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그리다
김 재 황
하늘을 바라보면 가장 엷은 비늘구름
봄날에 촉촉하게 가랑비 꿈 적시는데
앞가슴 활짝 펼치고 달마중을 그린다.
뒷산을 딛고 서면 날아드는 멧비둘기
고향은 어디만큼 짙은 그늘 내리는지
실뿌리 길게 늘이고 나들이를 그린다.
들녘을 더듬으면 어디선가 바람 소리
서둘러 달려와서 또 어디로 떠나는가,
윗가지 더욱 올리고 속마음을 그린다.
[시작 메모]
늘 느끼는 일이지만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경이로울 때가 많다. 나이가 많은 나무일수록 베풂이 높다. 노자 제38장 보면, ‘상덕부덕 시이유덕. 하덕불실덕 시이무덕’(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높은 베풂은 베풂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풂이 있다. 낮은 베풂은 베풂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베풂이 없다.’라는 뜻이다. 어찌 그러한가. 그 마음을 비우고 온 세상의 온갖 목숨을 그리기 때문이다.
시조는 정형시(定型詩)이다. 정형시란, ‘시구(詩句)나 글자의 수와 배열(配列)의 순서 등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시형(詩型)’을 가리킨다. 이제 현대시조도 ‘3장6구12음보’만을 지키는 시조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즉, ‘음보’의 음절의 수를 명실상부하게 더욱 더 조여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나는, 기본형에 맞게 시조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여 초장과 중장 및 종장의 길이가 같도록 했다. 나는 이를 ‘가지런한 시조’라고 부른다.
김 재 황
198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시조집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나무 천연기념물 탐방] [워낭 소리] [서다] [서다2] [지혜의 숲에서] 외.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당시와 시조 [마주하고 다가앉기] 산문집 [비 속에서 꽃 피는 꽃치자나무]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 [그 삶이 신비롭다] 등. 시집과 평론집 다수.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및 제36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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