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20장, 쓸데없는 배움을 끊어 버리면(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2. 18. 21:04

길- 제20장

쓸데없는 배움을 끊어 버리면





 쓸데없는 배움을 끊어 버리면 근심이 없다. ‘예’와 ‘응’은 서로 떨어짐이 얼마나 되는가. ‘착함’과 ‘모짊’은 서로 떨어짐이 어떠한가. 
 다른 사람이 꺼리는 것을 꺼리지 않을 수 없으니 거칠어서 그 가운데가 아직 자라지 않았구나. 뭇사람이 기뻐하고 기뻐하여 소나 양의 고기가 그득한 잔칫상을 받는 것 같고, 봄날에 높이 지은 다락집을 오르는 것 같다. 나는 홀로 머무르는데 그 낌새가 아직 없어서 마치 갓난아기가 아직 웃지 않는 것 같으며, 나른하고 고달픈데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
뭇사람은 모두 남는 게 있는데 나만 홀로 모자란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인 양, 빙빙 돌고 도는구나. 예사로운 사람들은 밝고 밝지만 나만 홀로 어둡고 어둡다. 예사로운 사람들은 똑똑하고 똑똑하지만 나만 홀로 마음이 답답하고 답답하다. 조용하여 그게 바다와 같고 흘러가서 그침이 없는 것 같다.
 뭇사람이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만 홀로 어리석고 너절하기만 하다. 내가 홀로 남들과는 다르게 ‘어머니에게 먹을 것 얻음’을 빼어나게 여긴다. 

絶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善之與惡 相去何若. 人之所畏 不可不畏 荒兮 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 其未兆 如嬰兒之未孩 儽儽兮 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遇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飂兮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선지여악 상거하약. 인지소외 불가불외 황혜 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향태뢰 여춘등대 아독박혜 기미조 여영아지미해 래래혜 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담혜기약해 료혜약무지.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뜻 찾기]
 ‘절학무우’(絶學無憂)에서 ‘학’은 ‘쓸데없는 배움’을 이르는 성싶다. 아무것이나 마구 배운다고 무엇이 좋겠는가. ‘유지여아’(唯之與阿)에서, ‘유’는 ‘예.’하고 정중하게 대답하는 것이고, ‘아’는 ‘응.’하고 얕잡아서 대답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여기에 따랐다. 
 ‘기미앙재’(其未央哉)에서 ‘앙’은 ‘진’(盡)과 같은 뜻으로 ‘다하다’(盡也)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글자의 뜻대로 ‘가운데’라고 풀었다. 그리고 ‘여향태뢰’(如享太牢)에서 ‘태뢰’는 ‘나라의 큰 제사에 제물로 쓰는 소와 양 등을 가리킨 말’이라고 하며, 여기에서는 ‘소나 양 따위의 맛 좋은 고기’를 가리킨다고 한다. 나 또한 이 뜻을 따랐다. 그런데 문제는 ‘래래혜’(儽儽兮)이다. 이는, ‘나른한 모양’이나 ‘고달픈 모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기록에는, 이를 ‘류류혜’라고 읽으며 그 뜻을 ‘맥이 풀려 있는 모양’이라고 풀이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승승혜’(乘乘兮)라고 되어 있어서 그 뜻을 ‘태연히 달리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나는 앞의 풀이에 따라서 ‘나른하고 고달프다’라고 했다.
 ‘돈돈혜’(沌沌兮)는 ‘아무런 변별(辨別)이나 분석함이 없는 어리석은 듯싶은 모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빙빙 돌고 돈다.’라고 풀었다. 잘 알려져 있기로는, ‘찰찰’(察察)은 ‘밝고 자세한 모양’ 또는 ‘빈틈없고 분명한 모양’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민민’(悶悶)은 ‘사리에 어두운 모양’이고, ‘담혜’(澹兮)는 ‘담담하고 안정된 모양’이며, ‘료혜’(飂兮)는 ‘흘러가는 모양’이라고 한다. ‘료혜’가 ‘적혜’(寂兮)라고 되어 있는 기록도 있다.
 맨 끝의 ‘이귀식모’(而貴食母)는 다른 문헌에 ‘이귀구식어모’(而貴求食於母)라고 되어 있기도 한데, 나는 이를 ‘어머니에게서 먹을 것 얻음을 빼어나게 여긴다.’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기미조 여영아지미해’(其未兆 如嬰兒之未孩, 그 낌새가 아직 없어서 마치 갓난아기가 아직 웃지 않는 것 같다.)라는 구절을 읽다가 나는 문득 한 나무를 생각했다. 바로 ‘개나리’(Forsythia koreana)이다. 개나리처럼 ‘갓난아기’ 같은 꽃이 또 있을까? 게다가 아직 터지지 않은 꽃망울을 볼 때마다 갓난아기가 막 배냇짓을 하려는 성싶은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새벽에 잠에서 깬 부리 노란 여러 말들, 조잘거린 꽃잎들이 호호 웃음 달고 와서, 세상의 온갖 어둠을 멀리 쫓아 버린다.

마음이 여린 이가 시 한 편을 읽는 봄날, 갈증 난 목을 푸는 보슬비가 내리는데, 가슴이 젖을 때마다 그리움은 피어난다.

힘겨운 고갯길에 안개 걷고 보는 얼굴, 잊었는지 감감하던 소식 한 장 날아들면 임이여 그대 목소리 세운 잎에 맴돈다.
-졸시 ‘개나리’ 전문   

 ‘개나리’는 ‘언뜻 보면 작기는 하지만 나리꽃과 닮긴 닮았다고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개’라는 글자는 ‘좀 못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개나리는 물푸레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이다. 높이는 3미터 내외이다. 땅에서 많은 줄기가 올라와서 한 포기를 이룬다. 어린 가지는 초록빛이지만 차츰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며 긴 길둥근꼴로 위쪽에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 이른 봄에 잎에 앞서 노란 꽃이 잎겨드랑이에 1~3개씩 핀다. 9월에 길쭉한 열매가 갈색으로 익는다. 열매는 ‘연교’(連翹)라고 하여 약용으로 쓴다. ‘연교’는 성질이 차고 종기의 고름을 빼거나 통증을 멎게 한다. 특히 살충 및 이뇨의 내복약으로 많이 쓴다. 번식은 씨뿌리기로 하는 외에 꺾꽂이나 휘묻이로 한다. 흔히 울타리용으로 심고,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