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황 시조시인의 『마주하고 다가앉기』(신세림출판사, 2017) 속에는, 그 많고 많은 당시인(唐詩人)들과 그들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1인 1편씩 100편을 엄선하여 ①원작(原作)을 먼저 소개하고, ②직접 우리말로 번역한 한글시를 나란히 소개하고, ③원작자에 대하여 간략히 소개하면서, 원작에 대한 감상의 소회를 오직 시조(時調)로써 밝혀 놓은, 그래서 당시인 100인의 100편과 그에 상응하는 김재황 시조시인의 시조 100편이 대비(對比)되어 있다. 말 그대로, 당시(唐詩)와 시조(時調)의 대면(對面)이고, 당시인 100인과 김재황 시조시인 개인의 상면(相面)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 그 수준이나 그 품격은 독자들에게 맡기되, 모든 생업을 전폐하고 오로지 문사(文士)로서 평생 문장을 가까이 해온 사백(詞伯)의 올곧은 정신과 노작(勞作)을 치하해 마지않는다. -이시환 시인/문학평론가
책머리에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지 그 나름으로 고유한 민족시(民族詩)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없다면 그게 무엇보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멋진 민족시를 지니고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시조’(時調)이다.
게다가 ‘시조’는 엄격한 절제를 지닌 정형시(定型詩)이다. 모두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형시란 ‘전통적으로 시구(詩句)나 글자의 수와 배열의 순서 및 운율 등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시’를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정형시는 한시(漢詩)일 것 같은데, 한시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운 시기는 당나라 때로 이른바 당시(唐詩)이다. 당시들을 살펴보면 그 형(型)이 매우 엄격하게 짜여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한다면, 시에 있어서 그 엄격함이 정형시의 전성시대를 이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바야흐로 한류(韓流)가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의 한가운데에 ‘한글’이 있다. 한글의 위대성을 알리는 방법이 많겠으나, 이를 문학작품, 특히 시(詩)로써 알리는 방법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그것도 자유시가 아니라, 민족시인 ‘시조’(時調)로 알린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겠는가.
중국의 당시는 멋지고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의 시조는 더욱 멋지고 더욱 훌륭하다. 나는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당시(唐詩) 일백 편을 자세히 음미해 보고, 그 한 편마다 화답시(和答詩)로 시조 한 편씩을 지었다. 이를테면, 이는 ‘시조가 당시와 마주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서 백 명 당시인(唐詩人)에 대한 한 명 시조시인(時調詩人)의 마주 보기이기도 하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시조를 더욱 정형으로 조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강조하건대, 시조는 정형시이다. 그러면 시조의 자수 정형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시조의 정형을 ‘초장과 중장의 각 구 음절을 3 4나 4 4로 하고, 종장 전체의 음절을 3 5 4 3 또는 3 5 4 4로 한다.’라고 보았다. 그런데 문득, ‘할부정 불식(割不正 不食: 반듯하게 썰지 않았으면 먹지 않는다.