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8장,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11. 08:19

길- 제8장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것에게 잘 보탬이 되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꺼리는 곳에 머무른다. 그 까닭에 길과 거의 가깝다.
 앉는 곳은 낮아야(땅=겸양) 좋고 마음은 깊어야 좋으며, 주는 것은 어질어야 좋고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으며 본보기는 다스림이 좋아야 하고 일은 익숙하게 잘할 수 있어야 좋으며 움직임은 때가 좋아야 한다.
무릇 오직 다투지 않는다. 그 까닭에 허물이 없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뜻 찾기]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상’은 ‘가장’이라는 뜻이고 ‘선’은 ‘좋은 것’이라는 명사로 쓰이고 있다. 왜 그런가? 그 이유가 뒤에 이어진다. 즉, 물은 ‘선리만물’(善利萬物)하고 ‘부쟁’(不爭)하기 때문이다. ‘선리만물’은, 모든 생명체가 물 없이는 살지 못하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부쟁’은, ‘잔잔히 흐르는 물’을 보면 그 의미를 금방 헤아릴 수 있다. 또,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에서 ‘소오’는 ‘싫어하는 곳’이다. 물은 낮고 아래에 있는 것으로서 ‘낮고 아래에 있는 곳’은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 그와 같은 뜻으로 나는 ‘꺼리는 곳’이라고 했다. ‘처’는 ‘살다’ ‘머무르다’ ‘두다’ ‘분별하다’ ‘정하다’ ‘처치하다’ ‘결정함’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머무르다’를 골랐다. 또, ‘기어도’(幾於道)에서 ‘기’는 ‘거의’ 또는 ‘가깝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어도’는 ‘길과 거의 가깝다.’라고 풀이된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삶의 길’이다.
 ‘거선지’(居善地)나 ‘심선연’(心善淵) 등에서 앞의 ‘거’나 ‘심’은 명사로 쓰여서 각 ‘앉는 것’과 ‘마음’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그 모두의 ‘선’은 ‘좋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을 좋게 하고’ 등으로 풀이하고 있으나, 나는 달리하여 ‘~이 좋아야 하고’ 등으로 풀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선인’(與善仁)이나 ‘언선신’(言善信)이나 ‘정선치’(正善治)나 ‘사선능’(事善能)이나 ‘동선시’(動善時) 등에서 ‘선’은 모두 ‘좋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여’는 ‘주는 것’이 되고 ‘언’은 ‘말’이 되며 ‘정’은 ‘본보기’가 되고 ‘사’는 ‘일’이 되고 ‘동’은 ‘움직임’이 되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正)은 ‘정(政)과 같은 뜻으로 정치를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부유부쟁’(夫唯不爭)에서, ‘부’는 ‘무릇’이라는 말이고, ‘유’는 ‘오직’ ‘다만’ 등의 뜻이다. ‘부유’는 앞의 제2장에서는 ‘부유불거’(夫唯不居)로 나왔다. 그리고 ‘고’(故)는 ‘그 까닭에’라고 풀이되며, ‘무우’(無尤)에서 ‘우’는 ‘더욱’ ‘특히’ ‘뛰어남’ ‘허물’ ‘탓’ ‘잘못’ ‘재앙’ ‘탓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허물’을 택하였다.


[나무 찾기]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모든 것에게 잘 보탬이 되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이라는 말을 들으면, 문득 ‘수로부인’(水路婦人)이 생각난다. 그리고 ‘수로부인’이라고 하면 다름 아닌 ‘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과 ‘진달래’(Rhododendron mucronulatum)가 떠오른다. 

흰 추위 밀어내고 노란 햇살 지핀 봄날
아궁이 부서진 곳 숨긴 손이 기어 나와
연분홍 치맛자락에 불을 옮겨 붙인다.

수줍음 따른 여인 붉은 뺨에 닿은 놀빛
살며시 눈을 뜨고 그 옛날을 그려 보는 
향긋한 화전놀이로 설레는 꿈 달래는가.

자갈밭 펄쩍 뛰면 더욱 곱게 피는 마음
멀찍이 그리움이 아지랑이 위로 뜰 때
피 흩는 두견 울음을 산에 남겨 놓으리. 
                                                  -졸시 ‘진달래’ 전문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성덕여왕 때, ‘수로’(水路)라는 절대 미희(美姬)가 강릉태수로 가는 그 남편 ‘순정공’(純貞公)을 따라 강릉 임소로 동행하는데, 따뜻한 봄날에 그네 일행이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는 것이 어느덧 한낮이 되었고 해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때 여기저기 살펴보니 바로 그 곁에 높은 돌벼랑이 병풍처럼 바닷가를 둘렀는데 여러 백장(百丈)이나 되는 그 정상에는 철쭉꽃이 난만하게 피어 손의 눈을 이열(怡悅)하게 하였다. 애화벽(愛花癖)이 있는 수로부인은 철쭉을 보고 웃음을 띠며 그 꽃 한 가지를 꺾어 오라고 종자들에게 명하였으나 너무 준급(峻急)한 절벽이라 어느 사람도 감히 꺾어 오지 못하였다. 그러더니 마침 어떤 노인이 암소를 끌고 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환심(歡心)을 사려고 하여 그러함인지 그는 모르되 위험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나는 새도 좀 해서는 접족(接足)하기 어려운 석장(石嶂)으로 기어 올라가서 철쭉을 꺾어다가 그 부인에게 드리고 아울러 가사(歌詞)까지 바쳤다고 한다.」

