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이팝나무
김 재 황
굶고서 가는 길은 허위허위 긴 고갯길
오뉴월 질긴 날을 거친 숨결 몰아쉬면
멀찍이 보이는 곳에 흰 쌀밥이 놓인다.
안개가 피어날 때 배고프니 산새 울음
가난한 꿈길 속에 차린 밥상 보이는가,
어디서 꼬르륵 소리 지친 발길 잡는다.
맑은 물 마셨어도 뭉게뭉게 피는 구름
손나팔 부는 대로 더듬어 간 춤사위여
빈 그릇 길게 내밀고 큰마음을 얻는다.
[시작 메모]
정말이지 굶기를 밥 먹듯이 하던 예전에는 ‘헛것’이 많이 보였다. 뱃가죽이 등에 붙었으니 보이는 게 모두 먹을 것뿐이었다. 그러니 나무에 하얗게 피어 있는 꽃조차 먹음직한 ‘이밥’으로 보였을 성싶다. 그 나무 이름이 바로 ‘이팝나무’이다. 말하자면 ‘이밥나무’가 변해서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뭇과에 딸린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어린 가지에는 털이 있다. 봄에 흰 꽃이 피고 꽃이 네 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시조는 민족시이다. 시(詩)라는 한자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말로 나타낸 것’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시에서는 무엇보다도 ‘말’이 중요하다. 모든 문학 작품에서도 그렇거니와, 시도 ‘언어’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다. 시(詩)는 ‘언어의 예술’이다. 다시 말해서 시는 문자언어인 ‘글’로서 창작되고 있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글’에 대하여 꿰뚫고 있어야 한다. 글의 생성뿐만 아니라, 그 활용법과 맞춤법을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한다.
김 재 황
198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시조집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나무 천연기념물 탐방] [워낭 소리] [서다] [서다2] [지혜의 숲에서] 외.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당시와 시조 [마주하고 다가앉기] 산문집 [비 속에서 꽃 피는 꽃치자나무]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 [그 삶이 신비롭다] 등. 시집과 평론집 다수.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및 제36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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