<논어 향당8>)’이라는 공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작부정 불독’(作不正 不讀 반듯하게 짓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을 떠올렸다. 다시 말해서 시조를 정형에 맞추어서 네모반듯하게 써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듣기에도 정형이고 보기에도 정형인 시조(時調)!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당시(唐詩)와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녹시(綠施) 김 재 황
차 례
책 머리에/ 000
제1부 강정에서 달밤에 헤어져 보내다
001. 江亭月夜送別(강정월야송별)- 王勃(왕발)/ 000
002. 曲池荷(곡지하)- 盧照鄰(노조린)/ 000
003. 在獄詠蟬(재옥영선)- 駱賓王(낙빈왕)/ 000
004. 夏日過鄭七山齋(하일과정칠산재)- 杜審言(두심언)/ 000
005. 下山歌(하산가)- 宋之問(송지문)/ 000
006. 巫山(무산)- 沈佺期(심전기)/ 000
007. 登幽州臺歌(등유주대가)- 陳子昻(진자앙)/ 000
008. 桃花谿(도화계)- 張旭(장욱)/ 000
009. 題袁氏別業(제원씨별업)- 賀知章(하지장)/ 000
010. 照鏡見白髮(조경견백발)- 張九齡(장구령)/ 000
011. 經鄒魯祭孔子而歎之(경추노제공자이탄지)- 唐玄宗(당현종)/ 000
012. 涼州詞(양주사)- 王翰(왕한)/ 000
013. 春行寄興(춘행기흥)- 李華(이화)/ 000
014. 春思(춘사)- 賈至(가지)/ 000
015. 從軍行(종군행)- 令狐楚(영호초)/ 000
016. 不見來詞(불견래사)- 施肩吾(시견오)/ 000
017. 夜歸鹿門山歌(야귀녹문산가)- 孟浩然(맹호연)/ 000
018. 還至端州驛前與高六別處(환지단주역전여고육별처)- 張說(장열)/ 000
019. 贈盧五舊居(증노오구거)- 李頎(이기)/ 000
020. 次北固山下(차북고산하)- 王灣(왕만)/ 000
제2부 문서성에서 본 배나무 꽃
021. 左掖梨花(좌액이화)- 邱爲(구위)/ 000
022. 登鸛雀樓(등관작루)- 王之渙(왕지환)/ 000
023. 閨怨(규원)- 王昌齡(왕창령)/ 000
024. 終南望餘雪(종남망여설)- 祖詠(조영)/ 000
025. 送楊山人歸嵩山(송양산인귀숭산)- 李白(이백)/ 000
026. 秋夜獨坐(추야독좌)- 王維(왕유)/ 000
027. 田家春望(전가춘망)- 高適(고적)/ 000
028. 山下晩晴(산하만청)- 崔曙(최서)/ 000
029. 入若耶溪(입약야계)- 崔顥(최호)/ 000
030. 隨流水居(수류수거)- 劉眘虛(유신허)/ 000
031. 昭君墓(소군묘)- 常建(상건)/ 000
032. 春怨(춘원)- 金昌緖(김창서)/ 000
033. 秋日(추일)- 耿湋(경위)/ 000
034. 南樓望(남루망)- 盧僎(노선)/ 000
035. 子夜四時歌 · 春歌(자야사시가 · 춘가)- 郭震(곽진)/ 000
036. 憫農 二首(민농 이수)- 李紳(이신)/ 000
037. 浮石瀨(부석뢰)- 劉長卿(유장경)/ 000
038. 月夜(월야)- 劉方平(유방평)/ 000
039. 遊龍門奉仙寺(유용문봉선사)- 杜甫(두보)/ 000
040. 寄左省杜拾遺(기좌성두습유)- 岑參(잠삼)/ 000
제3부 ‘모이는 집’이라는 이름의 여울
041. 欒家瀨(란가뢰)- 裵廸(배적)/ 000
042. 石井(석정)- 錢起(전기)/ 000
043. 石魚湖上醉歌(석어호상취가)- 元結(원결)/ 000
044. 山館(산관)- 皇甫冉(황보염)/ 000
045. 楓橋夜泊(풍교야박)- 張繼(장계)/ 000
046. 宮詞(궁사)- 顧況(고황)/ 000
047. 尋陸鴻漸不遇(심육홍점불우)- 皎然(교연)/ 000
048. 江鄕故人偶集客舍(강향고인우집객사)- 戴叔倫(대숙륜)/ 000
049. 夕次盱眙縣(석차우이현)- 韋應物(위응물)/ 000
050. 江村卽事(강촌즉사)- 司空曙(사공서)/ 000
051. 拜新月(배신월)- 李端(이단)/ 000
052. 同吉中孚夢桃源(동길중부몽도원)- 盧綸(노륜)/ 000
053. 汴河曲(변하곡)- 李益(이익)/ 000
054. 烈女操(열녀조)- 孟郊(맹교)/ 000
055. 送孔徵士(송공징사)- 權德輿(권덕여)/ 000
056. 十五夜望月(십오야망월)- 王建(왕건)/ 000
057. 沒蕃故人(몰번고인)- 張籍(장적)/ 000
058. 左遷至藍關示姪孫湘(좌천지남관시질손상)- 韓愈(한유)/ 000
059. 秋思(추사)- 白居易(백거이)/ 000
