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탐방

천연기념물 탐방 19

시조시인 2013. 5. 21. 12:32

 

[19차 탐방]

 

탐방일 : 2013. 5. 17 () ~ 18()

탐방지역 : 경북 안동시

 

 

(사진: 지목 이정민 촬영)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김 재 황

 

 

하늘은 비단처럼 맑은 바탕 펼쳤는데

마을 앞 길가에서 손님 맞는 그대 정성

널찍한 선비의 가슴 나타내고 있구나.

 

바람이 흔들어도 지닌 침묵 여전하고

나이테를 두를수록 더욱 젊은 그대 마음

높직한 신목의 자리 지탱하고 있구나.

 

 

: 2013517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275

 

 

 

<탐방 제 55>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0 천연기념물 제 275

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2563

0 지정일 : 1982.11.04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 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안동 녹전면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수령이 약 7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9.7m, 가슴높이의 둘레가 10.1m, 가지 밑의 높이가 2.3m이다. 수관 폭은 동-24.1m, -29.1m이다. 마을의 정자목이며 크게 두 개로 갈라져서 자랐고, 아직까지 풍성하고 아름다운 수형을 갖추고 있다. 다만 마을 입구의 집 옆에 바짝 붙어 있고 부지도 협소하다. 아무래도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듯하다.

 

부락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처럼 믿고 있으며 정월 보름날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밑에 모여서 새해의 행운과 풍작을 빌어 왔다고 한다. 안동 녹전면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자은 백승돈)

 

 

 

(사진: 지목 이정민 촬영)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김 재 황

 

 

 

구름을 못 얻어서 버림받은 청룡마냥

숨소리 친친 감고 몸을 숙인 그 먼 세월

무료한 기다림으로 푸른 이끼 돋는다.

 

언제쯤 때가 와서 발돋움을 하겠는가,

쪼그리고 앉았으니 깊어 가는 저림이여

과묵한 경류정으로 낡은 소사 깃든다.

 

 

: 2013517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314

 

 

<탐방 제 56>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0 천연기념물 제 314

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 6341

0 지정일 : 1982.11.04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쓰이거나 정원수 및 공원수로 많이 애용되는 나무이다. 뚝향나무는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똑바로 자라지 않고 줄기와 가지가 비스듬히 자라다가 수관 전체가 수평으로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안동 주하리의 뚝향나무는 이씨 종가집 앞에 서 있는데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3.2m, 둘레 2.25m의 크기이다. 줄기는 아래에서부터 엿가락을 꼬듯 틀어져서 올라가다가 지면 1.3m 높이에서 가락을 풀듯 사방으로 벌어짐으로써 거의 수평에 가까운 수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비비 꼬인 수간과 줄기의 모습에서는 장구한 인고의 세월을 힘겹게 지탱해 온 강인한 풍모가 느껴진다.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개의 받침대를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 판관으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었던 세 그루 중 아직 남아 있는 한 그루라고 알려져 있다. 이 나무의 보호일지 격인 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자은 백승돈)

 

 

 

(사진: 지목 이정민 촬영)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

 

김 재 황

 

 

이 봄에는 소쩍새가 여기 와서 울었을까

그 옆에는 폐가 홀로 쓰러질 듯 잠이 들고

비탈에 의지한 채로 나그네를 바라본다.

 

비올 때면 물소리가 제법 졸졸 났겠지만

가문 날엔 잡초 가득 제 세상을 만났을 듯

지금은 엷은 그림자 겨우 펴고 서 있다.

 

 

: 2013518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288

 

 

<탐방 제 57>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

 

0 천연기념물 제 288

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 583

0 지정일 : 1982.11.04

 

굴참나무는 참나무과의 낙엽교목이며 일본과 중국 및 우리나라 등지에 분포한다. 수피에 코르크 조직이 두껍게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남향의 건조한 곳이나 돌이 많은 땅에서도 잘 살며, 특히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굴참나무의 껍질인 코르크는 보온재나 방음재 등으로 이용되고 열매는 최근 건강식품으로 떠오른 도토리묵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안동 임동면의 굴참나무는 산골짝 마을 입구의 산비탈에서 자라고 있다. 주변은 자연목이며 이 나무만을 특별히 보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의 수호수로서 특별히 보호하여 온 것으로 여겨진다.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22.5m에 둘레는 5.4m로 현재 보호되고 있는 굴참나무 중 수세가 가장 강건하고 수형이 잘 발달되어 있다.

