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뱀처럼
김 재 황
기척이 없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발을 지니지 않았으면서도
빠르게 그늘진 곳을 찾아서 떠난다,
그 몸이 길고도 또 길기에
한 장소에 점잖게 머물려고 하면
똬리를 틀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잠을 즐기는 듯싶지만
언제나 차게 의식은 깨어 있고
단숨에 먹이를 삼키려는 욕망도 크다,
두 갈래의 혀를 그토록 자주
빠르게 널름거리는 까닭은 바로
제 감각을 더욱 갈고 다듬으려는 것인가,
좋은 계절에는 그 몸이 자라므로
이따금 허물을 벗고 새로워져야 한다,
몸 빛깔이 하얀 게 최상이라는데
내가 목격한 놈들은 모두 먹빛이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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