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19장,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18. 13:07

길- 제19장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 나라 사람에게 ‘보탬이 됨’이 백 곱절이나 늘어나게 되고, ‘어짊’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나라 사람에게 ‘아들딸이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과 ‘어버이가 아들딸을 아껴 키우는 마음’이 다시 돌아오게 되며, ‘약삭빠름’을 끊고 ‘보탬이 됨’을 버리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게 된다.
이 세 가지는 헤아려 보건대 글이 모자란다. 그런 까닭에 딸린 곳을 있게 하니, ‘깨끗함’을 보고 ‘수수함’을 껴안아서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하고자 함’을 줄여야 한다.


絶聖棄智 民利百倍 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有. 此三者 以爲文不足.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절성기지 민리백배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 차삼자 이위문부족. 고영유소소속 현소포박 소사과욕)

[뜻 찾기]
 ‘절성기지’(絶聖棄智)에서 ‘성’은 ‘거룩함’이라고 했으며 ‘지’를 ‘슬기로움’이라고 했다. ‘성’은 ‘성인’(聖人)을 생각했기 때문이고, ‘지’는 ‘슬기’ ‘지혜’ ‘슬기롭다’ ‘지혜로운 사람’ ‘꾀’ ‘모략’ ‘알다’ 등의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과 ‘지’는 ‘썩 잘하는 재주를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민복효자’(民復孝慈)에서 ‘효자’는 제18장에서의 풀이와 같게 하였다. 즉, ‘효’는 ‘아들딸이 어버이를 섬기는 마음’이고, ‘자’는 ‘어버이가 아들딸을 아껴 키우는 마음’이다. 또, ‘절교기리’(絶巧棄利)에서 ‘교’는 ‘기교’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교’는 ‘공교하다’ ‘교묘하다’ ‘예쁘다’ ‘약다’ ‘재주’ ‘겉치레’ ‘꾸미다’ ‘거짓말’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약다’를 택하여 ‘약삭빠름’이라고 풀었다.
 ‘차삼자 이위문부족’(此三者 以爲文不足)은 참으로 그 풀이가 힘들다. 왕필의 설을 보면, ‘삼자’는 ‘성지(聖智)와 인의(仁義)와 교리(巧利)’를 가리킨 것으로 보고 있다. ‘문’은 ‘문식’(文飾)의 뜻이니 ‘문화의 빛’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성지와 인의와 교리를 아주 잘 끊어 버리면 문식이 부족하게 되고 세상이 무미건조하여져서 백성들이 마음 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므로 그들에게 소박한 것을 보여 주어서 거기에 속하게 하자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기록을 보니, ‘이위문부족’이 ‘글로 표현해도 부족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를 택하여 ‘헤아려 보건대 글이 모자란다.’라고 했다. 그리고 ‘현소포박’(見素抱樸)에서 ‘소’는 ‘희다’ ‘생초’ ‘흰 깁’ ‘질박하다’ ‘본디’ ‘평소’ ‘바탕’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희다’를 택하여 ‘깨끗함’이라고 풀었다. 그리고 ‘박’은 ‘천진한’ ‘본래의’ ‘다루다’ ‘다듬다’ ‘성실하다’ ‘순박함’ ‘질박하다’ ‘질소함’ ‘근본’ ‘근원’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순박함’을 골라서 ‘수수함’이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절교기리 도적무유’(絶巧棄利 盜賊無有, 약삭빠름을 끊고 ‘보탬이 됨’을 버리면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지 않게 된다.)라는 말에 꼭 어울리는 나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가죽나무’(Ailanthus altissima)이다. ‘가죽나무’는 한자로 ‘저’(樗)라고 쓴다. 이는 ‘쓸모없는 나무’라는 뜻이다.

침묵한다. 하지만 부글부글
속이 끓는 불쾌가
불거진 사마귀의 냄새로 되었다.

아무리 잘난 이라도
나쁘다 나쁘다 자꾸 외면
못난이가 되는 법

비교하지 마라
살과 피의 사랑보다 더한 
네 그늘을 생각한다.

땀 흘리며 살려는 열정과
높게 바라보는 진실을
하늘나라의 나무는 알고 있다.
-졸시 ‘가죽나무’ 전문

 가죽나무는 ‘쓸모없기’ 때문에 이 나무를 도둑질해 가는 사람이 없었는가. 아마도 우리 주위에서 큰 ‘가죽나무’를 볼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듯도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나무를 ‘꺽다리 나무’라고도 한다. 
 조선조 때, 선비들이 ‘저력지재’(樗櫟之材)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즉,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이 “가죽나무 같은 쓸모없는 재질로 남다른 은혜를 입었으니 가슴 속 감명을 어찌 다 하겠습니까?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보답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며 임금 앞에서 허리를 굽혔다고 전한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