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야망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앞을 곧잘 바라보기는 한다. 그러나 제대로 자신의 야망을 펼치려면 뒤를 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고전 읽기야말로 뒤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미 나는 인물전기인 ‘숫시인 싯다르타’와 ‘씬쿠러, 콩쯔’를 펴내었다. 그리고 이어서 ‘노자’에 관한 공부가 시작되었으나, 노자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문헌에서도 찾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펼쳐 들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 책은 ‘도경’(道經, 길 모음) 37장과 ‘덕경’(德經, 베풂 모음) 44장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물론, ‘도’(道)는 ‘길’ ‘이치’ ‘도리’ ‘다니다’ ‘행하다’ ‘따르다’ ‘다스리다’ ‘가르치다’ ‘깨우침’ 등의 뜻을 지니나, 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덕’(德)은 ‘크다’ ‘은혜’ ‘베풀다’ ‘어진 이’ ‘행복’ ‘얻다’ ‘절조’ ‘능력’ 등의 뜻을 지니지만, 나는 ‘베풀다’를 골라서 ‘베풂’이라고 했다. 그리고 ‘경’(經)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81장이 모두 각각 한 편씩의 시(詩)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매우 놀랐다. 그래서 나는 이 81장을, 의역(意譯)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직역(直譯)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뜻글을 되도록 버리고 소리글로 써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시(詩)는 그 즐거움이 ‘뜻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의미를 느끼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노자의 생각을 높이려고 하거나 따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노자’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몸으로 느껴 보라고 권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시(詩)는 그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필요가 없다. 각기 나름대로 느끼면 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중국 고전 중에서 가장 우수한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읽는 자체가 먼 옛날로 떠나는 여행이다. 그렇기에 먼 시대로 떠나는 여행의 즐거움을 놓칠 수 없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려면, 노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나 한자적 자해(字解) 등을 반드시 짚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뜻 찾기’라는 항목을 만들어서 청소년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여기에서 조금 언급해 둘 사항이 있다. ‘노자도덕경’에 있어서 ‘도경’(길 모음)은 일반적이고 철학적인 원리를 서술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덕경’(베풂 모음)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처럼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노자의 글이 후대로 전해지면서 많이 첨삭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좀 더 폭넓은 발상을 전개하기 위하여, 81장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며 그 각 장의 한 문구에서 집히는 나무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리고 그 항목을 ‘나무 찾기’라고 했다. 이 책에는 어림잡아서 모두 120여 종의 나무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나무에 대한 혼동을 없애기 위하여 각 나무의 이름 다음에는 '학명'[속명(屬名)과 종소명(種小名)]을 괄호 안에 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왜 그 나무에는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나무 이름에 대한 설명과 유래도 간단히 적어 놓았다. 이로써 청소년들은 나무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얻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노자도덕경’은, ‘어떤 사회에서 사람들이 그것에 의하여 선(善)과 악(惡) 및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한 규범의 총체’인 그런 부류의 진부한 도덕책이 아니다. 그렇다. 한 권의 시집이다. 청소년들이 즐기는 방법 그대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읽고 느끼며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기 바란다.
2010년 여름 낙성대에서
녹시 김 재 황
'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장, 낫다는 것을 높이지 않으면(역: 녹시 김 재 황) (0) | 2022.02.07 |
---|---|
제2장,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운 줄로(역: 녹시 김 재 황) (0) | 2022.02.06 |
제1장, 길을 길이라고 하면(역: 녹시 김 재 황) (0) | 2022.02.06 |
노자에 대하여/ 김 재 황 (0) | 2022.01.31 |
연재에 들어가며/ 김 재 황 (0) | 2022.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