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제17절, 왕이 된 자는 '공'이 이루어지면 '악'을 만들고(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3. 16. 18:34

제17절 왕이 된 자는 ‘공’이 이루어지면 '악'을 만들고
 
 王者功成作樂 治定制禮 其功大者其樂備 其治辯者其禮具 干戚之舞 非備樂也 孰亨而祀 非達禮也 五帝殊時 不相沿樂 三王異世 不相襲禮 樂極則憂 禮粗則偏矣 乃夫敦樂而無憂 禮備而不偏者 其唯大聖乎(왕자공성작락 치정제례 기공대자기락비 기치변자기례구 간척지무 비비락야 숙형이사 비달례야 오제수시 불상연락 삼왕이세 불상습례 악극즉우 례조즉편의 내부돈락이무우 예비이불편자 기유대성호). 

 왕이 된 자는 ‘공’(공적)이 이루어지면 ‘악’(음악)을 만들고 다스림이 정해지면 ‘예’(예절)을 제정했다. 그 ‘공’(공적)이 큰 것은 그 ‘악’(음악)이 갖추어지고, 그 다스림이 널리 미친 것은 그 ‘예’(예절)가 갖추어졌다. ‘방패’와 ‘도끼’의 춤은 갖추어진 ‘악’(음악)이 아니다. ‘생을 푹 삶아서 지내는 제사’는 다다른 ‘예’(예절)가 아니다. 5제는 시대를 달리해서 ‘악’(음악)을 서로 따르지 않았으며 3왕은 세상을 달리해서 ‘예’(예절)를 서로 덮치지 않았다. ‘악’이 다하면 곧 근심하고 ‘예’가 거칠면 곧 치우친다. 이에 무릇 ‘악’은 도타워서 근심이 없고 ‘예’가 갖추어져서 치우치지 않는 것은, 그가 오직 ‘대성’(대성왕)인가. (녹시 역)

 ‘시조’의 경우- <시조시인이 된 자는 ‘공’(공적)이 이루어지면 ‘시조 내용’(시조 작품)을 만들고 다스림이 정해지면 ‘시조 형식’(정형)을 제정했다. 그 ‘공’(공적)이 큰 것은 그 ‘시조 내용’이 갖추어지고, 그 다스림이 널리 미친 것은 그 ‘시조 형식’이 갖추어졌다. ‘쉼표’나 ‘물음표’ 등의 기호는 갖추어진 ‘시조 내용’이 아니다. ‘노래’는 다다른 ‘시조 형식’이 아니다. ‘시조창’을 하던 사람은 시대를 달리해서 ‘시조 내용’을 서로 따르지 않았으며 시조를 기록하던 사람들은 세상을 달리해서 ‘시조 형식’을 서로 덮치지 않았다. ‘시조 내용’이 다하면 곧 근심하고 ‘시조 형식’이 거칠면 곧 치우친다. 이에 무릇 ‘시조 내용’은 도타워서 근심이 없고 ‘시조 형식’이 갖추어져서 치우치지 않는 것은, 그가 오직 ‘대시조작가’인가.>

[녹시 생각]
 이 절에서는, 만일 그 ‘악’을 제정하면서 그 근본을 잃고 ‘소리와 모습’ 같은 말단만을 ‘다한다.’라고 할 때는 오히려 ‘화이’(和易)의 올바름을 해쳐서 근심하기에 이르며 ‘예’를 제정하면서 그 근본을 잃고 의식용 물건의 조잡함에만 힘을 쓸 때는 ‘충신’(忠信)의 알맹이를 잃게 됨으로써 치우침에 빠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조도, 만일 그 ‘시조 내용’을 지을 때 근본을 잃고 ‘괴력난신’과 같은 기교만을 다한다면 ‘화이’의 올바름을 해쳐서 근심하기에 이르며, ‘시조 형식’을 결정하면서 그 근본을 잃고 ‘교언영색’의 조잡함에만 힘을 쓸 때는 ‘충신’의 올바름을 해치게 됨으로써 치우침에 빠지게 된다.

 ‘괴력난신’이나 ‘교언영색’ 등은 논어(論語)에 담겨 있다. 즉, ‘논어’ 중의 ‘술이’(述而) 20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子 不語怪力亂神’(자 불어괴력난신) 이는, <‘공자님께서는 ’괴상한 것‘ ’완력으로 하는 것‘ ’어지러운 것‘ ’귀신 같은 것‘ 등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공자님께서는 ‘비이성적인 괴상한 것’이나 ‘비문화적인 무력을 시용하는 것’이나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나 ‘비현실적인 믿기 어려운 것’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라는 뜻이다. 시조에서도 그 내용에 이런 것이 들어 있다면 어찌 ‘수신’(修身)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논어’ 중의 ‘학이’(學而) 3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이는,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교묘하게 꾸민 말과 곱게 꾸미는 얼굴빛에는 ‘어짊’이 거의 없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교언’은 ‘남이 듣기 좋게 꾸민 말’을 나타내고, ‘영색’은 ‘겉으로 얼굴빛을 꾸며서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양을 떠는 것’을 가리킨다. 시조에서도 그 형식을 이런 뜻으로 만들었다면 이 또한 ‘수신’(修身)이 될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