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9장, 지니고서도 가득 채우는 것은(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11. 19:03

길- 제9장

지니고서도 가득 채우는 것은





 지니고서도 가득 채우는 것은 그것을 그만두느니만 못하다. 두드려서 불린 것을 다시 또 날카롭게 만들면 오래 지키기가 어렵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잘 지킬 수 없고, 가진 게 많고 자리가 높아져서 남을 업신여기면 스스로 그 ‘죄가 될 잘못’을 남기게 된다. 일을 이루면 몸이 물러남은 하늘의 길이다.

持而盈之 不如其已 揣而銳之 不可長保. 金玉滿堂 莫之能守 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 天之道
(지이영지 불여기이 췌이예지 불가장보. 금옥만당 막지능수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 천지도)


[뜻 찾기]
 ‘지이영지’(持而盈之)에서 ‘지’는 ‘가지다’ ‘지니다’ ‘보존하다’ ‘지키다’ ‘대항하다’ ‘돕다’ ‘믿다’ ‘의지함’ ‘균형이 잡히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지니다’를 골랐다. 그리고 ‘영’은 ‘차다’ ‘가득 참’ ‘가득 차서 넘치다’ ‘족하다’ ‘충분함’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가득 참’을 택했다. 그러므로 ‘지이영지’는 ‘이미 가지고 있는데 또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또, ‘췌이예지’(揣而銳之)에서 ‘췌’는 본래에 ‘취’라는 글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췌’라고 읽는다. ‘췌’는 ‘헤아리다’ ‘추측하다’ ‘재다’ ‘측량하다’ ‘시험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드려서 불리는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나는 그 뜻에 따라서 ‘두드려서 불리다’를 골랐다. 그리고 ‘예’는 ‘민첩하다’ ‘빠르다’ ‘창끝’ ‘날쌔다’ ‘날카롭다’ 등의 뜻을 지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나도 그 뜻을 택했다.
 ‘부귀이교’(富貴而驕)에서 ‘교’는 ‘교만하다’ ‘자만하다’ ‘업신여기다’ ‘무례하다’ ‘강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업신여기다’를 골랐다. 그리고 ‘자유기구’(自遺其咎)에서 ‘구’는 ‘재앙’ ‘미움’ ‘나무라다’ ‘꾸짖다’ ‘죄과’ ‘잘못’ 등의 뜻이 있다. 그중에서 나는 ‘죄과’와 ‘잘못’을 선택하여 ‘죄가 될 잘못’이라고 풀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유기구’는 ‘스스로 그 재앙을 남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천지도’(天之道)는 ‘하늘의 법칙’ 또는 ‘천시(天時)의 운행하는 법칙’, 그리고 ‘네 계절의 대체(代替)와 같은 법칙’이라고도 하였다.


[나무 찾기] 
 ‘공수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 일을 이루면 몸은 물러남이 하늘의 길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가 떠오른다. 그 이유가 있다. 아까시나무는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인데, 우리나라의 산림녹화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런데 산이 푸르게 되니까. 이 나무는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공을 크게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게 도리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아까시나무가 마냥 좋기만 하다.

산에 오르면
저 아까시나무처럼
나도 저렇게 서 있고 싶어지네.

