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59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3. 18:35

베풂- 제59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아껴 씀과 같은 것은 없다.
 무릇 오로지 ‘아끼는 것’을 가리켜서 ‘일찍 뜻에 따름’이라고 일컬으며, ‘일찍 뜻에 따름’을 가리켜서 ‘두껍게 쌓은 베풂’이라고 한다.
 ‘두껍게 쌓은 베풂’은 이기지 못하는 것이 없다. ‘이기지 못하는 것이 없음’은 그 끝을 아는 게 없다. ‘그 끝을 아는 게 없음’은 말 그대로 틀림없이 나라를 가질 수 있다. ‘나라를 가진 어머니’는 말 그대로 틀림없이 멀리 오래 갈 수 있다.
 이를 가리켜서 ‘가는 뿌리가 깊고, 굵은 뿌리가 단단하다.’라고 일컫는다. ‘멀게 살고 오래 보는 것’의 길이다.

治人事天 莫若嗇. 夫唯嗇 是謂早服 早服 謂之重積德. 重積德則無不克 無不克則莫知其極 莫知其極 可以有國 有國之母 可以長久. 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치인사천 막약색. 부유색 시위조복 조복 위지중적덕. 중적덕즉무불극 무불극즉막지기극 막지기극 가이유국 유국지모 가이장구.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


[뜻 찾기]
 ‘막약색’(莫若嗇)은 ‘검소한 것만 같지 못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막’은 ‘없다’ ‘멀다’ ‘아득하다’ ‘쓸쓸하다’ ‘어둡다’ ‘안정되다’ ‘잃다’ ‘장막’ ‘막’ ‘깎다’ ‘조용하다’ ‘힘쓰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없다’를 골랐다. ‘색’은 ‘아끼다’ ‘탐하다’ ‘거두다’ ‘아껴 쓰다’ ‘농사’ 등의 뜻이 있다. 왕필(王弼)은 여기에서 ‘농사’를 택했다. 그러나 나는 ‘아껴 씀’을 골랐다.
 ‘시위조복’(是謂早服)에서 ‘조복’은 ‘일찍 자연의 도리에 복종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복’은 ‘옷’ ‘의복’ ‘옷 입다’ ‘일하다’ ‘좇다’ ‘잡다’ ‘행하다’ ‘복 입다’ ‘약 먹다’ ‘직책’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좇다’를 골라서 ‘뜻에 따르다’로 풀었다. 그리고 ‘위지중적덕’(謂之重積德)에서 ‘중적덕’은 ‘거듭 무위의 베풂을 두텁게 살아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저 ‘두껍게 쌓은 베풂’이라고 했다.
 ‘막지기극’(莫知其極)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끝없이 이기므로 그 끝남을 알지 못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유국지모’(有國之母)에서 ‘모’는 ‘근본’을 이른다고 하는데, ‘중적덕’을 가리킨다고 한다.
 문제는 ‘시위심근고저’(是謂深根固柢)에서 ‘근’과 ‘저’이다. 이 둘의 차이는 대체 무엇일까? 둘 모두가 ‘뿌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어느 문헌을 보니, ‘근’은 ‘가는 뿌리’이고 ‘저’는 ‘굵은 뿌리’라고 씌어 있다. 나는 이를 따랐다. 또, ‘장생구시지도’(長生久視之道)에서 ‘구시’는 ‘오래도록 시식(視息)하는 것’을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시식’은 ‘생존’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나는 ‘구시’를 아주 쉽게 ‘오래도록 봄’이라고 했다.


[나무 찾기]
 ‘조복 위지중적덕’(早服 謂之重積德, ‘일찍 뜻에 따름’을 가리켜서 ‘두껍게 쌓은 베풂’이라고 한다.)에서 나는 눈앞에 ‘계수나무’(Cercidiphyllum japonicum)를 떠올린다.

달 안에 터를 잡아 세월 밖을 기웃거린
옥토끼 찧는 방아 젖어 슬피 출렁여도
멀찍이 두 눈을 감고 옛 추억이 떠간다.

보자기 펴 흔드는 그 얼굴이 그리 좋아 
바르게 사는 길을 일찍 짚어 따라가면
입 다문 서쪽 하늘이 붉은 놀에 물든다. 

단정한 모습으로 바람 앞에 서는 알몸
우거진 가지들이 짙은 그늘 내리는데
멀고 먼 유랑의 길에 가을밤이 시리다.
-졸시 ‘계수나무’ 전문

 계수나무는 계절의 뜻에 따라서 일찌감치 잎을 떨어뜨린다. 그 모습이 달에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자연의 순리에 일찍 따르는 게 ‘조복’(早服)이다. 이로써 계수나무는 베풂을 두껍게 쌓는다.
 계수나무는, 한자인 ‘계수’(桂樹)에서 왔다고 한다. ‘계’는 ‘나무 목’(木)과 ‘서옥 규’(圭)이다. 이는, 옛사람들이 달 속에 있다고 상상하던 ‘계수나무’의 상형문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 나무는 일본 원산이다.
 달만큼 우리에게 베풂을 쌓은(重積德) 존재는 없을 성싶다. 즐거울 때는 달을 쳐다보며 환한 웃음을 안았고, 슬플 때는 달을 바라보며 시린 눈물을 머금었다. 그런데 달 속에는 커다란 계수나무가 살고 있다. 그렇게 아주 오래전부터(早) 우리는 달에 마음을 의지해(服) 왔다. 그러므로 계수나무는 ‘꿈의 나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