 

마을에서는 농사일을 마친 7월 중 좋은 날을 택해 논길을 보수하고 잡초를 벤 후, 일이 끝나면 동네사람들은 나무 아래에 모여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또한 봄에 이 나무에 소쩍새가 와서 울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나무 옆에 돌 제단을 쌓았는데 그로 인해 나무 한쪽 줄기의 생육에 장애가 될 것 같아 보인다. 주변에는 작은 나무 한그루가 자라는데 이것이 후계목이 될 듯하다.

 

안동 임동면의 굴참나무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호 속에 자라온 나무로서 민속적 가치가 크다. 또한 우리나라 굴참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의 하나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자은 백승돈)

 

 

 

(사진: 지목 이정민 촬영)

 

 

안동 송사동 소태나무

 

김 재 황

 

 

철부지 가르치는 선생님의 마음인 양

학교 건물 뒤편에서 속이 썩고 있는 나무

누군가 위로의 줄을 그 가슴에 둘렀다.

 

고뇌를 안았어도 아픈 표정 안 보이니

아이들이 알 리 없는 여러 삶의 깊은 쓴맛

동신목 엄한 풍모를 아직 잃지 않았다.

 

 

: 2013518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174

 

 

 

<탐방 제 58> 안동 송사동 소태나무

 

0 천연기념물 제 174

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100-74

0 지정일 : 1966.01.13

 

소태나무는 소태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서 키가 10m까지 자란다. 잎은 어긋나며 잔잎 9~ 15장이 깃털 모양의 겹잎으로 달린다. 꽃은 지름 4~ 7mm의 황록색이고 6월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나무껍질에 쓴맛을 내는 콰신(quassin)이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에 매우 쓰다. 우리말에 소태처럼 쓰다란 말이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지와 열매는 소화불량이나 위장염 등의 증상에 치료제로 사용하고 섬유자원이 되기도 한다.

 

송사동의 소태나무는 나이가 약 400년으로 추산된다. 높이 14.6m, 둘레 3.20m(), 2.28m()이다. 소태나무로는 매우 큰 편이다. 송길 초등학교 뒤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회화나무·느티나무 및 팽나무 등 10여 그루의 나무와 함께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근처에 신을 모셔놓은 집인 서낭당이 있고 여러 그루의 크고 오래된 나무가 함께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 주는 숲인 성황림으로 보호되었다고 여겨진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115일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수세는 비교적 약한 편이고 외과수술도 받았다. 주변의 회화나무나 팽나무 등 노거수들과는 경합관계로 이 나무의 생육에 장애요인이 될 듯하다. 땅속으로 공기를 소통시키는 환기통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 나무를 보호하고 잘 관리하려는 노력의 일면이 엿보인다.(: 자은 백승돈)

 

 

 

(사진: 지목 이정민 촬영)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김 재 황

 

 

같은 종의 나무 중에 굵기로는 으뜸인데

하마터면 물속에서 잃을 뻔했던 그 목숨

다행히 사람들 손에 삶의 터전 올려졌다.

 

흐르는 물 굽어보며 푸른 역사 더듬는지

그늘에서 담론하던 나라 굳게 지키는 일

분연히 펼친 가지에 결사의 뜻 돋아났다.

 

 

 

: 2013518일 촬영

천연기념물 제175

 

 

 

 

<탐방 제 59>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0 천연기념물 제 175

0 소재지 :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46

0 지정일 : 1966.01.13.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낙향하여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며 아울러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이 나무의 높이는 37m이고 가슴높이 둘레가 14.5m로서 우리나라에서 줄기 굵기로서는 가장 굵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서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원래 용계 초등학교 운동장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임하댐이 하류(下流)에 건설되자 나무가 수몰될 위기에 처하였다. 이 은행나무를 살리기 위해 '9011월부터 약 4년에 걸쳐 20여억 원의 예산과 인력을 들임으로써 그 자리에서 15m 높이로 성토하여 가산을 조성하고 지금의 위치에 올려 심었다. 이는, 우리국민의 나무사랑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자은 백승돈)

