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노각나무
김 재 황
뻐꾸기 울던 가지 당긴다면 긴긴 풋내
옷고름 풀어 뵈는 얼룩무늬 고운 살결
그 자리 그늘졌어도 실바람은 곧 오네.
가다간 머뭇머뭇 흰 미소를 담은 눈길
신나게 섬을 돌아 더위 하나 내던지면
마파람 쓸린 무늬가 파도같이 정 쏟네.
서산에 지는 물빛 받아 마신 아픔이여
수북이 쌓인 숨결 어슴푸레 삭은 나날
찬 이슬 돋아나듯이 세상살이 한 많네.
[시작 메모]
나는 노각나무를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다. 노각나무는, ‘그 나무껍질이 마치 사슴의 아직 굳어지지 아니한 뿔처럼 보드랍고 아름답다고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즉, 사슴의 뿔을 가리키는 ‘녹각’과 ‘나무’가 합하여져서 처음에는 ‘녹각나무’라고 하였는데, 그게 변해서 ‘노각나무’로 되었다고 한다. 노각나무는 한국특산종으로 경북과 충남 이남의 표고 200~1200미터에 자생하는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바닷가에서 잘 자란다. ‘금수목’(錦繡木)이라는 별명도 있다.
시나 시조 분야에도 전업 시인과 부업 시인이 있다. 이따금 “설사하듯 시를 쓴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는, 부업 시인이 전업 시인을 헐뜯는 말이다. 전업 시인이라면 어찌 하루인들 시를 쓰지 않고 견디겠는가? 그래서 다작(多作)이다. 부업 시인은 절대로 많은 시를 쓸 수 없다. 그래서 과작(寡作)이다. ‘개 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黃毛)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니 많은 작품을 써야 한다. 시인은 모름지기 시심 속에 늘 머물러야 한다.
김 재 황
1987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당선. 시조집 [묵혀 놓은 가을엽서] [서호납줄갱이를 찾아서] [나무 천연기념물 탐방] [워낭 소리] [서다] [서다2] [지혜의 숲에서] 외. 동시조집 [넙치와 가자미]. 시조선집 [내 사랑 녹색 세상] 당시와 시조 [마주하고 다가앉기] 산문집 [비 속에서 꽃 피는 꽃치자나무] [시와 만나는 77종 나무 이야기] [시와 만나는 100종 들꽃 이야기] [그 삶이 신비롭다] 등. 시집과 평론집 다수. 세계한민족문학상 대상 수상 및 제36회 최우수예술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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