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2장,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줄로(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6. 22:29

길- 제2장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줄로




 하늘 아래에서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줄로 아나, 이것은 더러울 뿐이다. 모두 착한 것을 착한 줄로 아나, 이것은 착하지 않을 뿐이다.
 그 까닭에 없음과 있음이 서로 낳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며 긺과 짧음이 서로 견주고 높음과 낮음이 서로 기울이며 ‘가락이 있는 소리’와 ‘시끄러운 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함이 없이 일을 끝내고 말이 없이 몸으로 가르친다.
 모든 것을 짓는 데 싫다고 하지 않으며, 낳고서도 갖지 않고 하고서도 기대지 않으며, 일을 이루고서도 앉지 않는다. 무릇 오직 앉지 않는다. 그러므로 쌓지 않는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오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뜻 찾기] 
 ‘사오이’(斯惡已)에서 ‘오’는 ‘흠’ ‘티’ ‘추하다’ ‘더럽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더럽다’를 골랐고, ‘이’는 ‘~일 뿐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에서 아름답다거나 착하다고 하는 느낌’은 절대적이지 않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어느 때는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도, 다른 때는 ’더럽다고 느끼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중성과 가변성을 지닌다.
 ‘장단상교’(長短相較)의 ‘교’는 ‘비교하다’ ‘견주다’ ‘대강’ ‘환하다’ ‘분명하다’ ‘겨루다’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견주다’를 골랐다. 그리고 ‘고하상경’(高下相傾)에서 ‘경’은 ‘기울다’ ‘기울이다’ ‘위태롭게 하다’ ‘가지런하지 않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중에서 ‘기울이다’를 택했다. 그런데 ‘음성상화’(音聲相和)에서 ‘음’과 ‘성’이 문제이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여러 기록을 보니, 영어로 ‘음’은 ‘note’에 가깝고 ‘성’은 ‘noise’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음’을 ‘가락이 있는 소리’로 하고 ‘성’을 ‘시끄러운 소리’로 했다.
 ‘성인’(聖人)은 ‘우환(憂患)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리고 ‘우환’은 ‘나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근심’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를 줄여서 그냥 ‘거룩한 이’라고 풀이하였다. 또,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에서 ‘처’는 ‘처리한다’라는 뜻이어서 ‘처무위지사’는 ‘자연에 맡기고 작위하지 않는 것으로 일을 처리함’을 나타낸다고 한다.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에서 ‘사’는 ‘사양한다’ 또는 ‘사절한다’라는 뜻이어서 나는 ‘싫다고 한다.’라고 쉽게 풀었다.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에서 ‘거’는 ‘살다’ ‘앉다’ ‘쌓다’ ‘있다’ 등의 뜻이 있는데, 그중에서 ‘쌓다’를 골랐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거’는 ‘자처하지 않는다.’의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나무 찾기]
 ‘개지미지위미’(皆知美之爲美,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줄로 안다.)에서 나는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 )를 생각한다.

겨우내 눈을 감고 무슨 알을 품었는지
봄이 오자 빈 가지에 하얀 깃의 어린 새들
저마다 배고프다고 입을 쩍쩍 벌립니다.
                                               -졸시 함박꽃나무‘ 전문

