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그리고 나무 찾기

제58장, 그 다스림이 어둡고 어두우면(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3. 12:34

베풂- 제58장

그 다스림이 어둡고 어두우면 





 그 다스림이 어둡고 어두우면 그 나라 사람은 깨끗하고 깨끗하며, 그 다스림이 살피고 살피면 그 나라 사람은 이지러지고 이지러진다.
 ‘뜻밖의 걱정’이여. 거기에 ‘흐뭇한 기쁨’이 기대어 있다. ‘흐뭇한 기쁨’이여. 거기에 ‘뜻밖의 걱정’이 엎드려 있다. 누가 그 끝을 알겠는가. 그 바름이 없다.
 바름은 다시 ‘거짓으로 함’이 되고 착함은 다시 ‘방정맞게 함’이 되거늘, 사람이 헷갈리게 된 것은 그날이 정말로 오래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는, 네모반듯해도 갈라서 찢지 않고 모가 나도 찔러서 다치게 하지 않으며 곧아도 거리낌 없이 말하지 않고 빛이어도 번쩍이지 않는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其無正. 正復爲奇 善復爲妖 人之迷 其日固久.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耀
(기정민민 기민순순 기정찰찰 기민결결.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기무정. 정부위기 선부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뜻 찾기]
 ‘기정민민’(其政悶悶)에서 ‘민민’은 ‘어두운 모양’ 또는 ‘어수룩한 모양’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민민’은 ‘무엇을 한다고 내세울 것이 없이, 그저 혼후(渾厚)하기만 한 상태’를 이른다고 한다. ‘민’은 ‘번민하다’ ‘마음이 답답하다’ ‘근심하다’ ‘어둡다’ ‘걱정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어둡다’를 택했다. 또, ‘기민순순’(其民淳淳)에서 ‘순순’은 ‘순후한 모양’ 또는 ‘소박한 모양’을 이른다고 한다. ‘순’은 ‘순박하다’ ‘깨끗하다’ ‘맑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깨끗하다’를 골랐다. 그리고 ‘기정찰찰’(其政察察)에서 ‘찰찰’은 ‘밝게 살피는 것’ 또는 ‘빈틈없이 분명하게 살피는 것’ 등이라고 한다. 나는 그냥 ‘살핀다.’라고 했다. 또, ‘기민결결’(其民缺缺)에서 ‘결결’은 ‘이지러진 상태’ 또는 ‘불만이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 나는 그저 ‘이지러진다.’라고 했다.
 ‘화혜복지소의’(禍兮福之所倚)에서 ‘화’는 ‘재앙’이나 ‘걱정’ 등의 뜻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뜻밖의 걱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복’은 ‘행복’이나 ‘성스럽다’ 등의 뜻이 있다. 그래서 나는 ‘흐뭇한 기쁨’이라고 했다. ‘기무정’(其無正)은, ‘그것은 바로잡는 일이 없는 정치’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는 왕필(王弼)의 설이다.
 ‘방이불할’(方而不割)에서 ‘할’은 ‘해치다’나 ‘쪼개다’로 많이 풀이하고 있다. ‘할’은 ‘나누다’ ‘쪼갬’ ‘가르다’ ‘갈라서 찢음’ ‘빼앗다’ ‘해치다’ ‘손상함’ ‘자르다’ 등의 여러 뜻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 나는 ‘갈라서 찢음’을 골랐다. 또, ‘염이불귀’(廉而不劌)에서 ‘귀’는 ‘상하게 하는 것’ 또는 ‘상처를 주는 것’ 등으로 풀이되곤 한다. 나는 그중에서 ‘찔러서 상처 나게 하다’를 골라서 ‘찔러서 다치게 하다’로 풀었다. 그리고 ‘직이불사’(直而不肆)에서 ‘사’는 ‘정면으로 부딪는 것’ 또는 ‘격돌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사’는 ‘방자하다’ ‘늘어놓다’ ‘거리낌 없이 말하다’ ‘죽이다’ ‘지나치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중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다’를 선택했다.


[나무 찾기]
 ‘직이불사 광이불요’(直而不肆 光而不耀 곧아도 거리낌 없이 말하지 않고 빛이어도 번쩍이지 않는다.)에서 나는 그저 불현듯 ‘산딸나무’(Cornus kousa)를 생각한다.

곁에 있는 줄이나 알았겠는가.

여러 나무 틈에 섞여서
그저 수수한 모습으로 눈 감고 있더니

6월 어느 날,
새하얀 옷깃을 눈부시게 내보이며
여학생 차림으로 나를 향해 웃는구나.

정녕 거기 그렇게 있었는가.

뜨거운 눈물이 왜 이리 어리는지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마냥 서 있다.
-졸시 ‘내 사랑 산딸나무’ 전문

 내가 지금 사는 곳은 관악구 인헌동이다. 바로 조금 남쪽으로 인헌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뒤로 돌아가면 바로 관악산을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나는 그곳에서 고등학교 여학생 차림을 하고 서 있는 산딸나무를 만났다. 아, 아름다웠던 고등학교 시절,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모습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산딸나무는, 보통 때는 숲속 어디에 묻혀 있는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의 첫사랑처럼. 그러다가 초여름에 크고 하얀 꽃을 피우게 되면 그때야 사람들은 저 나무가 거기 있었구나 하고 놀란다. 그러니 그동안 산딸나무는 빛을 지니고도 반짝임을 나타내지 않은 게 아니겠는가.
 산딸나무는, ‘열매가 마치 산딸기의 열매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붉게 익은 열매가 ‘산딸기’ 같다.[(이하 생략)글: 김 재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