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1장, 길을 길이라고 하면(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6. 08:37

길- 제1장

길을 길이라고 하면





 길을 길이라고 하면 늘 그러한 길이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의 처음이요, 이름이 있음은 모든 것의 어머니이다.
 그 까닭에 늘 없음에서 그 뛰어남을 보려고 하며, 늘 있음에서 그 가려 뽑음을 보려고 한다.
 이 두 가지는 함께 나왔으나 이름이 다르니, 함께 이르기를 ‘거무레하다.’라고 한다. 거무레하고 또 거무레하니 온갖 뛰어남이 드나드는 문이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 천지지시 유명 만물지모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차양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뜻 찾기]
 여기에서 ‘상도’(常道)를 ‘항상 변함이 없는 길’이라고 말하고들 있지만, 나는 이를 다르게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게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이 ‘상도’의 ‘상’을 ‘늘 그러한’이라는 뜻의 ‘객관적’인 의미로 풀었다. ‘객관적’(客觀的)이라고 함은, ‘여러 사람이 공유한다.’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가도’(可道)는 ‘주관적인 길’이다. ‘주관적’이라고 함은, ‘나만이 지닌다.’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바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몸짓에 불과하였다.’라는 것은 ‘상명’(常名)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것은 ‘가명’(可名)이다. 
 ‘관기묘’(觀其妙)에서 ‘묘’는 ‘묘하다’ ‘정묘함’ ‘뛰어나다’ ‘아름답다’ ‘젊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나는 그중에서 ‘뛰어나다’의 뜻을 택했다. 그리고 ‘관기요’(觀其徼)에서 ‘요’는 ‘돌다’ ‘순행하다’ ‘순찰하다’ ‘변방’ ‘샛길’ ‘구하다’ ‘훔치다’ ‘끝’ ‘표절하다’ ‘결말’ ‘가려 뽑음’ 등을 가리킨다. 그중에서 나는 ‘가려 뽑음’을 골랐다. 또한, ‘동위지현’(同謂之玄)에서 ‘현’은 ‘검다’ ‘그윽하다’ ‘하늘빛’ ‘깊다’ ‘깊이 숨음’ ‘고요하다’ ‘통하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검다’와 ‘그윽하다’를 일으켜서 ‘거무레하다’로 풀었다. ‘거무레하다’라는 것은 ‘엷게 거무스름하다.’이고 ‘거무스름하다.’라는 것은 ‘약간 검다.’라는 뜻으로 '잘 알 수 없음'을 나타낸다.


[나무 찾기]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에서 나는 무궁화(Hibiscus syriacus )를 떠올리게 된다. 참으로 많은 나무가 있지만, 우리에게 ‘무궁화’는 특별한 나무이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무궁화는 객관적인 나무가 아니라 주관적인 나무이다. 우리나라 꽃, 무궁화! 듣기만 하여도 공연히 콧등이 시큰해지는 이름이다.

동남쪽에 자리 잡아 먼동을 빗질한 마음
노을 묻은 이마에는 이슬 같은 땀이 솟고
조금씩 손을 펼치어 새 아침을 열고 있다.

알몸으로 다진 나날 이어지는 목숨의 끈
먼저 떠난 발자국을 다시 짚어 따라가면
점잖게 흰옷을 걸친 얼굴들도 눈을 뜬다.