꽃이 필 때는 
꽃향기에 취해 흔들리고

잎이 질 때는
잎 구르는 소리 따라 흥얼거리고

흰 눈이 내리면
저 아까시나무처럼
눈감고 시 한 수 짓고 싶네.
-졸시 ‘눈감고 시 한 수’ 전문

 이 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나무로 원래 이름이 ‘아까시아’였는데, 그게 ‘아까시나무’로 되었다. ‘속명’(屬名)인 ‘robinia’는 ‘헨리 4세 시대에 파리의 원예가인 Jean Robin(1950~1629)이 1600년에 미국에서 이 나무를 들여오고 그의 아들 Vespasian Robin (1579~1662)이 유럽에 퍼뜨린 것을 기념’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종소명’(種小名)인 ‘pseudo-acacia’은 ‘아까시나무와 비슷한’이라는 뜻이다. 
 아까시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1900년)이다. 과거에 우리는 땔감을 산의 나무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산이 헐벗고 말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였다. 
 이 나무는 조림수로도 좋고 땔감으로도 좋으며 가축의 사료로서도 좋다. 나는 어렸을 때 집토끼를 기른 적이 있는데 이 아까시나무 잎을 아주 잘 먹었다. 그러나 이 나무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 이름을 꼽을 수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나무를 ‘아까시아’라고 부른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그 이름 때문인지 ‘아까시아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이란 노래가 아주 유행되었고 지금도 나는 즐겨 부르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초여름에 흰 꽃을 피운다. 이 꽃은 얼마나 향기로운지, 들창을 열어 놓으면 솔솔 부는 바람을 타고 코로 향긋한 냄새가 스며든다. 향기뿐만이 아니다. 꽃의 빛깔도 그냥 흰 빛깔이 아니라 ‘싱싱한 흰 빛’이다. 그 꽃을 따서 입에 넣으면 단물이 약간 스며들면서 첫사랑을 생각나게 만든다. 이리 나에게 맛이 있으니, 어찌 꿀벌인들 이를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벌들이 부지런히 이 꽃을 찾는다. 그 벌들이 따 모은 ‘아까시아 꿀’은 달콤하고도 향기롭다.
 꿀의 분비는 꿀샘 내의 세포가 수분이나 당분으로 팽창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특히 적당한 수분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비가 시기적으로 알맞게 내려야 한다. 그래서 식물의 탄소와 질소가 적당하게 균형이 잡히면 비로소 꿀을 분비(分泌)하게 된다. 즉, 탄수화물이 많이 축적될 때 꿀을 내게 되며 그래서 꽃가루가 성숙하였을 때는 많은 꿀이 나오게 된다. 양지에 핀 꽃이 음지에 핀 꽃보다 많은 꿀을 내게 되는 이유도 모두 거기에 있다. 이는, 일조시간(日照時間)과 관계가 큰데, 기온이 따뜻하고 바람이 없을 때나 습도가 60~70%일 때가 가장 적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꽃이 일단 가루받이를 끝내고 나면 꿀의 분비 또한 끝나게 된다. 
 우리는 이 나무의 재목이 얼마나 좋은 재료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나무로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배는 아무 나무로나 만들지 않는다. 재목이 강인하고 오래 견디어야 한다. 그래야 망망대해에서 목숨을 맡길 수가 있다. 
 아까시나무는 힘차게 잘 자란다. 그렇기에 땅의 거름기를 많이 빨아먹는다. 줄기를 잘라 내면 금시에 줄기가 다시 돋는다. 그렇지만 이렇게 두서너 번을 거듭하면 그 뒤의 자람은 몹시 나쁘게 된다. 너무 거름기를 빨아먹어서 땅이 척박해졌기 때문이다. 질소와 인산과 칼리 중에서 인산과 칼리의 부족이 오게 된다. 그리고 인산과 칼리 중에서도 인산의 소모가 크다고 한다.
 그러나 아까시나무의 특징이라면 ‘그 무서운 가시’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때문에 내가 어릴 때는 이 나무를 ‘아! 가시야.’ 나무라고 불렀다. 이 가시 때문에 이 나무는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어디 ‘가시’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인가. 아까시나무 가시는 탱자나무 가시와는 다르다. 아까시나무 가시는 ‘껍질가시’이다. 그래서 손으로 비틀면 잘 떨어진다. 그 가시를 ‘이쑤시개’ 대용으로 쓰면 그리 훌륭할 수가 없다. 내가 서귀포에서 귤밭을 경영할 때는 탱자나무(Poncirus trifoliata)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이 나무 가시의 표독스러움은 아까시나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비틀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가시는 ‘가지가시’라고 한다.
 물론, 아까시나무 중에는 가시 없는 변종도 있다. 가시가 없으니 다루기가 편리하겠지만, 어쩐지 아까시나무답지 않다는 느낌이다. 물러터진 여인보다는 어딘지 쌀쌀함이 감도는 여인이 더 매력적인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앞에서 언급이 있었듯이, 아까시나무는 거름기를 많이 빨아먹기 때문에 자람이 매우 빠르다. 10년만 지나면 그 키가 10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일 년에 1미터씩 자라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 나무를 집의 뜰에 심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다.
 아까시나무는 콩과에 딸린 갈잎큰키나무이다.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그 키가 30미터에 이르는 거목도 있다고 한다. 잎은 깃 모양의 겹잎이고 9~19개의 알 모양이나 긴 길둥근 모양의 작은 잎을 가지고 있다. 5~6월에 나비 모양의 흰 꽃이 총상 꽃차례로 잎의 아귀에서 늘어져 피고, 협과(莢果, 씨방이 성숙한 열매로 건조하면 두 줄로 갈라지는 것, 팥이나 콩 또는 완두 따위)는 10월에 익는다. 한명(漢名)으로는 ‘자양’(刺欀)이라고 한다.
 아까시나무의 꽃말은 ‘아름다운 우정’ 또는 ‘청순한 사랑’이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