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악기론

제67절, '악'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역: 녹시 김 재 황)

시조시인 2022. 4. 2. 13:21

제67절 ‘악’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

 故樂也者 動於內者也 禮也者 動於外者也 樂極和 禮極順 內和而外順 則民瞻其顔色 而弗與爭也 望其容貌 而民不生易慢焉 故德輝動於內 而民莫不承聽 理發諸外 而民莫不承順 故曰 致禮樂之道 擧而錯之 天下無難矣(고악야자 동어내자야 예야자 동어외자야 악극화 례극순 내화이외순 칙민첨기안색 이불여쟁야 망기용모 이민불생역만언 고덕휘동어내 이민막불승청 리발제외 이민막불승순 고왈 치례락지도 거이착지 천하무난의).  

 “그러므로 ‘악’(음악)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예’(예절)이라는 것은 마음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악’(음악)은 ‘서로 응함’(和)에 극진하고 ‘예’(예절)은 ‘고분고분함’(順)에 극진하다. 마음속이 ‘서로 응하고’ 마음 밖이 ‘고분고분하다.’면 곧 백성이 그 얼굴빛을 우러러보고 서로 다투지 않으며, 그 얼굴 모양을 바라보니 백성은 경박하고 태만함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풂의 빛남이 마음 안에서 움직이고 그래서 백성이 삼가 받지 않을 수 없으며 바른 도의 조리가 겉에 나타나니 백성이 삼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예와 악의 길을 이루어서 온 세상에 들어 편다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어렵지 않다.’라고 했다.” (녹시 역)

 ‘시조’의 경우- <“그러므로 ‘시조 내용’이라는 것은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시조 형식’이라는 것은 마음 밖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시조 내용’은 ‘서로 응함’(和)에 극진하고 ‘시조 형식’은 ‘고분고분함’(順)에 극진하다. 마음속이 ‘서로 응하고’ 마음 밖이 ‘고분고분하다.’면 곧 백성이 그 얼굴빛을 우러러보고 서로 다투지 않으며 그 얼굴 모양을 바라보니 사람들은 경박하고 태만함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베풂의 빛남이 마음 안에서 움직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삼가 받지 않을 수 없으며 바른 도의 조리가 겉에 나타나니 사람들이 삼가 고분고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시조 형식과 시조 내용의 길을 이루어서 온 세상에 들어서 편다면 (온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라고 했다.”>

[녹시 생각]
 이 절은 ‘예’와 ‘악’의 취지를 미루어 그 효과를 극론(極論)하고 있다. 즉, ‘예’와 ‘악’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잠시도 몸에서 떠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시조야 말로, ‘시조 내용’과 ‘시조 형식’을 수레의 두 바퀴처럼 잠시도 몸에서 떠나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보조를 잘 맞추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형식은 조이고 그 내용은 넓혀서’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절제가 없는 자유는 흔히 방종에 흐르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이렇듯 안팎이 튼튼한 시조가 이 땅에 가득 생겨난다면 이 땅의 앞날은 쉽고 밝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