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제5장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서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서 모든 것으로써 ‘말린 풀 강아지’를 삼고, ‘거룩한 이’는 어질지 않아서 모든 사람으로 ‘말린 풀 강아지’를 삼는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텅 비어 있는데 다함이 없고, 움직이고 있는데 더함이 나타난다.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게 되니 마음을 지키느니만 못하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다언삭궁 불여수중)
[뜻 찾기]
‘위추구’(爲芻狗)에서 ‘추구’를, ‘왕필’(王弼)은 ‘추’와 ‘구’로 보았다. 즉, ‘추’는 ‘꼴’ ‘말린 풀’ ‘마소의 먹을거리’ ‘꼴꾼’ ‘풀 먹는 짐승’ ‘짚’ 등을 나타낸다. 그리고 ‘구’는 ‘개’ ‘작은 개’ ‘강아지’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현영(成玄英)이란 사람은 ‘풀을 묶어서 개 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추구’는 ‘제식에 쓰이는 희생(犧牲)의 대용물’을 이른다. 이는, ‘풀 강아지’를 말하는 것 같다. 이 말 모두가 ‘하찮은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니 문득,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초개’(草芥)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말은, ‘지푸라기’를 뜻하는데, 곧 ‘하찮은 것’의 비유로 쓰인다. 예컨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다.’라는 말은, ‘목숨을 하찮게 버림’을 뜻한다.
‘기유탁약호’(其猶橐籥乎)에서 ‘탁약’은 ‘풀무’(바람상자)를 나타내는데, 이는 ‘속이 비어 있는 것을 취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장자가 말했다. “풀무와 피리는 속이 비어 있는 까닭에 그 속에 자연스러운 묘용이 있다.”라고. 그리고 ‘허이불굴’(虛而不屈)에서 ‘굴’은 ‘굽히다’ ‘굽다’ ‘움츠리다’ ‘굳세다’ ‘다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다하다’를 잡았다.
‘다언삭궁’(多言數窮)에서 ‘궁’은 ‘다하다’ ‘끝나다’ ‘멈추다’ ‘막히다’ ‘곤란하다’ ‘괴롭히다’ 등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막히다’를 골랐다. 그리고 ‘불여수중’(不如守中)에서 ‘중’은 ‘가운데’ ‘속’ ‘동아리’ ‘무리’ ‘마음’ ‘치우침이 없는 것’ ‘둘째’ ‘버금’ ‘차다’ 등의 뜻이 담기어 있다. 그중에서 나는 ‘마음’을 택했다.
[나무 찾기]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하늘과 땅이 어질지 않아서 모든 것으로써 ‘말린 풀 강아지’를 삼는다.)라는 말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기자나무’(Lycium chinense)를 떠올리고 만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렇다. 구기자나무에게는 이런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중국에 ‘서선’(徐仙)이라는 사람이 깊은 산중에서 풀뿌리를 캐어 먹고 살았다. 그리고 약초를 모아 두었다가 산 밑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병을 치료해 주었다. 그런 어느 날, 약초를 달이고 있자니까,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서 약탕기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 강아지는 한참이나 약 냄새를 맡더니 날이 어두워지자 슬며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도 그 강아지는 계속 나타났고, ‘서선’은 차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 강아지의 목에 붉은 실을 슬쩍 매어 놓고 그 뒤를 밟았다. 그랬더니 그 실이 구기자나무에 묶여 있었다. ‘서선’은 그 밑을 파 보았는데, 땅속에서 강아지를 닮은 뿌리가 나왔다. 그는 그 뿌리를 먹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구기자나무’라는 이름은, ‘구기자’(枸杞子)라는 열매가 달린다고 하여 얻게 되었다. ‘구기자’는 고추와 비슷하게 빨간빛을 나타낸다. ‘구기자’에서 ‘구’는 ‘가시가 있음’을 나타내고 ‘기’는 ‘나무 모양을 버들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구기자’는 한명(漢名)에서 빌려 왔다. 사전적 풀이를 보면, ‘구’는 ‘굽다’ ‘휘다’ ‘구부정하다’ 등의 뜻이 있고, ‘기’는 ‘삼태기’라는 뜻을 보인다. 그러나 한 마디로, ‘구기자나무’를 나무라고 말하기는 좀 그런 나무이다.
일본에서는 ‘쿠코’(クコ)라고 부르고 영명(英名)으로는 ‘복스 톤’(box thorn)이라고 부른다.
깨물던 시름인 듯 입술에 새긴 줄무늬
자줏빛 다섯 갈래 노란 눈빛 또 보태면
목 여윈 여인 하나가 가을빛을 이고 온다.
-졸시 ‘구기자나무’ 전문
우거진 여름 들길을 힘겹게 지나서 한적한 가을 들판으로 쓸쓸히 걸어 나오는 여인. 가는 목덜미와 자줏빛 입술을 지니고 있기에 슬프고도 외롭게 피어나는 꽃, ‘구기화’(枸杞花). 구기자나무는 가짓과에 딸린 갈잎 넓은잎 떨기나무이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야생하고 있으며, 만주와 중국 및 일본에 분포한다. 줄기는 가늘고 빛깔은 회백색이다. 비스듬히 자라나서 끝이 휘어지며 땅에 닿으면 그곳에서 새로운 뿌리가 돋는다. 가지에는 흔히 가시가 있다. 잎은 마디마다 한 개 또는 여러 개가 나고 갸름하거나 길둥근 모양을 보인다. 6월경에 잎의 아귀에서 꽃자루가 나온 다음, 두서너 개의 자줏빛 꽃을 피운다. 꽃의 밑 부분은 종처럼 되었고 윗부분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서 편평하게 되어 있다. 열매는 장과(漿果)인데, 고추 모양이며 가을에 붉게 익는다.
