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7장, 하늘은 멀고 땅은 오래 간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10. 08:43

길- 제7장

하늘은 멀고 땅은 오래 간다





 하늘은 멀고 땅은 오래 간다. 하늘과 땅이 익숙하게 잘 ‘멀고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아주 익숙하게 잘 길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그 몸을 뒤쪽으로 하여 몸이 앞서게 되고 그 몸을 바깥으로 하여 몸이 끝까지 살아서 남을 수 있다. 그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 까닭에 그 사사로움을 익숙하게 잘 이룰 수 있다.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 고능장생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야. 고능성기사)


[뜻 찾기]
 ‘천장지구’(天長地久)에서 일반적으로 ‘장’은 ‘영원하다’라고 풀이되고 있으나, 나는 ‘장’이 지닌 ‘길다’ ‘오래’ ‘멀다’ ‘뛰어나다’ ‘잘하다’ 등의 뜻 중에서 ‘멀다’를 골랐다. 그리고 ‘구’는 ‘구원하다’거나 ‘길이 있다.’라는 등의 풀이가 있지만, 나는 ‘구’가 지닌 ‘오래’ ‘오래 기다리다’ ‘오래 머무르다’ ‘막다’ ‘가리다’ 등의 뜻 중에서 ‘오래 머무르다’를 택하여 ‘오래 간다’라고 풀었다. ‘소이’(所以)는 ‘까닭’이라는 뜻인데, 뒤로 옮겨서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기부자생’(以其不自生)에서 ‘자생’은 ‘자신이 살기 위하여 남과 다툼으로써 남의 것을 빼앗고 자신을 기르는 일’을 가리킨다고 한다. 나는 이를 글자 그대로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풀었다.
 ‘후기신’(後其身)은, ‘자신의 이익을 뒤로 밀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글자 그대로 ‘그 몸을 뒤쪽으로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외기신’(外其身)은 ‘자신의 이익을 제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쉽게 ‘몸을 바깥으로 한다.’라고 풀었다. 이어서 ‘이신존’(而身存)의 ‘존’은, ‘있다’ ‘생존하다’ ‘보존하다’ ‘편안하다’ ‘살피다’ ‘생각함’ ‘다다르다’ ‘나아감’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생존하다’를 선택했다. 그래서 ‘끝까지 살아서 남다.’라고 풀었다. 또, ‘비이기무사야’(非以其無私邪)에서 ‘사’는 ‘자기’ ‘개인’ ‘사사로움’ ‘은밀하다’ ‘홀로’ ‘사랑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여러 학자는 ‘사사로움’을 택하고 있다. 나도 이를 따랐다. 특히 ‘비이기무사야’에서 ‘야’라는 글자는, 우리에게 ‘사’의 글자로 더 친숙하다. 여기에서는 ‘사’의 뜻보다는 ‘야’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 ‘야’는, ‘고을이름 야’인데 의문이나 부정을 나타내는 조사로 쓰이고 있다.


[나무 찾기]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부자생’(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하늘과 땅이 익숙하게 잘 ‘멀고 오래 갈 수 있는 것’은 그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에서 나는 ‘느티나무’(Zelkova serrata)를 떠올린다. 
 그 스스로 발버둥을 치며 살려고 하지 않고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 나무라면 ‘정자나무’를 생각할 수 있고, 또 ‘정자나무’라면 금방 ‘느티나무’를 생각할 수 있다.
 
시골의 초등학교 텅 빈 분교에 들러
눈을 감으면
어릴 적, 귀에 익은 
작은 손풍금 소리가 날아온다.
더욱 고요와 손을 꼭 잡으면
높은음자리표들이 깡충깡충 뛰어온다.

동시에 어린 소리들이
모여들어, 온 교정이 떠들썩해도
그렇듯 잘 어울리는 것은 
저 마당가의 느티나무 덕택이다.
그가 멋지게 서서
모든 바람을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졸시 ‘바람을 지휘한다’ 전문

