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들이 함께 걸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
김 재 황
이제 상황문학도 열한 번째의 문집을 함께 묶는다. 그 동안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지만,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그저 즐거운 일들만이 눈앞에 나타난다.
난곡 입구 사랑방에서 창밖에 인동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커피를 마시던 일, 군산열도를 찾아가서 달뜨는 한밤에 선유도 백사장을 함께 거닐며 옛 동요를 부르던 일, 한겨울에 함박눈 쏟아지는 곤지암의 냇가를 함께 거닐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일, 그리고 남해의 창선도 아리클럽의 펜션에서 함께 묵으며 바다의 일출을 바라보던 일,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우리 동인의 그림 개인전시회를 함께 큰 박수로 축하하던 일 등---, 모든 일들이 일순간에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그야말로, ‘문우가 함께 걸으니 이 아니 즐거운가!’(文友行 不亦樂乎!’)라고 소리치고 싶다. 이게 사람 사는 맛이고, 함께 늙어 가는 멋이다. 물론, 그 동안에 몇 사람은 우리 곁을 떠났고, 몇 사람의 새로운 동인을 맞이하였다. ‘회자정리’(會者定離)이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또한 자연의 이치! 겸손하게 따를 수밖에 없다.
이만큼의 걸음이라면 뿌리를 단단히 내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삼십 번째, 오십 번째, 일백 번째 ----그리고 더 많은 문집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려면 외적인 행적뿐만 아니라 내실을 기해야 한다. 문득 ‘중용’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 致廣大而盡精微 極高明而道中庸 溫故而知新 敦厚以崇禮.(고군자존덕성이도문학 치광대이진정미 극고명이도중용 온고이지신 돈후이숭례.)
-그러므로 ‘베풂이 높은 사람’은 ‘베풂’과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을 높이며, 묻고 배움으로써 길을 간다. ‘넓음에 이르는 것’을 크게 하고 ‘빈틈없이 꼼꼼하며 가늘고 작은 것’에 있는 힘을 다하며, ‘높고 밝음에’에 다다라서 ‘치우침이 없는 길’을 걸어가고, 옛것을 덥히어서 새로움을 알며, ‘지켜야 하는 마음가짐’을 채움으로써 도탑고 두텁게 한다.
우리는 문인이기에 선비의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공자의 말처럼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 한다. 서로 묻고 배움으로써 스스로의 품격을 높여야만 한다. 한 마디로, 문인다운 문인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항상 가슴 속에는 모든 목숨에 대하여 측은지심으로 감쌀 수 있는 넓은 아량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하찮다고 여기는 것까지 두루 살펴서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열정도 지녀야 한다.
나는, ‘문인이란 남보다 먼저 미래를 엿보고 온 사람’이란 말을 좋아한다. 이렇듯 미래를 예견할 수 있으려면 남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는, 땀 흘리는 노력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래야 높고 밝음에 다다를 수 있다고 본다. 높고 밝음에 다다른 후가 아니고는 ‘치우침이 없는 길’을 걸어가기 어렵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이뤄 놓은 일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미래를 더욱 단단히 다지자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우리 상황문학 문우들이 더욱 긴 행보를 이어 나가려면 반드시 서로간의 예의를 잃지 말아야 한다. 오래될수록 더욱 돈독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덕을 높인다는 말이다. 공자의 이 말이 언제나 귀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참으로 귀한 문우들이다. 이 문우들 덕택에 나는 문인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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