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3장, 낫다는 것을 높이지 않으면(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7. 07:52

길- 제3장

낫다는 것을 높이지 않으면





 낫다는 것을 높이지 않으면 나라 사람이 다투지 않게 되고, 얻기 어려운 돈을 빼어나게 여기지 않으면 나라 사람이 도둑질하지 않게 되며, ‘하고자 할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나라 사람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의 다스림은, 그 마음을 텅 비게 만들고 그 배를 부르게 만들며 그 뜻함을 여리게 하고 그 뼈대를 굳세게 한다.
 늘 나라 사람이 쓸데없는 ‘앎’을 없게 하고 부질없는 ‘하고자 함’을 없게 하며, 무릇 ‘슬기로운 사람’이 있을지라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한다. ‘함이 없음’을 하면 마침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智者不敢爲也. 爲無爲 則無不治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현가욕 사민심불란.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위무위 즉무불치)


[뜻 찾기]
 ‘불상현’(不尙賢)이란, ‘인위적으로 현명한 인재를 표방하지 않는다.’라는 풀이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낫다는 것을 높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리고 ‘사민부쟁’(使民不爭)에서 ‘사’는 ‘~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또 ‘불현가욕’(不見可欲)에서 ‘가욕’은 ‘욕심낼 만한 것’이나 ‘욕심을 자극하는 물건’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하고자 할 만한 것’으로 풀었다.
 ‘허기심’(虛其心)에서 ‘기’는 ‘나라 사람’(民)을 가리킨 것으로, 나라 사람의 마음을 ‘텅 비게 만든다.’라는 뜻이다. 이는, ‘잡스러운 데에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또, ‘실기복’(實其腹)은 ‘나라 사람’의 ‘배를 부르게 만들어 준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실제로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다.’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실속을 차리도록 만든다.’라는 말일 듯싶다. 그리고 ‘약기지’(弱其志)는 나라 사람의 ‘분에 넘치는 그 무엇을 해보려고 하는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라는 뜻이고, ‘강기골’(强其骨)은 ‘나라 사람’의 ‘골격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무지무욕’(無知無欲)이 문제이다. 이는, 그냥 ‘알지 못하고 욕심 없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앎과 부질없는 탐냄’을 의미한다. 그리고 ‘불감위야’(不敢爲也)는 ‘감히 작위하지 못하게 한다.’라고 하거나 ‘감히 어찌할 수 없게 한다.’라고 풀이되고 있으나, 나는 ‘무릇 함부로 나서지 못하게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은, ‘혹세무민’(或世誣民)이란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껏 소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미혹하게 속여 왔지 않은가. 


[나무 찾기] 
 ‘불현가욕 사민심불란’(不見可欲 使民心不亂, ‘하고자 할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나라 사람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된다). 이 말을 들으면 생각나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귤나무’(Citrus unshiu)이다. 1970년도에 나는 제주도에 살았는데, 그때만 해도 그곳에서 귤나무는 ‘대학 나무’로 통했다. 그만큼 수익성이 높은 나무로 붐을 이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나나 귤나무를 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는, 바로 ‘현가욕’(見可欲)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바람을 안고 서서 두 눈 감던 날이더니, 가지를 불쑥 내밀며 불거진 작은 외침, 뜨거운 빛 한 자락이 잎사귀에 떨어진다.
돌담 넘는 물보라가 서슬을 세우며 가고, 구름이 떠서 쉬면 가슴을 적시는 강물, 파랗게 위엄을 일으켜 숲이 숲을 이끈다.
하늘을 밟고 올라 쿵쿵 심장 뛰는 소리, 일제히 초록 깃발 펼쳐 보인 귤밭이여. 이제야 찾아온 꿈이 꽃과 함께 일렁댄다.
                                                                                       -졸시 ‘서귀포 귤밭’ 전문 

