 맘 쏟았네.
주: 2013년 3월 16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115호
<탐방 제50호> 경주 독락당 중국주엽나무
0 천연기념물 제 115호
0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600
0 지정일 : 1962. 12. 3
★중국주엽나무는 콩과의 낙엽 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이다. 꽃은 6월에 흰 꽃이 피고 종자는 길이 20~ 30cm의 꼬투리에 맺히며 원줄기에는 길이 10cm의 날카로운 가시가 돋는다.
★이 나무는 조선 전기 큰 선비 이언적이 낙향하여 지은 고택 독락당 뜰에 심은 것으로 수령 500년을 헤아린다. 원줄기의 중심부는 부후되었고 아래쪽에서 난 두 개의 줄기가 살아남아 있다. 일명 조각자나무라고도 하는데 한약재로 쓰인다.
★회재 이언적이 낙향할 때가 40대 초중반이었으나 이미 건강이 상하였으므로 중국을 다녀온 친지로부터 이 나무의 종자를 얻어 심고 가꾸면서 건강관리에 이 나무의 산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로써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비롯하여 성리학자 이언적과 독락당과 관련된 문화적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글: 자은 백승돈)
〔 탐 방 별 기〕
☆ 제 17차 탐방은 경칩~춘분절기로 춘색이 완연한 3월 16일~17일에 경주 지방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우리 3인은 제기동서 만나 중부, 중앙, 경부 고속도로를 이리저리 바꿔 타면서 5시간 반 만에 천년고도 경주에 당도하였다. 시가지에 진입하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도시 곳곳에서 고분과 유적들이 눈에 띈다. 길가엔 산수유와 개나리가 노랗게 피었고 매화도 활짝 피었으며 목련도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렸다. 날씨도 맑아 봄나들이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흥겨웠다.
☆ 먼저 경주시 동남방에 치우쳐 있는 괘릉리 소나무를 찾아갔다. 거기서 마침 들일을 하고 있는 노익장인 이상진(84)옹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소나무는 이 옹의 11대조가 이 마을로 들어오면서 심은 것으로 수령이 30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문중에서 나무 옆에 제실을 지었고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 다시 시 중심지역으로 이동해 동부동 은행나무를 찾았다. 이 나무가 위치하고 있는 경주문화원은 주말은 문을 닫아걸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담장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지근거리에 경주 문화유산의 상징이 되어 있는 첨성대를 찾아가 보았다. 첨성대는 이미 오래전 한두 차례씩은 와 본 일이 있지만 새삼 눈여겨보게 된다. 문화재 관리당국이 세워 놓은 설명판에는 “~이곳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적혀 있다.
☆ 천문관측을 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이지 단정할 수 없음을 실토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지목은 이 야트막한 돌담 통에 올라앉아 무슨 별을 관측했겠는가 하면서 강하게 부정한다. 그것은 궁중에서 기르는 준마의 사료보관창고, 즉 요새말로 한다면 ‘엔시레이지 저장사이로’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첨성대가 동양최초의 천문관측소라고 배운 모든 이들에겐 기상천외의 망발로 들리겠지만, 지목의 소신은 확고하다.
☆ 첨성대를 본 후 시가지 북쪽 변두리지역 현곡면 오류리로 이동해 애틋한 전설속의 연못 터에서 화랑의 팽나무를 휘감고 우거진 등나무를 어루만지며 애처로운 자매의 넋을 위로하였다. 날이 저물어 다시 시내로 복귀해 호텔 급의 <세검정〉모텔에 숙소를 정해 놓고 시내 중심지의 패션 거리 등 번화가를 두루 산책하고 재래시장을 찾아가서 이 고장 별미 식으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 먹자거리엔 어느 밥집이나 메뉴가 비슷한 국밥 일색이어서 그중 한 곳에 자리 잡고 좌대에 올라앉아 “시락”(시래기)국밥을 시켰다. 지목이 첫눈에 들어서 찾아든 그 밥집의 후덕해 보이는 노파는 청도에서 시집와서 ‘밥 말아주는 뚝배기국밥 50원, 따로국밥 100원하던’ 40년 전부터 이 한 자리에서 이렇게 국밥장사를 하고 있단다.
☆주전자 막걸리로 반주하며 거나해졌지만 슈퍼 들러 술 몇 병과 안주 감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 후에 밤이 깊도록 한담을 나눴다. 화제 가운데는 시국에 관한 고담준론도 등장해 〈국가 쇠망론〉을 논해 본다. 역사상 강성했던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보면 국가 지도자의 오도(誤導), 공직자의 기강해이, 국민의 윤리도덕 타락, 사치와 낭비와 과소비 그리고 국론의 내부 분열 등이 그 원인이었음을 꼽아 보게 된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노사갈등과 보수와 진보의 좌우대결 심화를 비롯하여 종북 세력의 발호 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수십만 중국동포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그 중 북한정권과 연루되었거나 그들과 용모 또는 말투가 비슷한 북한정권요원이 대거 혼입되어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는 공작을 획책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근자에 북한정권은 연일 남한의 핵 참화와 서울 불바다를 협박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우리 국방부 대변인 성명대로 “북한정권이 소멸”될 수는 있어도 우리가 망하지는 않는다는 확신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경주탐방 둘째 날의 오전에는 시 북쪽 외곽지역인 강동면 양동리의 양동마을을 찾아갔다. 이 마을은 조선전기 명망가인 양민공 손소의 처가동네였으나 무남독녀에 장가든 손공이 이 마을로 들어와서 가문을 번성케 했다. 그의 아들 손중돈은 문과 급제하여 이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특히 그의 사위인 찬성공 이번에게서 회재 이언적(손공의 외손, 동방5현의 한분으로 칭송됨)이 태어남으로써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에 의해 이 마을이 오백여 년 전통의 양반 집성촌으로 번창하였다.
☆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임진왜란 전의 건축물로서 관가정, 서백당, 심수정, 상춘헌 등 품위 있는 고택과 정겨운 초가가 어우러진 이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2010년 7월엔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서백당 뜰의 향나무를 찾아보고 안강읍 육통리의 회화나무를 거쳐서 이번 탐방의 마지막 목적지인 안강읍 옥산리로 향했다. 이 마을에는 이언적 선생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고 서원 주변으로는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거주하고 있다. 이언적은 성리학의 대가로써 후세에 퇴계와 율곡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큰 선비이다.
☆옥산서원 뒤편에는 회재 이언적이 낙향하여 지은 사랑채가 있는데, 이름 짓기를 독락당이라 하였다. 이도 문화재급 오래된 건축물(1516년 축조)이고, 지금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일반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무리를 하여 비집고 들어가서 뜰 가운데 보호철책이 둘린 독락당 중국주엽나무를 찾아보았다. 수세는 별로 좋지 않았다.
☆탐방을 모두 마치고 귀경 길에 올랐는데 도중에 차의 제너레이터에 문제가 생겼다. 문경 시내 정비소에 들러서 수리를 하느라고 시간이 지체되어 밤이 늦어서야 서울로 돌아왔고 예의 병천 순댓국집에서 늦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글: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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