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충공원에서 촬영
오래 사는 게 좋기만 한 것인가
김 재 황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바란다. 이 세상이 고통의 바다이건만, 그래도 악착같이 하루라도 더 살려고 애쓴다. 왜 그럴까. 생존본능이 몸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까? 언젠가 맞이하여야 할 죽음이 두렵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도 오래 살기를 바란다. 이왕에 태어났으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어 보고 싶다.
그러면 사람은 얼마 동안이나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장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이름은 동방삭(東方朔)! 그는 중국 전한(前漢) 시대의 사람으로 자그마치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고 한다. ‘삼천갑자’라고 하면, 갑자인 60년의 3000배로 계산하여 18만 년이나 된다. 너무나 긴 세월이다.
동방삭은 중국 평원군(平原郡) 염차현(厭次縣)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자(字)는 ‘만천’(曼倩)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언(奇言)과 기행(奇行)으로 이름이 났고, 한나라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아서 수십 년 동안 황제 측근으로 머물면서 ‘태중대부’(太中大夫)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하던가. 그런데 한나라 시대(漢代)로부터 그에게 황당한 일을 기탁(寄託)하는 경우가 유행하여 그에 대한 장수 설화가 생기게 되었다고 전한다. 내가 알기로, 동방삭은 기원전 154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92년에 죽었다. 그러니 그는 겨우 환갑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그 다음으로 장수하였다고 알려진 사람은 팽조(彭組)이다. 팽조는 장자의 ‘우언’(寓言) 속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초지남유명령자, 이오백세위춘, 오백세위추. 상고유대춘자, 이팔천세위춘, 팔천세위추. 이팽조내금이구특문, 중인필지, 불역비호!)
-초나라 남쪽에 ‘어두운 신령’(명령)이라고 하는 것(거북)이 있는데, 5백 년을 봄으로 삼고 5백 년을 가을로 삼는다. 오랜 옛날에 ‘큰 참죽’이라는 것(나무)이 있는데, 8천 년을 봄으로 삼고 8천 년을 가을로 삼는다. 그런데 ‘팽조’라는 사람만이 오늘날까지 특히 오래 살았다는 소문에 뭇사람이 그와 비슷하게 되기를 바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팽조는 성이 ‘전’(籛)이고 이름은 ‘갱’(鏗)이다. 육종(陸終) 씨의 셋째 아들로 전욱(顓頊) 황제의 그 현손이라고 전한다. 다시 말해서, 헌원(軒轅) 황제의 6대 손자라고 한다. 요순시대부터 주(周)나라 초기까지 800여 년을 살았단다. 그는 사천성(四川省) 미산시(眉山市) 팽산진(彭山鎭)이 고향이라고 하는데,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3살 때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서 고아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말이 적고 침묵을 좋아했다. 그리고 혀로 입술을 자주 핥고 입 안에 가득 고인 침을 삼키는 버릇이 있었다고도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700살이 넘었어도 마치 소년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팽조는 공자보다 1000년 전에 살았다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논어’(論語)에는 팽조에 대하여 기술한 공자의 말이 다음과 같이 들어 있다. 즉, 논어의 술이 편에는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이라는 구절이다. 이는, ‘알리려고 쓰되 새롭게 짓지는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은근히 몰래 우리 노자와 팽조에 견주어 본다.’라는 뜻이다. 이로 보아서 공자 또한 팽조의 이야기를 들었음이 분명하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기도 하고, 게다가 800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말이니, 허무맹랑하여 나는 선뜻 믿기 어렵다. 멀쩡한 정신으로 이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그 또한 동방삭의 일처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하여 부풀려진 이야기가 전해졌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일설에는, 소갑자 계산법인 60일을 1세로 잡았다고도 본다. 그렇게 계산하면 130세 정도가 된다.
그런데 믿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중국의 이경원(李慶遠)이라는 사람은 무려 256년 동안이나 이 세상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가 태어난 해는 1677년이고 그가 세상을 떠난 해는 1933년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는 내가 태어나기 불과 9년 전까지 이 세상에 살아 있던 사람이다.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도 볼 수 있으니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경원의 원적은 운남성(云南省)이라고 되어 있다. 90여 세 되던 해에 사천성(四川省) 개현(開縣)에 정착했다고도 한다. 그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는데 이청운(李靑雲)이다. 그는 일생 동안 24명의 부인을 먼저 떠나보냈다고 하며 200명이 넘는 자손을 남겼다고 밝혔다.
