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4장, 길은 빈 그릇이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8. 10:24

길- 제4장

길은 빈 그릇이다





 길은 빈 그릇이다. 다시 말하자면, 쓸 수 있고 늘 차지 않는다. 깊고 멀어서 모든 것의 으뜸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엉클어짐을 풀며 그 빛을 부드럽게 하여 그 티끌과 함께하니 그 맑음이 늘 있는 것 같다.
나는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못한다. 하느님의 앞인 것 같다.

道冲 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湛兮 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도충 이용지 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담혜 사혹존.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뜻 찾기]  
 ‘도충’(道冲)에서 ‘충’은 ‘충’(沖)의 속자이다. ‘충’은 ‘온화하다’ ‘비다’ ‘공허함’ ‘사이’ ‘조화되다’ ‘이르다’ ‘도달함’ ‘오르다’ ‘어리다’ ‘빈 그릇’ ‘깊고 넓은 모양’ 등을 나타낸다. 나는 ‘빈 그릇’을 골랐다. 그리고 ‘혹불영’(或不盈)에서 ‘혹’은 ‘상’(常)과 같아서 ‘언제나’ ‘늘’ ‘항상’ 등으로 풀이된다. 또, ‘연혜’(淵兮)에서 ‘혜’는 어조사이고, ‘연’은 심원(深遠), 즉 ‘깊고 멀어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사만물지종’(似萬物之宗)에서 ‘종’은, ‘마루’ ‘일의 근원’ ‘으뜸’ ‘근본’ ‘사당’ ‘우두머리’ 등을 뜻한다. 나는 그중에서 ‘으뜸’을 택했다.
 ‘해기분’(解其紛)에서 ‘분’은 ‘문란한 것’이나 ‘엉클어진 것’ 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엉클어짐’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기광’(和其光)에서 ‘화’는 ‘부드럽게 함’이나 ‘흐리게 함’을 가리킨다. 나는 앞에 있는 것을 따랐다. 또 ‘동기진’(同其塵)에서 ‘동’은 ‘함께하다.’ 혹은 ‘균일하게 하다’ 등을 나타낸다. 나는 ‘함께하다’를 골랐다. 그래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하면 ‘자기 재주를 감추고 세속을 좇음’을 이른다. ‘담혜’(湛兮)에서 앞의 ‘연혜’와 마찬가지로 ‘혜’는 어조사이고 ‘담’은 ‘맑음’이나 ‘징청’(澄淸)을 나타내는데, 이 또한 앞에 있는 것을 택했다.
 ‘오부지수지자’(吾不知誰之子)에서 ‘수’는 ‘누구’ ‘묻다’ ‘무엇’ ‘어찌’ 등의 뜻을 지닌다. 그중에서 나는 ‘누구’를 붙잡았다. 그래서 ‘수지자’를 ‘누구의 아들’이라고 풀었다. 또, ‘상제지선’(象帝之先)에서 ‘상’은 ‘~같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는 ‘임금’ ‘천자’ ‘하느님’ ‘크다’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하느님’을 골랐다. 또, ‘선’은 ‘먼저’ ‘우선’ ‘앞서서’ ‘앞’ ‘앞서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앞’을 골랐다. 그래서 ‘제지선’을 ‘하느님의 앞’이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좌기예 해기분’(挫其銳 解其紛,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엉클어짐을 푼다.)에서 나는 문득 ‘호랑가시나무’(Ilex cornuta)를 떠올리게 된다. 호랑가시나무는 무서운 가시를 지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예리한 가시가 차츰 없어진다. 자세히 보면 잎의 톱니가 몇 개의 사나운 가시로 변해 있다.

보았네, 저 남쪽 섬 눈부신 바닷가에서
꼬이고 뒤틀리며 날카롭게 세운 가시
파도가 휘몰아칠 때 더욱 잎을 오므렸네.