 귤나무는 ‘귤(橘)이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귤’은 중국에서 쓰는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그런데 귤나무를 다른 말로는 ‘밀감’(蜜柑)나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밀’은 ‘꿀을 지닌 나무’라는 뜻이며, ‘감’은 ‘홍귤나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밀감나무’는 ‘꿀을 지닌 홍귤나무’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홍귤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홍귤(紅橘)나무’(Citrus leiocarpa)에는 다음과 설명이 있다.
 “운향과의 상록활엽관목 또는 소교목이다. 기부에서 가지가 나뉘며, 잎은 작고 그물맥이 다소 명료하지 않으며 날개가 없다. 6월에 흰 꽃이 피어난다. 열매는 편평한데 껍질이 매끈하며 진한 황색이고 향기와 신맛이 강하다. 제주도를 비롯하여 일본에 분포한다. 다른 말로는 ‘감자’(柑子)나무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귤나무’는 ‘밀감나무’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아야 옳다. 
 아무튼 제주도에서 수익성이 좋은 나무로 붐을 이룬 나무는, 개량종의 귤나무이다. 보통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온주밀감’(溫州蜜柑)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일본산(日本産)으로 높이가 5미터에 달하고 가지에 가시가 없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나 잎이 타원형이고 열매가 둥근꼴 또는 달걀꼴을 이루며 중심부가 충실한 ‘당귤나무’(Citrus sinensis)도 있다. 이는, 중국의 ‘원저우’(溫州) 지방 원산으로, 감귤류 중에서 상품(上品)에 속하며 일본 등지에서도 널리 재배한다. 
 귤나무의 속명(屬名)인 ‘citrus'는 희랍명 'kitron'에서 유래된 라틴명인데 ‘상자’(箱子)라는 뜻이다. 이는, 레몬 나무에 대한 오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소명(種小名)인 ‘unshiu’는 ‘온주’의 일본 발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당귤나무’의 종소명인 ‘sinensis’는 ‘중국의’라는 뜻이다. 귤은 이미 중국 전국시대에 초(楚)나라의 특산물이었다고 한다.
 나는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약 10년 동안 서귀포에 작은 농장을 마련하여 귤나무를 가꾸었다. 내가 가꾼 귤나무도 온주밀감이 대부분이었다. 즉, 조생온주로는 ‘궁천’ ‘흥진’ ‘삼보조생’ ‘송산조생’ 등이었고, 보통온주로는 ‘임온주’ ‘남강20호’ ‘청도’ ‘실버힐’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외에 잡감 종류로는 ‘레몬 세 그루’ ‘금강자 세 그루’ ‘네이블 일곱 그루’ ‘금귤 세 그루’ ‘팔삭 열 그루’ ‘일향하 다섯 그루’ ‘병귤 다섯 그루’ ‘병감 세 그루’ ‘개량지각 세 그루’ ‘하귤 열 그루’ 등이 있었다. 나는 이 모든 나무에 온 힘을 쏟았다.
 그 당시에 서귀포 일대는 온 사방이 귤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언덕에 올라서서 귤밭을 바라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귤나무 잎사귀들이 흡사 물결을 이루는 것 같아서 멀미가 날 정도였다. 
 귤나무들은 5월이 되면 밥풀처럼 생긴 흰 꽃을 터뜨리게 된다. 그러면 서귀포는 온 천지가 하얗게 되고 귤꽃 향기에 취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귤이 익기 시작하는 10월이 되면, 이번에는 온 서귀포가 황금빛으로 변해 버리고 만다.
 서귀포의 귤은 옛날부터 이름이 높았다. 기록에 ‘나라에서 귤을 진상으로 받으면, 감사의 뜻으로 시신(侍臣)과 제주목사에게 포백(布帛) 등을 하사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에서는 ‘황감제’(黃柑製)라고 하여 진상 받은 감귤을 계기로 과거까지 실시했다고 한다. 즉, 이 과거는 1564년(명종19년)부터 시행되었는데, 고시의 절차는 이러했다. 먼저 대제학이 몇 개의 시제(試題)를 써내어서 임금의 낙점을 받으면, 승지가 어제(御題)를 받든다. 그리고 중사(中使)는 귤을 들고 명륜당에 이른 다음, 성균관 당상 이하 여러 유생에게 귤을 나누어 준다. 그 후에 어제를 게시하고 시험을 시행했다. 이 제도는 1700년(숙종 26년)에 폐지되었다.
 그런가 하면, 세조(世祖)는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고도 한다.
 “감귤에는 변종(變種)이 잘 나타나니 추운 곳을 피하고 양지바른 곳에 과원을 개설할 것이며, 미숙한 종자로 묘목을 양성하면 나쁜 품종이 생겨나므로 주의할 것이며, 우량한 어미를 선별해서 그것으로 접목한 묘를 생산하도록 할 것이며, 껍질이 두꺼운 종류는 저장이 더 잘 되는 것도 아울러 유의할 것이다.”
 귤나무의 열매를 가리켜서 ‘감과’(柑果)라고 한다. ‘감과’는, ‘장과’(漿果)의 한 가지인데, 속열매껍질 일부가 주머니처럼 생겼고 그 속에 액즙(液汁)이 있는 과실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외과피가 질기고 유선(油腺, oil gland)이 많으며, 중과피는 두껍고 부드러우며 해면상(海綿狀)이고, 내과피는 얇고 다수의 포낭(胞囊)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액즙을 지닌 모상체(毛狀體)가 있다. 우리가 ‘밀감의 열매껍질을 벗길 때’에 벗겨지는 부분은 외과피와 중과피이다.
 귤나무와 가까운 나무라면, ‘유자나무’(Citrus junos)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남해안 등지에서 재배한다. 유자나무도 중국 원산의 나무인데, 귤나무와 같은 속(屬) 중에서 가장 추위에 강하다. ‘유자나무’는 ‘유자’(柚子)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유자’의 ‘유’는 ‘나무 목’과 ‘말미암을 유’가 합하여 생긴 글자이다. 그런데 ‘말미암을 유’는 ‘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참으로 유자나무가 열매를 달고 있을 때의 모습이 그와 같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