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조

지리산국립공원/ 김 재 황

시조시인 2023. 6. 17. 06:38

[국립공원 기행] 편

 

                지리산국립공원

 

                                          김 재 황


골짜기 어린 샘은 옹알이를 들려주고
원시로 향한 길에 눈인사를 받노라면
천왕봉 깎인 이마가 고난시대 내보인다.

연분홍 봄소식이 때를 맞춰 찾아와서
메아리 여린 순이 돋아나는 신록 위에
철쭉이 절로 지도록 제석봉을 태운다.

물소리 흐르다가 주춤거린 낭떠러지
오히려 부서져서 곱게 걸린 무지개여
쌍계사 큰 종소리에 불일폭포 흔들린다. 

구름이 머문 산정 펼쳐지는 넓은 초원
바람에 몸을 맡겨 춤사위에 얹힌 채로
노고단 감싼 원추리 자꾸 입이 째진다.

깊숙이 숨은 목숨 여민 옷깃 나부끼고
꾀꼬리 노란 울음 감겨드는 칠선계곡
죽록차 연한 향기가 안개 속에 번진다.

서러운 사연들이 감돌아서 흐른 자락
섬진강 백사장을 신을 벗고 걸어 보면
역사도 몸을 묻는가, 조개처럼 밟힌다.

고향의 목화처럼 구름송이 활짝 피어
주름진 바위들을 손끝으로 간지를 때
연하봉 허한 가슴에 원시림은 우거진다.

눈 맑은 샘을 끼고 능선 위로 올라서면
그림자 길게 끄는 고사목은 삭아 가고
허공에 푸른 고요가 벽소령을 내세운다.

숨소리 지친 잎이 찬 이슬을 굴리더니
눈시울 짓무르게 온통 숲을 흔든 단풍
피아골 좁다란 길로 원색 물결 이끈다.

소중한 마음들이 눕고 있는 저녁 무렵
마지막 원한마저 용서하는 서녘이여
반야봉 실린 황혼이 흐른 꿈에 젖는다. 
                                        (2002년)

'오늘의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왕산국립공원/ 김 재 황  (0) 2023.06.19
월출산국립공원/ 김 재 황  (0) 2023.06.18
내장산국립공원/ 김 재 황  (0) 2023.06.16
변산반도국립공원/ 김 재 황  (0) 2023.06.15
덕유산국립공원/ 김 재 황  (0) 2023.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