060. 飮酒看牧丹(음주간목단)- 劉禹錫(유우석)/ 000
제4부 시냇물 흐르는 골짜기에 살다
061. 溪居(계거)- 柳宗元(유종원)/ 000
062. 卾州寓館嚴澗宅(악주우관엄간댁)- 元稹(원진)/ 000
063. 題李凝幽居(제이응유거)- 賈島(가도)/ 000
064. 出山作(출산작)- 盧仝(노동)/ 000
065. 金縷衣(금루의)- 杜秋娘(두추랑)/ 000
066. 早秋(조추)- 許渾(허혼)/ 000
067. 題金陵渡(제금릉도)- 張祜(장호)/ 000
068. 宮中詞(궁중사)- 朱慶餘(주경여)/ 000
069. 旅宿(여숙)- 杜牧(두목)/ 000
070. 蟬(선)- 李商隱(이상은)/ 000
071. 隴西行(농서행)- 陳陶(진도)/ 000
072. 贈少年(증소년)- 溫庭筠(온정균)/ 000
073. 渡漢江(도한강)- 李頻(이빈)/ 000
074. 勸酒(권주)- 于武陵(우무릉)/ 000
075. 秦娥(진아)- 劉駕(유가)/ 000
076. 長門怨(장문원)- 劉言史(유언사)/ 000
077. 題新雁(제신안)- 杜筍鶴(두순학)/ 000
078. 尤溪道中(우계도중)- 韓偓(한악)/ 000
079. 貧女(빈녀)- 秦韜玉(진도옥)/ 000
080. 除夜有懷(제야유회)- 崔塗(최도)/ 000
제5부 봄날에 늦게 일어나다
081. 春日晏起(춘일안기)- 韋莊(위장)/ 000
082. 寄人(기인)- 張泌(장필)/ 000
083. 無題(무제)- 寒山(한산)/ 000
084. 秋朝覽鏡(추조람경)- 薛稷(설직)/ 000
085. 古意(고의)- 崔國輔(최국보)/ 000
086. 溪居(계거)- 裴度(배도)/ 000
087. 寄韋秀才(기위수재)- 李群玉(이군옥)/ 000
088. 牧童(목동)- 呂巖(여암)/ 000
089. 懷故國(회고국)- 修睦(수목)/ 000
090. 題長安主人壁(제장안주인벽)- 張謂(장위)/ 000
091. 送麴司直(송국사직)- 郞士元(낭사원)/ 000
092. 漢上題韋氏莊(한상제위씨장)- 戎昱(융욱)/ 000
093. 和練秀才楊柳(화연수재양류)- 楊巨源(양거원)/ 000
094. 從秦城回再再武關(종진성회재재무관)- 李涉(이섭)/ 000
095. 登樓(등루)- 羊士諤(양사악)/ 000
096. 題都城南莊(제도성남장)- 崔護(최호)/ 000
097. 長安秋望(장안추망)- 趙嘏(조하)/ 000
098. 天津橋春望(천진교춘망)- 雍陶(옹도)/ 000
099. 宿雲門寺閣(숙운문사각)- 孫逖(손적)/ 000
100. 過野叟居(과야수거)- 馬戴(마대)/ 000
(부록)
1. 한시의 세계/ 000
2. 저자 녹시 김재황 연보/ 000
45. 단풍나무 다리에서 밤을 머무르다
[원문]
楓橋夜泊(풍교야박)
張繼(장계)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고소성외한산사) 夜半鍾聲到客船(야반종성도객선)
[녹시 역]
단풍나무 다리에서 밤을 머무르다
장계
달 지고 까마귀 울며 서리는 하늘에 가득한데
강가 단풍과 고기잡이불은 시름에 졸며 만난다.
‘시어머니 쉬는 성’ 밖에 있는 ‘시린 산의 절’
한밤중 종소리는 나그네가 탄 배에 이르는구나.
[장계에 대하여]
태어난 해와 숨을 거둔 해가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양양현(襄陽縣) 또는 하남성(河南省) 남양현(南陽縣) 사람이라고 한다. 이 시는 그의 나이 56세 때에 지었다고 한다.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풍교 근처의 부두에서였다고 전한다. 풍교는 강소성(江蘇省) 오현(吳縣) 창문(閶門) 밖의 10리쯤에 있다고 한다. 옛 이름은 ‘봉교’(封橋). 그 후 753(천보 12년)년에 진사과에 급제하여 강남에서 염철판관(鹽鐵判官)을 지냈다고 한다. 자(字)는 ‘의손’(懿孫)이다.
[녹시가 시조 한 수]
나그네 타는 마음을
김 재 황
날개를 꺾였으니 고향 가긴 어려운 일
저무는 나루에는 고운 놀빛 물든 단풍
나그네 타는 마음을 우는 종이 보태네.
고우 회보
《마주하고 다가앉기》
김재황(농학61) / 신세림출판사 / 1만 5000원
그동안 다양한 시조집을 선보인 김재황 교우가 중국 당시(唐
詩)에 자신의 화답 시조를 곁들여 엮은 책이다. 책은 당시 100
편의 원작, 번역 한글시, 원작자에 대한 소개와 그에 대한 저
자의 시조 100편을 담고 있다. 저자는 아름다운 중국 당시에
정형성이 빛나는 화답 시조를 선보임으로써 ‘시조와 당시의
대면’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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