 ‘느티나무’라는 이름은, ‘늣홰나무’가 변하여 ‘느티나무’로 되었다고 한다. ‘늣홰나무’에서 ‘늣’은 원래 ‘느끼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늣홰나무’는 ‘둥그스름한 느티나무의 겉모양새가 홰나무를 닮은 나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홰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홰나무’란 ‘회화나무’(Sophora japonica)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데 ‘회화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이다. 그렇다면 ‘느티나무’는 이 ‘회화나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다른 이름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문헌을 보면 ‘홰나무’가 아니라, ‘회나무’(Euonymus sachalinensis)로 되어 있다. 회나무는 우리나라의 깊은 산에 자생하는 나무이다. 그러면 옛날에는 ‘회나무’가 ‘느티나무’보다 더 알려져 있었다는 말인가? 알쏭달쏭하다.
 ‘느티나무’ 중에서도 이름난 나무가 있다. 알 사람은 모두 아는 나무가 있으니, 그 이름이 ‘현고수’(懸鼓樹)이다. 그 위치는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임진왜란 때에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이 나무에 북을 매달아 놓고 군사훈련을 시켰다고 전한다. 
 느티나무를 한자로는 ‘괴목’(槐木) 또는 ‘거’(欅)라고 쓴다. 그런데 ‘괴목’은 느티나무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회화나무’도 가리킨다고 한다.
 느티나무는 모양이 아름답고 그늘이 좋아서 정자나무로도 훌륭하다. 그뿐만 아니라, 목재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느티나무의 목재는 황갈색을 띠고 결이 아름답다. 그리고 잘 썩지 않고 벌레도 잘 덤비지 않는다. 게다가 윤기까지 흐른다. 이 느티나무를 켜서 말려도 잘 갈라지지 않고 다른 나무보다 덜 비틀어진다. 마찰이나 충격에도 잘 견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목재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성싶다. 
 즉, 느티나무 목재는 집의 기둥으로 쓸 수 있고, 땅속에 묻히는 관의 재료로도 쓸 수 있으며, 모양새를 이루는 가구나 생활 도구 등 어느 용도로 쓰든지 그 기능을 확실하게 나타낸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뭇과의 갈잎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촌락 부근의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난다. 잎은 어긋나고 5월에 꽃이 피며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어린잎을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시베리아나 일본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천장지구’(天長地久)를 생각하게 하는 느티나무들이 많다. 그 나이 많은 나무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 몇 나무들을 여기에 소개하려고 한다.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에는, 수령 17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높이는 15미터가 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7미터가 넘는다. 이 나무가 서 있는 그 앞에는 ‘모강내’가 흐르고 그 맞은편에는 ‘섭밭산’이 서 있다. 사람들이 섬기는 당산목(堂山木)으로, 해마다 음력 정월보름이 되면 그 앞에서 동제를 올린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92호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갈화리에는, 수령 5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17미터가 넘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9미터가 훌쩍 넘는다. 이 느티나무 또한 정자나무와 신목(神木)으로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76호이다.
 경기도 양주군 남면 황방리에는, 수령 870년 정도인 느티나무가 있다. 나무높이는 21미터가 넘고 가슴높이 나무둘레는 7미터가 넘는다. 전하는 말로는, 이 느티나무는 밀양 박씨 선조가 심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을 위하여 정자나무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278호이다. 
 느티나무에 관한 전설이 있다. 옛날, 동쪽과 서쪽으로 뚫린 길을 끼고 있는, 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즉,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손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나그네가 쉬었다가 가는 곳이었다.
 하루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스님’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도인’이 이곳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스님이 도인에게 물었다.
 “가시는 길입니까?”
 “아닙니다.”
 “오시는 길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쉬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을 나누더니, 두 사람은 아주 반갑게 손을 잡고는 길목에 나란히 앉아서 땀을 닦았다. 이번에는 도인이 스님에게 물었다.
 “길이 멉니까?”
 “아닙니다.”
 “가깝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가깝지도 멀지도 않군요.”
 “그렇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껄껄 웃더니, 스님이 봇짐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니까 도인도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어서 서로 맞춰 보았다. 그리고는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상합니다. 이 나뭇가지 하나가 남는군요.”
 도인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가지는 우리가 만난 이 자리에 기념으로 꽂고 가는 게 어떨까요?”
 두 사람은 또 한바탕 껄껄 웃더니, 그 자리에 나뭇가지를 꽂아놓고는 동쪽과 서쪽으로 각각 헤어져서 길을 떠났다. 그 후, 그들이 꽂아놓고 간 나뭇가지는 뿌리가 내리고 잎이 돋아서 커다란 나무로 자랐으며 여름이 되면 넓은 그늘을 드리우게 되었다. 이 나무가 느티나무였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 즉 ‘스님’은 ‘싯다르타’로 생각되고 ‘도인’은 ‘노자’로 여겨진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