 

 

[탐방별기]

 

통산 제19차 탐방은 초여름 소만 절기인 517~ 18일에 12일 일정으로 경북 안동지역을 다녀왔다. 처음 우리가 이 탐방을 시작하면서 호기심을 갖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운다.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다닌다. 격의 없는 친구와 함께 지내는 사간을 갖는다.’ 등의 취지를 천명한 바 있는데 이번 탐방부터는 그 취지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 徐 兩位가 동참하게 되었다. 性甫 朱龍聖來堂 徐喆源은 모두 우리 3인과 함께 안암동에서 동문수학한 동기 동창이다. 성보는 일찍이 기업에서 사업을 익힘으로써 현재도 식료품 유통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이고, 내당은 공직 근무 중 일본 문부성 초청으로 오사카 대학에 유학하여 발효공학을 전공했고 박사학위도 받아 온 학구파이다. 어쨌든 양인의 참여로 우리의 탐방 행보는 더욱 활기가 넘칠 것이 분명하다.

 

 

* 왼쪽부터 성보 주용성, 지목 이정민, 자은 백승돈, 내당 서철원

 

출발일인 517()은 음력 4월 초파일로 긴 연휴가 이어졌기에 행락 차량이 많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시내에서 고속도로 TG에 진입하는 데만 두 시간 반이 걸렸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고서도 극심한 정체가 이어졌으므로 이게 좀 심한 말로 狂亂的 現狀이 아닌가 할 정도였다. 출발한 지 7시간여 만인 오후 4시 반경에야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주IC에서 빠져나와 안동방면으로 달렸다. 미리 상정한 경제적 순방 경로의 첫 탐방 목표인 녹전면 사신리 느티나무를 찾아갔고 해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둘러서 다음 목표인 와룡면 주하리 뚝향나무를 향해 달렸다. 이 나무는 진성 이씨 대 종택 뜰 앞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고택은 고려 말인 공민왕 때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운 송안군 이자수가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옛 사대부가의 면모를 잘 갖춘 고대건축 양식으로서 지방 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오늘 예정했던 세 번째 탐방은 내일로 미루고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자주 눈에 뜨이는 안동 시내로 진입했다. 숙소를 모텔에 정하고 안동 별미식을 찾아 나섰다.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 안동 헛제사밥”, “안동 찜닭”, “안동 간고등어”, “안동 소주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마침 가까운 거리에 안동찜닭 먹자거리가 있다고 해서 그곳을 찾아갔다. 그 시각이 밤 9시경인데도 먹자는 인파로 붐빈다. 몇몇 맛 소문이 났다는 집에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도 그 광란적 현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집들 몇 군데를 지나쳐서 좀 한적한 집으로 들어갔다. ‘같은 안동 찜닭을 하는 집인데 어디는 줄을 길게 늘어서고 어디는 이렇게 한산한가?’를 놓고 우리는 세미나를 벌여 본다.

 

두 가지 맛을 비교해 보지 못해 맛의 우열을 놓고 논할 수는 없지만, 안동 소주를 곁들여 우리가 먹는 이집 찜닭도 나무랄 데가 없다. 그 원인을, 역학과 풍수지리에 식견이 있는 지목이 밝힌다. 사업주의 사업운도 관련이 있겠지만, 이 집의 옥외 간판과 조명의 결함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술안주로 찜닭을 먹고 공기밥을 달라고 하여 후식 아닌 후식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 흔한 김치 따위도 없고 식초에 버무린 무 조각한 보시기를 내줄 뿐이다. 콩나물 국물이라도 한 공기씩 떠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먹자는 인파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다른 집은 어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저런 것이 파리 날리는 이 집의 결함이 아닐까 추측해 보게 된다.

 

식사 후 대형 매장에 들러서 몇 가지 주류와 간단한 안주 감을 사 가지고 숙소로 돌아와서 함께 마시며 밤늦게까지 정담을 나누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임동면 대곡리 굴참나무를 찾아갔다. 임하땜 건설로 수몰된 저수지변을 빙빙 돌아 깊은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니 간촌이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북쪽 높은 둔덕 위에서 마을을 굽어보며 우뚝 선 노거수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나무에 접근하느라 농수로를 건너고 험한 바위가 널린 계곡을 건너 어렵사리 올라갔다. 그런데 나무 뒤쪽으로는 자동차 길을 말끔하게 열어 놓았고 동제를 지낼 만한 제전 터도 닦아 놓았다.