기록에 따르면, 1827년에는 청나라 궁중에서 그의 150번째 생일 축하연을 열어 주었고, 1877년에도 마찬가지로 그의 200번째 생일 축하연을 열어 주었다고 전한다. 그는 200살이 넘었을 때에도 행동거지가 장년(壯年)과 같았다니 놀랍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그와 같았다.
그가 밝힌 장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즉, “마음을 늘 조용히 하고 거북이처럼 앉으며 비둘기처럼 활발하게 걷고 개처럼 잠을 자라.”였다. 그가 즐겨 먹었다는 약초들도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일생 동안에 연잎, 결명자, 나한과, 구기자, 병풀, 참마 등을 자주 달여 마셨다고 알려져 있다. 연잎의 효능은 ‘늙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명자는 ‘눈을 밝게 만드는 것’이다. 나한과(羅漢果)는 박과 식물인데 열매 속의 과육이 저칼로리 감미료로 쓰인다. 또한, 병풀은 생약명이 ‘적운초’(積雲草)이고 주로 통증이나 결석증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다. 그런가 하면 참마는 산약(山藥)으로 강장과 건위의 약초이고 보비폐신(補脾肺腎)의 약재이다. ‘보비폐신’이란 비장과 폐장과 신장의 기운을 돕는다는 뜻이다. 특히 구기자의 차를 날마다 마셨다는데, 이는 ‘불로장생’의 명약이다.
어쨌든 의문 하나는 남는다. 그가 그리 오랜 세월을 사는 동안 늘 즐겁기만 했을까? 문득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늘 싯다르타를 따라다니며 보필하였다는 ‘아난다’! 그는 싯다르타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의 결집 때에 ‘여시아문’(如是我聞: 나는 이렇게 들었다.)을 기술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그 후에 120살이 넘도록 살았는데 너무 살기가 지겨운 나머지 쪽배를 타고 강의 안쪽으로 들어가서 배에 불을 지르고 삶을 마감했다는 기록을 보았다.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오래 살수록 그만큼 욕된 일이 많이 생김’을 이르는 말이다. 어찌 그렇지 아니한가. 요즘도 방송을 듣다 보면, 이 나라에 늙은이들이 너무 많아서 젊은이들에게 짐이 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내 밥을 내가 먹을 뿐, 남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없건만, 그들은 그리 말한다. 그래도 거울을 보면 슬프기만 하다. 머리는 이미 백발이 되었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버스를 타도 내 옆자리로는 즐겨 오려고 하는 젊은이가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어찌 하겠는가. 젊어지는 샘물이라도 있으면 마셨으면 싶고, 삼년고개라도 있다면 몇 번이고 구르고도 싶다.
하지만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라고 했다. 노욕을 부리면 추하다. 정말이지, 사람에게 얼마나 사느냐는 크게 의미가 없다. 어떻게 사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폴레옹(1769년~1821년)은 겨우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영웅이 되었고, 싯다르타(기원전 624년~ 기원전 544년)는 80세를 끝으로 우리에게 귀한 믿음을 주었으며,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 기원전 399년)는 71세를 살았으나 크나큰 철학자가 되었고, 공자는(기원전 551년~ 기원전 479년) 73세에 이르러서 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중국의 왕필(王弼, 226년~249년)이라는 사람은 겨우 24세밖에 살지 못했으나 중국 위진(魏晉) 시대 현학(玄學)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는 18세에 ‘노자주’(老子註)를 지었고 20대 초반에 ‘주역주’(周易註)를 지음으로써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런데 더욱 놀랍게도, 아직까지 그의 주석을 능가하는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늙은 모습이야 쉽사리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너그럽게 펴서 베풂을 실천해야 하겠다. 입은 닫고 지갑을 자주 열어야 하겠다. 그리고 열심히 움직여서 나이는 먹더라도 몸은 건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겠다. 잘 걷지도 못하면서 나다닌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 뿐이다. 중국의 이경원이라는 사람에게 부러운 게 있다면, 끝까지 장년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반드시 본받아야 한다. 밥값을 하는 동안은 살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 동안은 버티면서 의연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멋지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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