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제6장
산골짜기의 검님은 죽지 않으니
산골짜기의 ‘베풂이 아주 높은 검님’은 죽지 않으니 이를 ‘거무레한 암컷’이라고 일컫는다.
‘거무레한 암컷’의 드나드는 문을 가리켜서 다른 말로는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일컫는다.
‘이어지고 다시 또 이어짐’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없는 것 같지도 않아서 써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뜻 찾기]
‘곡신불사’(谷神不死)에서 ‘곡신’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곡신’은 ‘산골짜기의 가운데에 아무것도 없는, 즉 무(無)의 골짜기인 낮고 고요하며 빈 곳의 신령스러운 존재’라고 한다. 이는, 왕필(王弼)의 풀이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산골짜기의 베풂이 아주 높은 검님’이라고 풀었다. ‘곡’이란 ‘산골짜기’를 말한다. 그리고 ‘신’이란 ‘귀신’ ‘신령’ ‘마음’ ‘영묘하다’ ‘하늘의 신’ ‘상제’(上帝) ‘불가사의한 것’ ‘덕이 아주 높은 사람’ ‘지식이 두루 넓은 사람’ ‘화(化)하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신령’과 ‘덕이 아주 높은 사람’을 골랐다. ‘신령’은 다른 말로 ‘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산골짜기의 검님’이란, 바로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성싶다. 여기에서 생명이 태어나니 이보다 더 신령스러움이 어디에 또 있단 말인가. 그래서 ‘현빈’(玄牝), 즉 ‘거무스레한 암컷’이라는 말이 썩 잘 어울린다. 참으로 신비한 ‘모성’(母性)이 아닐 수 없다.
‘면면약존’(綿綿若存)에서 ‘면면’은 ‘새 솜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끊임없이 길게 이어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약존’이란 ‘있는 것 같으나 있지 않고 없는 것 같으나 없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용지불근’(用之不勤)에서 ‘불근’이 문제이다. 어떤 이는 이를 ‘지치지 않는 것, 또는 피로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으며, 다른 이는 이를 ‘노고(勞苦)함이 없는 것, 또는 부지런히 애씀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이를 ‘조화의 기틀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으로서 하지 않아도 얻게 되며 행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근’의 여러 뜻, 즉 ‘부지런하다’ ‘힘쓰다’ ‘일’ ‘직무’ ‘근심하다’ ‘위로하다’ ‘괴로워하다’ ‘바라다’ 중에서 ‘괴로워하다’를 골랐다. 그래서 나는 ‘불근’을 ‘괴로워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하였다.
[나무 찾기]
‘곡신불사 시위현빈’(谷神不死 是謂玄牝, 산골짜기의 베풂이 아주 높은 검님은 죽지 않으니 이를 거무레한 암컷이라고 일컫는다.)에서 ‘곡신’이라든가 ‘현빈’이라는 말을 들으면, 골짜기의 여러 나무가 눈앞에 나타난다. 이 나무들이 모두 ‘베풂이 아주 높은 검님들’이고 ‘거무레한 암컷들’이다.
그래도 그중에서 한 나무를 말하라면 ‘층층나무’(Cornus controversa)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층층나무는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치마를 두른 것 같아서 아주 여성적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현빈’의 모습이다.
볕 드나 그늘지나 싫다 않고 앉은 자리
아무도 못 잡는 세월 서둘러 목숨을 꿰면
뺨 붉듯 외로운 정이 잎자루에 어린다.
밖으로 청렴하고 안으로 결백해도
무리 지어 피운 꿈은 꿀을 품어 달콤한데
정성껏 익힌 열매만 부리 끝에 쪼인다.
수평을 이룬 가지 넓게 펴서 시름 짙고
해마다 층을 쌓아 애타도록 슬픈 전설
영지에 서는 무영탑만 녹음 속에 새롭다.
-졸시 ‘층층나무’ 전문
층층나무는 ‘마디마다 규칙적으로 가지가 돌리어 가며 가지런한 층을 이루어서 뻗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일명 ‘계단나무’라고 하기도 한다. 층층나무를, 한명(漢名)으로는 ‘송양’(松楊) 또는 ‘양자목’(椋子木)이라고 하며, 일명(日名)으로는 ‘미즈키’(ミヅキ)라고 부른다.
