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 제53장
나에게 조그마한 앎이 있어서
나에게 조그마한 앎이 있어서 커다란 길을 걸어가게 한다면 오직 ‘주고 쓰는’ 바로 이것을 두려워하리라.
커다란 길은 매우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지만 나라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임금이 있는 곳은 집 앞이 매우 깨끗하다. 나라 사람이 일구는 밭은 아주 풀이 우거졌고 곳간으로 지은 집은 텅텅 비었다. 아름다운 무늬의 옷을 입고 좋은 칼을 찼으며 실컷 음식을 먹고 돈과 물건을 남도록 가졌으니, 이를 일러 ‘도둑질하여 큰소리친다.’라고 일컫는다. 길이 아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대도심이 이민호경.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과. 비도야재!)
[뜻 찾기]
‘사아개연유지’(使我介然有知)에서 ‘개연’은 ‘사소한’ 또는 ‘조그마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도 이를 따라서 ‘조그마한’을 택했다. 그리고 ‘유시시외’(唯施是畏)에서 ‘시’(施)는 ‘시위(施爲)하다’, 다시 말해서 ‘인위적으로 시설작위(施設作爲)함’을 이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인위적인 시정(施政)’이라는 풀이도 있다. 너무 어렵다. ‘시’(施)는 ‘베풀다’ ‘주다’ ‘쓰다’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위하다’와 뜻이 통하게 ‘주고 쓰는 것’이라고 풀었다. 그리고 ‘외’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삼가고 조심하다’ ‘두려움’ ‘꺼리다’ ‘으르다’ ‘위협함’ ‘죽다’ ‘활의 굽은 모양’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두려워하다’를 골랐다.
‘이민호경’(而民好徑)에서 ‘경’은 ‘지름길’ ‘논두렁길’ ‘길’ ‘곧다’ ‘쉽다’ ‘작은 길’ ‘빠르다’ ‘지나다’ ‘지름’ ‘곧바로’ ‘바로’ ‘말미암다’ ‘건너다’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지름길’을 택했다. ‘호경’은 일반적으로 ‘바르지 못한 지름길을 좋아함’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조심제’(朝甚除)에서 ‘조’는 ‘아침’ ‘처음’ ‘조정’ ‘왕조’ ‘때’ ‘마을’ ‘관청’ ‘조회하다’ ‘조회 받다’ ‘정사’ ‘정치하다’ ‘왕조’ ‘찾아보다’ ‘뵙다’ ‘부르다’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조정’을 골라서 ‘임금이 있는 곳’이라고 풀었다. ‘조’는 일반적으로 ‘나라의 조정’ 또는 ‘궁실’을 뜻한다고 한다. ‘제’는 ‘소제’(掃除)라는 뜻으로 ‘깨끗한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제’는 ‘덜다’ ‘섬돌’ ‘층계’ ‘길’ ‘뜰’ ‘정결한 제단’ ‘깨끗하다’ ‘결백함’ ‘나누다’ ‘나눗셈’ ‘벼슬’ 등의 뜻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 ‘깨끗하다’를 선택했다. 그래서 ‘집 앞이 깨끗하다.’라고 풀었다. 그리고 ‘전심무’(田甚蕪)에서 문득 나는 ‘야무’(野蕪)를 떠올렸다. ‘야무’는 ‘들에 풀이 우거짐’을 말한다. 그렇다면 ‘전무’(田蕪)는 ‘밭에 풀이 우거짐’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를 잡았다. 또, ‘복문채’(服文綵)에서 ‘문채’는 ‘무늬 있는, 아름다운 비단’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시위도과’(是謂盜夸)에서 ‘도과’는 ‘도둑질하여 사치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길(道)이 아닌 데에서 얻은 사치이기 때문이다. ‘과’는 ‘자랑하다’ ‘큰소리치다’ ‘아첨하다’ ‘연약하다’ ‘아름답다’ ‘크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큰소리치다’를 골랐다. 그래서 ‘도과’를 ‘도둑질하여 큰소리친다.’라고 풀었다.
[나무 찾기]
‘대도심이 이민호경’(大道甚夷 而民好徑, 커다란 길은 아주 바닥이 고르고 판판하지만 나라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한다.)에서 나는 ‘오리나무’(Alnus japonica)를 생각한다.
농부의 손등처럼 깊게 패어 있는 주름, 길게 누운 그림자를 눈 적시며 따라가면, 온 산을 가슴에 안고 결이 삭는 모국애.
선 자리 메말라도 움켜쥐고 사는 뿌리, 하늘로 높이 들고 뒤흔드는 깃발처럼, 그 넋은 산길을 돌며 메아리가 되는가.
이제 좀 쉬라는 듯 검은 밤이 찾아오면, 서로들 기대고서 꿈을 꾸는 숨결들을, 달빛이 시린 강물에 보람으로 띄운다.
-졸시 ‘오리나무’ 전문
시골로 가면 길가에 이정표로 심어 놓은 오리나무를 만날 수 있다. 예전에는 몇십 리를 걷는 일은 다반사였다. 학교에 다녀오는 길만 하여도, 이 오리나무 너더댓 그루를 훌쩍 지나야 집에 닿곤 했다.
오리나무는, ‘예전에 이정표로 삼기 위하여 오리마다 이 나무를 심은 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한명(漢名)으로도 ‘오리목’(五里木)이라고 한다.
오리나무는 자작나뭇과의 갈잎넓은잎큰키나무이다. 산과 들의 습한 땅에 나는데, 높이가 20미터까지 이른다. 말하자면 두메의 산골짜기에서도 만날 수 있고 숨이 차는 고갯마루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이며 잘게 세로로 갈라져서 비늘처럼 된다. 잎은 어긋나며 길둥근꼴 또는 바소꼴이고 잎의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양면에 광택을 지닌다. 뒷면 잎맥 겨드랑이에 적갈색 털이 모여 나고 끝이 뾰족하다. 암수한그루이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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