 이는, 문일평(文一平)의 화하만필(花下慢筆)에 씌어 있는 글이다. 그 노인의 ‘노래’는 대략 이러한 내용이다. ‘보랏빛 바위 옆에 끌고 온 암소를 놓아두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를 일컬어 ‘헌화가’(獻花歌)라고 하는데, 신라향가(新羅鄕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꽃이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튼 ‘수로부인’은, 그 모습이 아름답기도 하였겠지만, 그 이름이 뜻하는 ‘물길’(水路)이라는 말처럼 마음이 아주 부드러웠을 게 분명한 일이다. 여기에서 ‘상선약수’라는 말이 다시 한번 강조된다.
 ‘철쭉’이라는 말은, 이 나무의 중국 이름인 ‘척촉’(躑躅)에서 유래되었는데, ‘척촉’의 뜻은 ‘가던 길을 더 걸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면서 서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나무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인지, 이 나무가 독을 지녔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일명 ‘양척촉’(羊躑躅)이라고도 부른다. 이 말은, ‘어린 양이 철쭉의 붉은 꽃봉오리를 보고 어미 양의 젖꼭지로 오인하여 빨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었다.’라는 말이라고 전한다.
 철쭉은 진달랫과의 낙엽 관목이다. 산지에 흔히 자란다. 높이는 4미터 정도가 된다. 잎은 거꾸로 된 달걀꼴이고 어긋난다. 그러나 가지 끝에서는 돌려난 모양을 나타낸다. 5월에 진달래꽃과 비슷한 깔때기 모양의 연분홍 꽃이 5개 내외씩 가지 끝에 달리며,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등에 분포한다. 다시 말해서 철쭉은 만주와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동아시아지역의 고유한 식물이다. 일명 ‘산객’(山客)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철쭉은 북한의 고산지대를 비롯하여 전국의 크고 작은 산에서 널리 자생하고 있다. 그러나 중부 이남 지역에서는 비교적 지대가 깊고 높으며 서늘한 산속에서만 자란다. 한편, 제주도와 울릉도 및 대마도에서는 철쭉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산철쭉’(Rhododendron yedoense var. poukhanense)은, 우리나라 중부와 서부의 남쪽에 나지만, 제주도가 원산지라고 한다. 바람 많고 돌 많은 제주도를, 봄 한철 동안 산철쭉이 진분홍빛으로 덮어 버린다. 
 ‘철쭉’과 ‘진달래’는 서로 떼어 놓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깝다. 키도 비슷하고 꽃도 비슷하다. 그러나 진달래는 잎이 피기 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초봄에 산에서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철쭉은 꽃이 필 때 잎도 나와 있으므로 진달래보다 한 달이나 한 달 반쯤이 늦어진다. 그렇듯 차례를 지키니 다툼이 없고(不爭) 그 까닭에 허물도 없다(無尤). 노자의 말처럼.
‘진달래’라는 이름은, ‘달래꽃은 달래꽃인데 그보다 더 좋은 꽃이다.’라고 해서 생겼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그 꽃의 빛깔이 달래꽃보다 더 진하다.’라고 하여 ‘진’ 자가 붙었다는 설이 있다.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진달래를 한명(漢名)으로는 ‘두견화’(杜鵑花)라고 한다. ‘두견’은 새 이름이다. 이 새의 다른 이름으로는, ‘자규’(子規) ‘불여귀’(不如歸) ‘두백’(杜魄) ‘촉조’(蜀鳥) ‘촉백’(蜀魄) ‘시조’(時鳥) 등이 있다. 이유인즉슨 두견새가 한에 맺힌 울음으로 피를 토해서 그 피로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었기 때문이란다. 
 여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중국 촉나라 임금 ‘망제’(望帝, 이름은 杜宇)는 왕의 자리를 ‘별령’(鼈靈)에게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 후 ‘망제’는 다시 왕의 자리를 되찾으려고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로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해마다 봄이 되면 슬피 울었고, 그 울음소리를 들은 촉나라 사람들은 ‘망제의 혼이다.’라고 말했다. 
 철쭉과는 달리, 진달래는 가지에 잎이 어긋나게 붙는다. 예외는 있지만, 철쭉보다 잎이 좁고 긴 편이다. 진달래에도 몇 가지 변종이 있다. 
 즉, 꽃빛깔이 흰 ‘흰진달래나무’(for. albiflorum)가 있으며, 작은 가지와 잎에 털이 있는 ‘털진달래’(var. ciliuatum)가 있는가 하면, 잎이 넓은 길둥근꼴 또는 둥근꼴인 ‘왕진달래’(var. latifolium)도 있다. 그리고 잎의 표면에 사마귀 같은 게 보이는 ‘반들진달래’(var. maritimum)가 있으며, 열매가 가늘고 긴 ‘한라산진달래’(var. tiquetii )까지 있다. 진달래는 산간 양지에 나는데, 키는 3미터 정도까지 자란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만주, 중국 및 몽고 북부와 우수리, 그리고 일본에도 분포한다. 철쭉보다 분포지역이 넓다.
 먼저 피는 진달래꽃은 먹을 수가 있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따 먹었다. 그러나 연달래꽃은 먹지 않는다. 독이 있기 때문이다. ‘연달래’가 바로 철쭉이다.(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