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한 시조

녹색시인 녹색시조(21)

시조시인 2022. 1. 24. 08:50

      비린 물푸레나무

                       김 재 황


오늘은 옛 사발이 장독대에 놓였는데
그대가 벌거벗고 앉아 있던 물이구나,
하늘이 놀란 빛으로 굽어보고 지난다.

소중히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시니까
가슴이 시원하고 온 세상이 파랗구나,
밖으로 고맙다는 말 속삭이지 못한다.

웃음을 새하얗게 그저 환히 내보이니
답으로 아예 눈을 캄캄하게 감는구나,
그대가 앉았다 떠난 물이어서 비리다.


[시작 메모]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만드는 나무’라고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즉, 어린 나뭇가지를 꺾어서 껍질을 벗긴 다음, 그 껍질을 맑은 물이 담긴 하얀 종이컵에 살그머니 담그면 가을 하늘 같은 빛깔이 우러난다. 한문으로는 ‘수청목’(水靑木)이라고 쓴다. 우리나라 각지와 만주 및 중국 북쪽에 분포한다. 산중턱의 축축한 곳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침목’(梣木)이나 ‘청피목’(靑皮木) 및 ‘수창목’(水倉木) 등이 있다. 무리를 이룬 게 보기에 좋다.   
 짓궂게도 “왜 시조가 민족시(民族詩)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 시조가 이 땅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고 오랜 뿌리가 있다는 점 등을 제쳐 두고라도, 그 이유는 많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윤재근 교수의 글을 빌린다. “현대시는 예유기(銳唯己), 즉 나만(唯己)을 날카롭게 하여(銳) 남달리 의식(意識)하라 하지만, 본래 시조는 너와 나를 하나로 묶는 흥(興)을 누리게 하여 너와 나를 우리가 되게 한다.” 우리 민족은 흥이 많다. 이미 월드컵의 그 흥을 보지 않았는가.

 
김 재 황
198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시조집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나무 천연기념물 탐방] [워낭 소리] [서다] [서다2] [지혜의 숲에서] 외.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당시와 시조 [마주하고 다가앉기] 산문집 [비 속에서 꽃 피는 꽃치자나무]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 [그 삶이 신비롭다] 등. 시집과 평론집 다수.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및 제36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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