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절 ‘악’이란 하늘땅의 고르고 따뜻함
樂者天地之和也 禮者天地之序也 和故百物皆化 序故群物皆別 樂由天作 禮以地制 過制則亂 過作則暴 明於天地 然後能興禮樂也(악자천지지화야 예자천지지서야 화고백물개화 서고군물개별 악유천작 예이지제 과제즉란 과작즉폭 명어천지 연후능흥례악야).
‘악’이란 하늘땅의 고르고 따뜻함이다. ‘예’란 하늘땅의 차례를 매김이다. ‘고르고 따뜻하기’에 여러 외물이 모두 자라고 차례를 매기기에 외물 무리가 모두 다르다. ‘악’은 하늘로 말미암아 만들어지고 ‘예’는 땅으로써 정하여졌다. 잘못 정하여지면(制) 곧 어지러워지고, 잘못 만들어지면(作) 곧 사나워진다. 하늘땅에 밝고(하늘땅의 도리에 밝고), 그런 다음에야 능히 ‘예’와 ‘악’을 일으키는 것이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시조 내용’이란 하늘땅의 고르고 따뜻함이다. ‘시조 형식’란 하늘땅의 차례를 매김이다. ‘고르고 따뜻하기’에 여러 ‘시적 소재’가 모두 자라고, 차례를 매기기에 ‘외적 소재’ 무리가 모두 다르다. ‘시조 내용’은 하늘로 말미암아 만들어지고 ‘시조 형식’은 땅으로써 정하여졌다. 잘못 정하여지면(制) 곧 어지러워지고, 잘못 만들어지면(作) 곧 사나워진다. 하늘땅에 밝고(하늘땅의 도리에 밝고), 그런 다음에야 능히 ‘시조 형식’과 ‘시조 내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녹시 생각]
여기에서 다시 주목할 곳이 있다. 즉, <‘시조 내용’은 하늘로 말미암아 만들어지고 ‘시조 형식’은 땅으로써 정하여졌다.>라는 구절이다. 하늘은 ‘자라게’ 하기에 그 모양이 다양하다. 그러나 땅은 ‘다르게’ 하기에 그 생김이 독특하다. 여기에서 ‘독특’은 시조 형식에서 ‘정형’(定型)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독특’에서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다음과 같은 공자님 말씀이다.
‘子曰 君子 無所生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 君子’(자왈 군자 무소생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읍 기쟁야 군자).[논어 팔일7] 이는, <공자님이 말씀하셨다. “군자는 겨루는 일이 없다. 반드시 활 쏘는 일뿐이다. 절하고 오르며 내려와서 술 마시니, 그렇게 겨루는 게 군자이다.”>
여기에서 ‘무소쟁’(無所爭)을, 일반적으로 ‘다투는 일’로 풀이해 놓았으나, 이는 ‘다투는 게’ 아니라 성공과 실패를 ‘가리는 것’을 말한다. 말하자면 ‘다 함께 이길 수도 있고 다 함께 질 수도 있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읍양이승 하이음’(揖讓而升 下而飮)은 ‘활을 쏘기 위하여 예의 바르게 서로 양보하며 당에 오르고, 활쏘기가 끝나면 내려오는데, 다시 당에 올라가서 활을 잘 쏜 사람이 실수한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을 이른다. 다시 말해서 ‘읍’은 ‘두 손을 앞가슴에 올리고 절하는 것’이요, ‘양’은 ‘양보하는 것’이요, ‘승’은 ‘당에 올라가서 활을 쏘는 것’이요, ‘음’은 ‘활쏘기에서 잘 쏜 사람이 실수한 사람에게 술을 먹이는 일’이다. 말하자면 ‘위로’ 내지 ‘격려’의 술이다.
활쏘기나 시조 짓기가 모두 ‘수신(修身)의 방편(方便)’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시조 내용(내재율)에는 ‘유곡절해’(流曲節解)가 있다. 이를 활쏘기에 비유해서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뽑는 게 바로 ‘흐름’이고 그 화살을 활시위에 거는 게 ‘굽이’이며, 그 화살과 함께 활시위를 당기는 게 ‘마디’이고 힘껏 당겼던 활시위를 과녁을 향하여 놓는 게 바로 ‘풀림’이다. 이렇듯 우리 시조는 그 가형(歌形)이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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