층층나무는 낙엽이 되는 큰키나무인데, 잎은 어긋나기(互生)를 보이고 측맥(側脈)은 5~8쌍이다. 양쪽 면에 작은 털이 보인다. 5월에 흰 꽃이 피고, 꽃잎은 넓은 바소꼴이며 꽃받침통과 더불어서 겉에 털이 있다. 수술대는 5밀리미터 정도의 길이이며 꽃밥은 정자형(丁字形)으로 달린다. 핵과(核果)인 열매는 가을에 암자색(暗紫色)으로 익는다. 한 열매 안에는 한 개의 씨가 들어 있고 그 지름이 5밀리미터 정도가 된다. 이 열매는 새들이 아주 좋아하는 ‘먹이’이다. 종자가 익어서 떨어지면 싹이 잘 터서 자연적으로 많은 아기나무(苗)가 태어난다. 가지가 해마다 한 개씩의 윤지층(輪枝層)을 이룬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골짜기를 차지하고 우뚝우뚝 솟아 있다. 다른 나무보다 자라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래서 쑥쑥 올라오면서 가지를 넓게 펼친다. 또한 층층나무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사는 법이 없다. 그 모두가 독립적이다. 독불장군이라고나 할까. 층층나무는 한 그루씩 외톨이로 자란다. 이렇게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는 자체가 ‘모성’(母性)을 생각하게 만든다.
층층나무의 어린 가지는 겨울이면 붉은빛을 더한다. 나무껍질은 매끄러운 회갈색을 보인다. 그러나 줄기가 굵어지면서 때로는 흰 얼룩이 생기기도 한다.
층층나무의 속명(屬名)인 ‘cornus’는 라틴어 ‘cornu’(角)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재질이 단단하다’라는 뜻이다. 잘 자라면서도 재질이 튼튼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면 골짜기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한 나무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나무의 이름은 ‘낙우송’(Taxodium distichum)이다. 낙우송(落羽松)은 ‘잎이 새의 깃을 닮았고, 겨울에는 그 잎이 땅으로 떨어진다.’라고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낙우송은 그 이름에 ‘소나무’를 뜻하는 ‘송’ 자가 들어가 있지만 소나무와는 아주 다른 나무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소나무’는 ‘늘푸른나무’이지만 낙우송은 ‘갈잎나무’이다.
낙우송은 미국 원산의 나무로서 키가 50미터까지 자란다. 그뿐만 아니라, 지름이 4미터에 달하고 뿌리가 아주 힘 있게 뻗으며 큰 가지가 발달하기 때문에 끝이 뾰족한 줄기의 모습을 보인다. 북아메리카 남부의 늪지대에서는 우거진 숲을 형성하는데, 땅속뿌리에서 둥그스름한 돌기가 밖으로 자란다. 이를 가리켜서 그곳 사람들은 ‘무릎’(knee)이라고 부른단다. 이는, 바로 공기뿌리(氣根)이다. 이러한 기근은 물이 흐르는 산골짜기에서 자랄 때 특히 많이 생긴다고 한다. 습지에서 자람이 빠르고 재질도 좋지만, 끝이 좁은 재목이 되는 결점을 지닌다는 이야기도 있다.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낙우송은 미국 미시시피강을 따라 하류 지방에 많이 퍼져 있고, 특히 플로리다반도와 멕시코 연안 및 미시시피주에 많다고 한다.
낙우송은 물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수향목(水鄕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나무는 물렁물렁한 땅속에 뿌리를 박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거센 바람에 넘어질 위험성이 커진다. 그래서 이 나무는 자구책을 생각해 냈는데,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아랫부분을 팽창시켜 놓아야만 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는가. 줄기가 위로 가면서 갑자기 가늘어지게 된다. 이 나무가 습한 곳에서 잘 살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물에서 자라는 삼나무’(沼衫)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낙우송은 물에서 잘 썩지 않는다고 전한다. 이렇듯 물을 좋아하는 나무이니 다른 곳보다도 산골짜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으면 이 나무 또한 검님(谷神)이 되어 죽지 않게(不死) 된다.
낙우송은 봄에 꽃이 피고 9월에 열매가 익는다. 수꽃이삭(雄花穗)은 처지는 원뿔(圓錐) 꽃차례이다. 길이는 10여 밀리미터쯤 되는데 자줏빛을 보인다. 암꽃은 아구형(亞球形)으로서 각 실편(實片)에 2개의 배주(胚珠)가 있다. 이 나무의 열매는 구과(毬果)이다. ‘구과’란, ‘목질(木質)의 비늘조각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서 둥근 꼴이나 길둥근꼴로 되어 있는 열매’를 일컫는다. 이를 ‘방울열매’라고도 하는데, 솔방울이나 잣송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열매의 지름은 20여 밀리미터 정도이다. 그 씨는 생김새가 삼각형이고 각 모에 날개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이 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일부러 이 나무를 만나려고 한다면, 가을에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가을에 그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기 때문이다.(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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