구기자나무의 잎을 ‘장생엽’(長生葉)이라고 하며, 그 뿌리껍질을 ‘지골피’(地骨皮)라고 한다. 그리고 ‘목밀’(木密)이라고 하면 그 열매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린잎은 피를 깨끗이 만든다고 하여 나물밥을 짓거나 차(茶) 대용으로 쓰고, 열매로는 과실주를 만들며, 뿌리껍질은 해열 작용이 있어서 ‘간장’ ‘신장’ ‘위장’의 해열을 다스리는 데 쓴다. 구기자나무는 일명 ‘괴좆나무’ ‘선인장’(仙人杖) ‘지선’(地仙)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말이지 ‘추구’라고 하니까, 할 말이 많다. 나무 이름 중에서 ‘구’, 즉 ‘개’를 생각하게 하는 나무들은 한두 종류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무 이름에 ‘개’ 자를 앞에 붙이는 나무가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중에 한 나무를 말하라면 어느 나무를 말할까? 금방 ‘개오동나무’(Catalpa ovata)가 환하게 떠오른다.
‘개오동나무’라는 이름은, ‘오동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 나무보다 못한 나무’라는 뜻이다. ‘개’라는 글자가 ‘~나무보다 못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 하지만 실제로 보면 오동나무에 별로 뒤떨어질 게 없다. 오히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다. 이는, 나무의 이름을 붙일 당시에 나무의 쓰임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일 듯싶다.
누군가 이 나무를 하찮게 여기어서
이름에‘개’자 하나 굳이 붙여 놓았다만
모두 와 잎을 보아라, 그 얼마나 넉넉한가.
게다가 빚어놓은 열매 또한 멋지구나,
치렁치렁 늘어지니 별명 또한‘노끈나무’
이게 또 약이 된단다, 알고 보면 귀한 것을.
-졸시 ‘개오동나무’ 전문
‘개오동나무’의 특징이라면, ‘그 열매가 노끈처럼 가늘고 길게 늘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이 나무를 ‘노끈나무’라고도 부른다. 또 하나. 이 나무의 잎이 오동나무처럼 큼직하다. 잎자루도 길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꽃도 오동나무에 뒤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능소화를 닮은 것 같기도 한데, 이 나무가 능소화과 나무이기 때문일 터이다. 한명(漢名)으로는 ‘목각두’(木角豆)나 ‘재’(梓) 등으로 부른다. ‘영명’(英名)으로는 ‘bean-tree’(콩 나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이 나무가 들어온 것은 1904년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구미 각국에서는 이 나무를 묘지 부근에 흔히 심는다고 한다. 영혼이 이따금 나와서 쉬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는 절이나 신사 부근에 이 나무를 잘 심는다고 한다. 그 또한 영혼과 관계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나무가 벼락을 막아 준다고 하여 ‘뇌전목’(雷電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의 목재는 강인하고 단단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활’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또, 미국에서는 철도의 침목으로도 활용하였으며, 잘 썩지 않고 오래 가기 때문에 ‘구목’(久木)으로도 썼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로 ‘나막신’을 만들어서 신기도 했다.
개오동나무의 열매는 이뇨약(利尿藥)으로 효과가 있어서 민간처방으로 ‘신장염’ ‘습성 복막염’ ‘요독증’ ‘수종성 각기’ 등에 이용된다. 그런데 개오동나무의 종류들이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개오동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다. 또, 남아메리카 중부지방 원산의 꽃개오동나무(Catalpa speciosa)가 있다. 이는 아주 키가 크다. 6월에 백색 또는 황백색 꽃이 핀다. 그런가 하면 ‘미국개오동나무’(Catalpa bignonioides)도 있다. 이 나무는 잎을 문지르면 나쁜 냄새를 풍긴다.
그런데 정작으로, 강아지를 내보이는 나무가 있다. 모두 알고 있다시피 그런 나무라면 ‘갯버들’(Salix gracilistyla)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은빛의 ‘버들강아지’를 보면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누구나 탄성을 지르게 된다. 가지에 붙어 있는 그 모습이 고물고물 영락없는 ‘강아지’를 연상시킨다. ‘갯버들’이라는 이름에서, ‘바닷가나 냇가 등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갯’ 자가 붙었다. 말하자면 ‘갯가에 사는 버드나무’라는 뜻이다. ‘갯가’라는 말이, ‘바닷물이 드나드는 개의 가’나 ‘물이 흐르는 가장자리’를 나타낸다.
갯버들은 버드나뭇과의 갈잎 넓은잎 떨기나무이다. 개울가에 많이 난다. 키는 크게 2미터까지 자란다. 잎은 바소꼴이고 그 가장자리에 톱니를 보인다. 꽃은 단성화(單性花)인데 4월에 핀다. 열매는 식용하며, 가지와 잎은 풋거름으로 쓰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이나 일본에 분포한다. ‘등류’(藤柳)라고도 부르고 ‘땅버들’이라고도 하며, ‘포류’(蒲柳)라고도 한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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