때로는 시린 바람이 그 가슴에 몰아쳐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불빛 찾아 헤맨 역사
이 겨레 더운 숨결이 꿈을 안고 피어난다.
                             -졸시 ‘무궁화가 피어난다’ 전문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은 ‘꽃이 계속해서 피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꽃은 여름부터 한 번 피기 시작하면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 피는데, 대개 100일 정도를 핀다. 새로 난 가지의 밑에서부터 위로 차례차례 꽃을 피우며, 또 가지가 자라면서 연달아 꽃을 피운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니, ‘하루살이’ 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꽃이 그대로 지는 게 아니라 저녁에 예쁘게 오므라졌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피기를 이삼일 동안 계속한다.
 이에 대해, 문일평(文一平)이 쓴 ‘화하만필’(花下漫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들어 있다.
 “이 꽃이 조개모락(朝開暮落)이라고 하나 그 실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드는 것이니 조개모위(朝開暮萎)라고 함이 차라리 가할 것이며, 따라서 낙화 없는 것이 이 꽃의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거니와, 어쨌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것은 영고무상(榮枯無常)한 인생의 원리를 보여 주는 동시에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계속하여 피는 것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군자의 이상을 보여 주는 바다.”
 요즘은 무궁화의 품종이 아주 많이 생겼지만, 나는 그 일을 바람직하지 않게 여긴다. 무궁화라면, 홑꽃으로 그 가운데가 붉고 꽃잎 끝의 대부분이 엷은 분홍빛을 나타내며 자줏빛이 약간 감돌아야 제격일 듯싶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國花)로 정착된 것은 애국가 가사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 들어감으로써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궁화는 그 별명이 많은 나무로 유명하다. 이 ‘무궁화’라는 이름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고려 때의 시인 이규보(李奎報)였다고 한다.
 무궁화를 한자로는 ‘근’(槿)이라고 쓰는데, 왜 하필이면 ‘나무 목’(木) 옆에 ‘오랑캐 근’(菫)을 쓰는지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한명(漢名)으로도 ‘목근’(木槿)이라고 한다. 무궁화는, 꽃이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여 ‘무숙화’(無宿花)라고 하기도 하며, 아침에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하여 ‘조화’(朝華)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진찬화’(進饌花)는 옛날 궁중에서 잔치가 있을 때에 신하들이 사모에 무궁화를 꽂는 풍습에서 생긴 이름이고, ‘번리초’(藩籬草)는 산울타리로 쓰이기에 얻은 또 다른 별명이다. 그 밖에도 ‘순화’(舜花)라든가 ‘화노’(花奴) ‘옥증’(玉蒸) ‘조균’(朝菌) ‘목금’(木錦) ‘형조’(荊條) 등의 이름을 지닌다. 그뿐만 아니라, 가지를 꺾어서 땅에 꽂으면 뿌리가 잘 내리기 때문에 ‘이생’(易生)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궁화나무는 아욱과에 딸린 갈잎떨기나무이다. 원산지는 중국 시리아  인도 등지로 알려져 있다. 영명(英名)은 ‘사론의 들꽃’(rose-of-Sharon)이고, 일본에서도 중국과 같은 뜻으로 ‘무쿠게’(ムクゲ, 木槿)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궁화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심기 시작했을까? 중국 고대의 기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이런 글이 담겨 있다.
 ‘군자의 나라가 북방에 있는데, 그들은 서로 양보하기를 좋아하여 다툼이 없다. 그 땅에 자라는 무궁화는 아침에 피고 저녁에 시든다.’
 ‘군자의 나라’는 우리나라를 가리킨 말인데, 이로 미루어서 아주 먼 고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가 많이 피어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궁화나무의 뿌리는 약재로 쓰이고 꽃도 약으로 쓰인다. 특히 흰 꽃을 따서 찹쌀과 섞은 후에 밥을 지어 먹으면 이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옛 시에 ‘산중습정관조근’(山中習靜觀朝槿) ‘송하청재절로규’(松下淸齋折露葵) ‘야노여인쟁석파’(野老與人爭席罷) ‘해구하사갱상의’(海鷗何事更相疑)라는 게 있다. 이는, 당시(唐詩)에 수록된 왕유(王維)의 작품이다. 즉, ‘산중에서 좌선하면서 무궁화의 덧없음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소나무 아래에 재계하면서 이슬 맞은 아욱을 꺾는다. 시골 노인도 나를 우습게 여겨서 앉을 자리를 권하지 않고, 바다 갈매기는 어찌 나를 의심하여 멀리하는가.’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노자’(老子)와 관련된 고사가 있다. 노자가 양주(楊朱)라는 사람에게 ‘사람이 너무 위대하게 보이는 것은 좋지 못하다.’라고 일러 말했다. ‘양주’는 그 말을 듣고 깨친 바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주가 숙소를 나갈 때는 모두가 그에게 자리를 사양하곤 했는데 돌아올 때는 그에게 양보는커녕 앉을 방석을 서로 빼앗곤 했다. 그 이유는, 그가 돌아올 때의 모습이 허술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사람들이 그 겉치레를 보고 그 값을 판단한다는 이야기이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