 

그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길안면 송사리 소태나무였다. 이 나무는 길안초등학교 길송분교의 뒤뜰에 우뚝 서 있다. 물론 분교가 훨씬 후에 세워졌겠지만, 교정 안에는 이 소태나무 숲 외에도 잘 가꾸어진 정원수가 그득하고 김재동 분교장의 송덕비도 세워져 있다. 김 교장은 45년 교직 중 25년을 이 학교에서 봉직하여 지역사회와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육자인 듯싶다.

 

그 다음 탐방은 길안면 용계리의 은행나무였다. 주왕산 가는 길로 수려한 산세를 바라보면서 산길을 달렸다. 임하땜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이 나무는 4년여의 정성을 다한 난공사 끝에 그 자리에서 15m나 뽑아 올려 살려낸 불멸의 노거수가 되었다. 이 나무를 견고하게 지탱할 수 있도록 철주 지지대도 입체적으로 잘 설치해 놓았다. 그 덕인지 수세도 비교적 왕성한 편이어서 신록이 우거졌다. 아마 이 나무를 살려낸 감격으로 건립한 듯싶은 은행나무 전시관이 지어져 있는데 방문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휴관 상태이다. 이 전시관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이화여대 앞의 거리가 사랑을 맺어주는 거리라고 소문이 나서 중국인 연인들의 필수 방문지가 되었다고 하듯이 이 불멸의 노거수를 찾아 그 앞에서 인증 샷을 하면 무병장수가 보장된다.’는 속설이라도 유포해 볼 일이다. (이는 녹시의 제안임)

 

안동의 천연기념수 6개소 중 5개소를 탐방했고 남후면 광음리의 측백나무 자생지’ 1개소를 남겨 놨다. 이는 독립수가 아닌 군락지여서 그곳 탐방을 생략하고 그 대신 안동의 관광지 한 곳을 찾아가 보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몇 년 전에 영국 여왕이 다녀갔고 UNESCO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는 하회마을을 가 보기로 하였다. 그곳에 이르는 길도 빙글빙글 돌며 접근하게 되어 있어서 물길만 도는 게 아니고 찻길도 돌아 들어가야 하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동네 초입에는 이미 100m의 차량행렬이 대기하고 있다. 그 후미에 붙어 거북이걸음을 하며 따라 들어갔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구불구불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풍수지리상 드물게 보는 길지라고 알려졌다. 풍산 유씨가 600년 동안 양반 집성촌을 이뤘는데 임란때 영의정을 지내며 곤경에 처한 충무공을 변호하고 보살펴 준 서애 유성룡도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지금도 150여 호에는 주민이 상주하고 있는데, 옛 고건축 가옥이 남아 있다고는 하나 대체적인 인상이 근래에 지어진 듯싶고, 특히 샛노란 초가지붕은 영화촬영을 위해 급조한 세트장 같아 보인다. 주택 골목길에는 현대농법에서 쓰다 버린 폐농자재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고 상점도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기에 문화유산이라는 전통마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여기저기에서 차를 막고 입장료와 주차비를 징수하는 근무요원도 제복이나 제모 등 복장을 갖추지 않은 제각각의 T셔쓰를 걸친 더벅머리 총각들이다. 마을 입구의 긴 대기차량 행렬도 주차유도요원의 현장정리요령 미숙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얼마 전인 제17차 경주지방 탐방에서 이곳 하회마을과 같은 시기에 UNESCO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을 다녀온 바 있다. 그곳에 비해 이곳은 전반적으로 운영관리상태가 부실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하회마을을 끝으로 안동지역 탐방 여행을 마치고 귀경 길에 올랐다. 아직 연휴 중이어서 귀경 차량이 몰리지 않았기에 도로사정이 순조로웠다. 저녁나절 서울로 돌아와서 양재동의 그 서민 친화적 할머니 순대국밥 집에서 性甫來堂 兩位가 새로 동참한 안동지역 탐방의 성공을 자축하였다.(: 자은 백승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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