 함박꽃나무는, ‘꽃이 함박눈처럼 희고 탐스럽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함박’은 ‘함지박’의 줄임말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이 나무를 북한이 1995년 4월에 ‘국화’(國花)로 삼았다. 북한에서는 이 나무를 ‘목란’(木蘭)이라고 부른다. 전에는 ‘함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들이 국화로 삼았겠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꽃도 질 때는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 아마도 이게 나에게는 바로 ‘사오이’(斯惡已)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나는 함박꽃나무가 늘 아름답다고 여긴다. 함박꽃나무는 산에서 자란다고 하여 일명 ‘산목련’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함박꽃나무와 목련(M. kobus)은 차이가 있다. 즉, ‘함박꽃나무’는 잎이 나온 다음에 꽃이 피지만, ‘목련’은 꽃이 핀 다음에 잎이 나온다. 그리고 함박꽃나무와 목련과는 달리, 우리가 정원수로 흔히 볼 수 있는 ‘백목련’(M. denudata)과 ‘자목련’(M. liliflora) 등은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다.
 함박꽃나무를 일본에서는 ‘오오야마렌게’(ォォャマレンゲ, 大山蓮花)라고 한다. ‘대산’(大山) 대신에 ‘심산’(深山)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나무가 깊은 산골에 살기 때문일 듯싶다. 또, 한명으로는 ‘천녀화’(天女花)라고 한다. 참으로 순결한 그 꽃의 살결을 잘 나타내었다. 
 함박꽃나무는 갈잎이고 넓은잎을 지니며 중키나무이다. 줄기는 여러 개가 나와서 비스듬하게 자라는 경우가 많고 나무껍질은 회색이며 갈라지지 않는다. 키가 4미터 내외로 자라는 게 흔하나 크게는 10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고 거꾸로 된 달걀꼴이며 뒷면의 잎맥 위에 털을 지닌다. 봄에 흰 꽃이 핀다. 꽃잎은 6장이고 수술은 붉은빛을 띤 보랏빛이다. 꽃의 지름이 7센티미터나 되기도 한다. 그리고 꽃의 길이는 3.5센티미터 정도인데, 아래를 향하여 컵 모양으로 핀다. 열매는 6센티미터까지 자라며 9월에 익는다. 꽃은 많이 달리지 않으나, 무척 야성적인 느낌이 들게 한다. 일반적으로 열매의 길이는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이다. 씨는 길둥근 모양인데 붉은빛을 보이며 익으면 터져 나와서 실처럼 하얀 줄에 매달린다.
 우리나라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만날 수 있고 함경북도를 제외한 전역에 분포한다.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살고 있다. 지리산에서는 잎에 반점을 지닌 이 나무를 만날 수 있는데, 그 이름을 ‘얼룩함박꽃나무’(for. variegata)라고 한다.
 함박꽃나무는 약재로도 쓴다. 뿌리는 ‘진통’ ‘하혈’ ‘이뇨’ 등에 효과가 있고, 꽃 역시 ‘안약’으로 쓰거나 ‘두통약’으로 사용한다.
 여기에서 잠깐, 목련 종류의 여러 나무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앞에서 소개한 ‘목련’은 제주도의 숲속에서 자생한다. 그리고 ‘자목련’은 중국에서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로 들어왔으며, ‘백목련’도 중국이 원산지이다. 그 밖에 키가 훌쩍 크고 잎도 커다란 ‘일본목련’(Magnolia obovata)을 우리나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나무는 이름 그대로 일본 원산의 나무이다. 또, 목련과의 나무로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태산목’(Magnolia grandiflora)을 꼽을 수 있다. 이 나무들 모두가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냘픈 입술이 고요함 속에서 열린다. 하얀 말 가벼운 노래가 어두운 담 밑에 눈처럼 내린다. 어느 작고 고달픈 꿈이 저토록 아름다운 날개돋이를 하였는가. 이 봄 새롭게 목숨 태어나, 향기로워라 온 동네가 들썩거린다.

-졸시 ‘목련꽃 부근’ 전문 

 또 ‘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거룩한 이는 함이 없이 일을 끝내고 말이 없이 몸으로 가르친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성인’, 즉 ‘거룩한 이’와 같은 느낌을 지니고 사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는 바로 ‘녹나무(Cinnamomum camphora)’이다. 
 녹나무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조무래기 같은 나무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가운데 홀로 장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몸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향기를 내뿜는다. 그런 까닭에 이 녹나무는 ‘어진 사람’이나 ‘거룩한 이’에 비유될 수 있다. ‘신어’(新語)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현자지처세 유금석생우사중 예장산어유곡’(賢者之處世 猶金石生于沙中 豫章産於幽谷). 이 말은, ‘어진 사람의 처세 모습이란 것은 모래밭에 나는 금덩어리와 같기도 하고 깊은 산중에 사는 녹나무 같기도 하다.’라는 뜻이다. 녹나무를 한명으로 ‘장’(樟) 또는 ‘예장’(豫樟, 豫章)이라고 한다.
 나는 제주도에서 이 나무를 10년 동안이나 벗하고 살았다. 녹나무를 처음 만난 곳은 제주시 남문 밖의 광양(光陽) 땅에 있는 ‘삼성혈(三姓血) 부근에서였다. 성역 안에 30여 그루가 있었다.
 녹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달린 상록수이다. 잎이 넓고 잎자루가 긴 편이다. 아마도 녹나무는 제주도 지방의 여러 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 살 수 있는 나무라고 여겨진다. ‘그 수명이 1천 년이 넘는다.’라고 알려져 있다. 영명으로는 ‘캠퍼 트리’(camphor tree)라고 한다. 
 이 나무의 이름이 ‘녹나무’인 것은 이 나무의 작은 가지가 노란빛이 도는 녹색이며 윤채(潤彩)가 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