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근 작 단편소설 ‘흙냄새’를 읽으며
김 재 황
이 단편소설은, 강덕근이라는 은행원이 말 한 마디를 잘못했다가 시골로 쫓겨나서 생활했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적은 내용인데, 그 과정을 함께 따라가며 간접 체험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우선 그의 말실수를 알아본다. “암탉이 울면 그 집안이 망한다.” 이건 아주 큰 잘못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직자가 이 말을 했다면, 여성 비하 발언이라고 세상이 발칵 뒤집히게 될 게 뻔하다. 물론, 그 자리에서 쫓겨날 정도로 심각한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강덕근도 현행반혁명의 이유로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깊은 골 ‘금강촌’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어쨌건 달리는 속도는 꽤나 빨랐다. 사처에 수림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고개를 서너 개 넘었는데 까마귀가 얼마나 짖어대는지 귀청이 얼얼했다.』
뒤를 따라가고 있노라니 나 또한 까마귀 소리를 듣는다. 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삼족오’(三足烏)라고 하여 ‘해 속에 살고 있는 까마귀’를 숭상했는데, 지금은 홀대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반포지효’(反哺之孝)라고 해서 ‘늙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의 효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 또한 시조 한 수를 보탠다.
그 목소리 흉하다고 흉보는 이 있더라도
귀를 열고 듣노라면 ‘가옥가옥’ 들리건만
마음에 때가 묻으니 노래마저 울음 같아.
졸시 ‘까마귀에 대하여’ 중
드디어 강덕근 일행은 ‘금강촌’이란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 사정이 어려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 하면, 그들이 거처할 장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용인 즉, 그의 식구들은 소학교 숙직실에서 지내야 된다고 했고, 게다가 강덕근의 늙은 아버지는 외양간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임시적인 조치를 강조하면서---.
『외양간 문을 열자 크나큰 가마솥이 달린 부엌이 보였고 문짝이 없는 방으로 들어서자 꽤나 넓은 구들이 있었다. 구둘 위에 깔아놓은 삿자리는 헐렁해 곳곳에 구멍이 뚫어져 있었는데 손으로 눌러보니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외양간이라면 응당 소가 떡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이 상황이 소하고는 거리가 멀다. 시골의 풍경은 반 이상을 소가 그려낸다고 하여도 그리 과언은 아니다. 문득, 예전의 농촌을 그려 본다. 외양간에는 멋지게 생긴 황소가 그 청아한 음성으로 긴 소리를 뽑고, 부엌에서는 할머니가 김이 무럭무럭 나게 여물을 끓이신다. 이 정경에 시조 한 수가 없겠는가.
잠든 밭 깨우려고 날 선 쟁기 끌었을 터
기세 좋은 더위마저 갈아 넘긴 뚝심이여
지난 날 되새기는 듯 누운 산을 바라본다.
졸시 ‘황소의 눈’ 중
쫓겨 간 처지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는 아니다. 마련해 준 대로 몸을 뉘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행이 그곳의 책임자인 김대장은 괜찮은 사람인 듯싶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법. 그런데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며 김대장이 뭔가를 들고 왔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여기에 쓰이는 것인가.
『“저녁을 해 자셔야지 않갔소. 자, 어서 받으시구레.” 김대장의 손에는 쌀을 비롯해 오이 호박 감자와 간장 된장이 쥐어져 있었다. “아니?” 나는 너무도 의외여서 짐짓 놀라면서 대뜸 말을 이었다. “이거 정말 감사합니다.”』
이처럼 큰 베풂이 어디에 있겠는가. ‘저녁을 어찌 해결해야 하나?’하고, 앞이 깜깜했을 강덕근 식구들 앞에 쌀과 찬거리를 가져다가 놓았으니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더군다나 곡식 중 다른 것도 아니고, 그 귀한 쌀을 얻게 되었으니 그 기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에게 쌀은 바로 목숨인데, 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현실이 참으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시조 한 수를 내놓는다.
너에게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살아가니
밥알 하나 눈물 씹듯 입에 넣을 일이거늘
아가야 흘리지 마라, 하느님이 벌주신다.
졸시 ‘밥을 앞에 놓고’ 중
금강촌은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아니, 아름답게 가꾸어진 마을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불모지였던 그곳을 땀을 흘리며 그렇듯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 마을은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는 게 아닌가. 논어(論語) 이인(里仁) 편에는 다음과 같은 공자님 말씀이 들어 있다. ‘이인 위미 택불처인 언득지(里仁 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이 말은 ‘어진 마을에 사는 게 아름다우니 택하여 어진 마을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라는 뜻이다.
『마을을 나서자 사방은 수전으로 일망무제하게 펼쳐졌다. 논밭 저쪽으로 해서 언덕바지가 있었는데 거기에 뿌리를 박고 우중충하게 자란 백양나무 우듬지에서 까치가 꼬리를 탈삭이며 깎, 깎 울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까치가 여기에 등장한다. 왜? 시골 마을이니까. 이미 앞에서 산속을 지날 때 ‘까마귀’를 만났는데, 이제 여기에서는 ‘까치’를 만나고 있다. ‘까치’는 동네 근처에 둥지를 짓고 산다. 대표적인 텃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하는 소리로 ‘깍깍’ 짓는다. 그러면 까마귀는 어디에 둥지를 트는가? 내가 알기로, 까마귀는 떼를 이루어서 깊은 산속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까치가 등장했으니, 이곳은 동네가 맞다. 시조 한 수가 또 있어야 하겠다.