안다네, 이제 겨우 하늘에서 내린 뜻을
나이를 먹을수록 하나둘 줄어든 가시
천둥이 꽝꽝 울어도 눈을 감고 흔들리네.
-졸시 ‘호랑가시나무’ 전문 

 ‘호랑가시나무’는 ‘그 잎에 호랑이 발톱처럼 생긴 가시가 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얻었다. 이 나무를 한명(漢名)으로는 ‘묘아자’(猫兒刺)라고 한다. 그리고 영명(英名)은 ‘차이니스 홀리’(Chinese holly)라고 부르는데, 특히 억센 가시를 지닌 호랑가시나무를 가리켜서 '히 홀리'(he-holly)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부드러운 가시를 지닌 호랑가시나무를 가리켜서 ‘시 홀리’(she-holly)라고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자연집단은 제주도 서반부에서 발견되고 동반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특이성이 있다. 그리고 서남 해안을 따라서는 발견할 수 있지만 동해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서울이나 대전 지방에서는 바깥에서 월동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전라북도 익산 시내에서는 길가에 심은 것이 겨울을 잘 나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 협재에 자생하는 호랑가시나무가 가장 남쪽의 것이라면, 우리나라 가장 북쪽에 자생하는 호랑가시나무는 부안군 도청리에 있다. 이 지역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은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는데, 정확한 행정적 소재지는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도청리 산 1번지이고, 면적은 8,926제곱미터에 이른다. 변산반도 남쪽 해안의 조금 떨어진 산자락에 무리를 짓고 있다. 이 호랑가시나무들은 키가 보통 2미터에서 3미터 정도이다. 여기가 바로 호랑가시나무의 자생 북한지(北限地)라고 생각된다.
 호랑가시나무는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가 더러 있다. 이를테면, 전북 변산 지방에서는 ‘호랑등긁기’라고 부른다. 참으로 우화적인 느낌이 든다. 그런가 하면 전남 완도 지방에서는 ‘호랑이발톱나무’라고 한다. ‘호랑가시나무’보다 더 실감이 난다. 제주도에서도 이 나무를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그 이름이 ‘더러가시낭’이다. 제주도에서는 ‘나무’를 ‘낭’이라고 발음하며, 이 나무를 ‘쓸모없는 나무’로 여겨서 마구 베어 버리곤 했다. 
 겨울이 되면 호랑가시나무는 붉은 열매를 내보인다. 그런데 열매를 지니지 않은 나무도 있다. 그로 미루어서 이 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암꽃과 수꽃의 구별이 근본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원칙적으로 암나무에만 열매가 열려야 하지만, 수나무에도 약간의 열매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꽃은 4월에서 5월에 걸쳐서 핀다. 꽃의 빛깔은 희고 4매의 꽃잎을 가지고 있으며 향기를 풍긴다. 앞에서 말했듯이 열매는 둥글며 붉게 익는데, 그 안에 4개의 씨가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카드에 그려져 있는 빨간 열매의 나무가 바로 이 ‘호랑가시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 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악마들이 무서워하는 나무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 주변에 이 호랑가시나무를 걸어 두면 병이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또, 영국에서는 이 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아주 비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나무의 지팡이를 가지면 사나운 짐승이나 미친개를 멀리 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예수의 왕관을 짜는 데에 이 나무를 사용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 ‘로빈’(Robin redbreast)이라는 새가 이 나무의 열매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이 새는,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언덕을 오를 때에 그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예수 이마의 가시를 쪼았다고 전한다. 그때 가시에 그 가슴을 찔려서 가슴 붉은 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호랑가시나무로 만든 차를 즐겨 마시는데, 홍역에 아주 효과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잎으로 만든 주스도 즐겨 마신다는데, 이 주스는 신경통을 잘 낫게 만든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이 나무의 껍질을 달여 마신다. 그들은 그 즙이 강장제로서 아주 훌륭하다고 믿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생약으로 사용하고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열매를 생약명으로 ‘구골자’(枸骨子)라고 부른다. 겨울에 이 열매를 채취하여 약재로 만든다. 강정 효능을 지니고 있으며 혈액순환을 돕기에, 신체허약증이나 양기부족 및 유정(遺精) 등에 사용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씨로는 번식이 쉽지 않다. 아무래도 싹이 트는 힘이 약해 보인다. 그러나 꺾꽂이하면 비교적 쉽게 ‘나무모’(苗木)를 얻을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의 가지를 10센티미터쯤의 길이로 잘라서 흙 속에 반 정도 묻히게 꽂아 놓으면 뿌리가 잘 내린다. 가지의 위쪽에 잎을 서너 개 붙여 두는 게 좋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