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순 작 단편소설 ‘하얀 무지개’를 읽고
김 재 황
소설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읽고 싶다’라는 내면적 호기심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의 제목이 ‘하얀 무지개’이니 그렇다는 말이다. ‘무지개’라면 형체가 있는 게 아니다. 허공의 작은 물방울들이 햇빛을 받아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원형 일곱 빛깔의 아름다운 줄’인 무지개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하얀 무지개는 무엇을 뜻하는가.
작가의 초등학교 동창생으로 등장하는 ‘예금이’는 작가보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소위 ‘닭똥과자’를, 작가는 그녀를 통하여 맛을 보았다. 그 기억이 일생 동안 작가의 뇌리에 자리 잡고 있다. 여유 있는 가정의 ‘예금이’는 ‘채색 띠 같은 오색 무지개’를 가슴에 안고 살았다. 아니, 작가에게도 ‘그 무지개가 요정마냥 하늘에 동화 같은 다리를 걸어놓고 유혹’의 손길을 보내곤 했다. 그 정경이 이 소설에 다음과 같이 잘 묘사되어 있다.
「예금이는 ‘재봉틀집’ 외동딸이었다. 그에게는 손재봉 일로 동네 사람들의 옷을 지어주며 품
삯을 받는 재간 있고 인물 좋은 어머니가 계셨다. 그래서인지 예금이의 주머니엔 잔돈푼이 늘 떨어지지 않았다. 예금이는 또래 친구들 중에서 인물 체격도 최고였지만 옷도 언제나 잘 입고 다녔고 책가방에 군짓거리도 늘 있었다. 특히 닭똥과자는 그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그와 나는 친구들이 다 인정하는 십대 문학 소녀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틈만 생기면 저 멀리 세린하를 끼고 있는 우리 학교 근처의 버들 방천으로 가서 이해 못할 돈키호테의 대사를 모방해 보고 푸시킨의 시를 읊곤 했다.」
이렇듯 꿈이 많은 문학 소녀였고 집안 또한 넉넉한 처지였으니, ‘예금이’는 그 가슴에 이미 봄이 가득하였다. 나로서는 조숙하다고 여겨지지만, 연애 쪽지도 쓰고 초등 졸업 준비를 하던 어느 날에는 ‘예금이’와 반장의 연애편지가 공개됨으로써 ‘전 반이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 후 ‘예금이’는 ‘가수의 꿈’을 지니게 된다. 그 꿈에 빠지면 유혹도 생겨나는 법, ‘예금이’는
북조선으로 가서 방직공장의 고된 일을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어찌어찌 문예 연출단의 어린 가수로 작은 명성을 얻게 되지만 그곳까지 찾아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서 돌아오고 만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에 가수의 기회가 있기는 있었다. 어느 시의 가무단에서 가수를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급히 달려갔는데, 도진 편도선염 때문에 그 기회마저 놓쳐 버렸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에금이’는 무작정 ‘가수가 되는 꿈’을 마음에서 놓지 않았다. 소설의 설명처럼 그녀는 ‘방법도 정보도 스승도 없이 꽉 막힌 구석지고 자그마한 촌마을에서 방향 잃은 사슴마냥’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때까지가 아마도 ‘예금이’에겐 ‘아름다운 무지개’를 쫒던 시절이었던 듯싶다. 그러나 ‘예금이’는 북경대학의 한 남자를 만나면서 일곱 색깔 무지개와 같은 ‘가수의 꿈’을 접고 말았다. 결혼은 ‘예술의 무덤’이라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니듯이, 그녀는 북경대학 학생과 결혼을 함으로써 무지개의 꿈을 접고 가정에 안주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무지개는 아름다운 빛깔을 잃었다. 이는 바로 소설 제목에서 밝힌 ‘하얀 무지개’를 상기하게 만든다. 그녀가 유능한 남자와 결혼하였으니 앞으로 그의 삶은 희망적이었을까. 어쩐지 자꾸만 ‘하얀 무지개’가 발목을 잡는다. 이 소설의 한 대목인 ‘항상 자신감에 가득 차 있던 그의 얼굴엔 옛적 도도하던 빛이 사라졌다.’에서 크나크게 불길한 예감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작가와 ‘예금이’는 소식이 두절되었다. 또, 흐르는 물같이 십여 년이 흘렀다. 작가는 ‘예금이’를 여러 경로로 수소문한 끝에 그녀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그녀를 찾아가기에 이른다. 그 당시에 ‘예금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불길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었을까? 여기에 그 해답을 나타내는 한 대목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진한 화장을 하고 문 밖에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예금이를 보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였다. 엉거주춤 서 있는 그의 자세는 옛날 버들가지처럼 쭉 뻗었던 멋쟁이 몸매가 아니었다. 그리고 검은 포도 알처럼 맑고 또랑또랑하던 눈망울은 물에 풀려져 있는 새알같이 힘이 없었다. 두서없이 그려진 그 눈가의 아이섀도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어쩐지 슬퍼졌다. 낡은 아파트는 한 계단 한 계단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그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잘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예금이’에게 지녔던 ‘하얀 무지개’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또 한 번 때가 묻는다. 아! 이제는 ‘회색 무지개’라고 말해야 옳지 않았을까. 금시에 하늘에 먹구름이 짙게 끼고 금방이라도 슬픈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다리까지 절다니--- 왜?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와 남편과의 사이에 딸 셋이 있었으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별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 남편이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남편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남겼지만, 유명한 문학선배인 시인을 만나서 뜨거운 관계로 발전되자, 그 돈마저 세 딸들이 몰려와서 모두 가져가 버렸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금이’는 그와 결혼을 하였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마저 췌장암으로 그녀 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어찌 신의 장난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 기가 막히면 하얗게 질리게 된다. 내가 앞에서 언급한 ‘회색 무지개’는 그래도 조금의 희망은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실낱같은 그 희망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하얀 무지개’로 다시 변해 있었다. 사소한 오해도 풀지 못하고 ‘예금이’는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다. 이럴 경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도전일까? 아니면 도피일까? 아마도 선택하기 쉬운 방법이 도피 쪽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난 후에, 작가는 ‘예금이’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작가는 ‘그저 자살이란 두 글자만 그 머리를 후려치고 있었다.’라고 기술하였다. 작가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이름 모를 무엇인가를 원망하고 한탄하며 밤거리를 방황하였다.’라고 하였는데, 그때 작가는 ‘하얀 무지개’를 분명히 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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