떠난 여름 그 까치는 마냥 마음 넉넉해서
빈 전봇대 꼭대기에 바람 새는 집을 짓고
나더러 ‘깎아라! 깎아!’ 나무라듯 외쳤네.
졸시 ‘까치 소리로 배우다’ 중
농촌의 일은 혼자서 하는 것보다 여럿이 어울려 하기에 힘이 덜 든다. 이를 ‘품앗이’라고 한다. 이런 놓촌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땀이 필요하다. 이 마을이 꾸며지게 된 데는 1919년 3월 1일과 무관하지 않다. 김대장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것 때문에 왜놈들의 추적을 받고 피신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정착을 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봉천(지금 신림)으로 갔다가 다시 여기로 왔다.
『그렇게 되어 한 무리 조선인들이 역시 조선에서 만주로 건너올 때처럼 괴나리봇짐을 해들고 걷고 걸어서 따황디(大荒地)라는 고장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도착하자마자 모든 것을 제쳐놓고 갈대를 헤치고 그 밑의 흙을 한 줌 쥐여 코에다 가져다 대고 쿡쿡거리며---』
아, 흙냄새가 바로 사람의 냄새가 아니겠는가. 그들은 나무를 베어서 오두막을 짓고 갈대를 베어서 지붕을 덮었다. 그리고 그 황무지를 개간하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고역이었다고 말한다. 구슬땀을 흘리고 흘린 끝에 논을 만들고 송화강 지류에서 흘러 내려온 물을 도랑으로 논에 대었다. 그리고 모판을 만들어 모를 기르고 논에 모를 심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 이름을 할아버지 고향에서 멀지 않은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촌’이라고 불렀다. 고향이 따로 있겠는가. 이렇듯 땀과 마음을 쏟으면 그곳이 고향이리라. 나도 시조 한 수 곁들인다.
그슬린 논둑 위로 남아 있는 풀잎 서넛
가냘픈 마음들이 아지랑이 불러내면
정자목 깨문 하품이 징검돌을 딛고 간다.
졸시 ‘복사꽃 고향’ 중
강덕근 식구들의 금강촌의 생활은 하루하루 적응되어 갔다. 벼와 돌피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을에서 돼지를 잡았을 때는 그 고기도 분배받았으며, 김대장의 중학교 3학년생 딸이 통발로 잡은 미꾸라지 탕(추어탕)을 함께 먹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땡볕에서 밭의 김도 매었다. 강덕근은 시골 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갔는데, 어느 틈에 도시생활보다 이곳 생활이 더 좋아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은 흙벽돌로 집도 지어 주었다.
『할아버지가 이 땅을 개간할 때 우선 갈대 밑바닥에 깔린 흙을 한 줌 집어서 맡아 본 게 바로 비릿하면서도 구수한 냄새였는데 그런 토지야말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선결조건이면서 농민들의 생명 줄이라는 걸 김대장이 대장으로 선거된 뒤에야 알게 되었는데 우리 농민들이 바로 그런 냄새 풍기는 논과 밭에 오곡의 씨를 뿌리고 거기서 곡식이 산출되어 모두들 그것을 먹고 살았으니까 실은 우리가 지렁이처럼 흙을 먹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고말고. 지렁이와 우리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목숨을 지닌 것이라면 그 모두가 흙을 먹고 살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이 흙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구 흙을 훼손하고 있다. 흙이 죽어 버리면 우리 또한 죽게 된다. 지렁이가 사는 땅이라야 농사도 지을 수 있다. 예전에는 흙을 조금만 파도 지렁이를 쉽사리 볼 수 있었건만, 지금은 지렁이를 보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시조로 ‘지렁이 예찬’을 여기 더한다.
눈 없고 발 없다고 깔보아선 안 되느니
이 땅을 지키는 건 바로 그가 맡았단다,
밥 먹는 사람들이여 모두 함께 큰절을!
졸시 ‘지렁이 예찬’ 전문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1년이 지났을 때, 뜻밖에도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돌아오라는 통지가 왔다. 그런데 강덕근은 솔직한 심정으로 원래 직장으로 가기가 싫었다. 그러나 조직의 몸이었기에 조직의 지시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여기에 주목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거주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절감한다. 자기가 살아가야 할 곳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그 삶이 어찌 행복하겠는가. 하지만 그곳에선 주어진 삶 속에서 그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다행이 은행으로 돌아간 강덕근은 휴일을 모르면서 사업에 모든 열중을 기우렸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의 귀띔을 받고 금강촌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대장이 다쳐서 절룩거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금강촌을 지켜야 한다면서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그렇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할 일에 온 힘을 쏟는다면 어찌 ‘좋은 마을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또한 그런 모습을 지녀야 한다. 자기가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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