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몸을 식히며 장거리를 난다
김 재 황
오래 전의 일이다. 맨 처음으로 운전면허증을 땄을 때, 어찌나 차를 타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끝내 중고차 한 대를 사고야 말았다. 차를 산 그날부터, 나는 꼭 가야 할 곳도 없으면서 공연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한참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심하게 풍겼다. 차를 세우고 밖에 나가서 조사해 보니, 팬벨트가 끊어져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자동차 엔진의 적정한 온도는 낮으면 60℃에서 높으면 90℃ 사이의 온도여야 한다. 그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동차에는 엔진의 과열을 막아 주는 온도 조절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즉, 라디에이터와 팬 등이 그것인데, 라디에이터에는 냉각수가 들어 있고, 팬에는 벨트가 걸려 있다. 그런데 이 팬펠트가 끊어져 버렸으므로 팬이 도는 일을 멈추었고, 팬이 돌지 않으니 라디에이터가 과열되었으며, 따라서 엔진도 뜨겁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동차의 과학적 구조에 감탄했다. 그리고 자동차를 만든 과학자를 존경했다. 하지만 그 후에, 물새들에게도 열조정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얇은 막으로 된 호흡기관의 하나로, 기낭(氣囊)이라고 하며, 보통 9개 이상을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약삭빠르게 새의 구조를 모방하여 자동차의 온도 조절장치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창조주의 솜씨를 흉내낸 것이 결코 이 기낭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철새들은 참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한 예로, 흑두루미가 철 따라 이동하는 경우를 살펴보면, 번식지인 바이칼호, 아무르강, 우수리강 등지에서 월동지인 우리나라까지 2,000㎞ 정도를 날아야 한다. 흑두루미는 보통 9월 하순경에 번식지를 떠나며, 우리나라와 일본에 도착하는 데는 약 30일이 소요된다고 한다.
6,25전쟁이 끝난 이후,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는 1987년에 경북 고령에서 관찰된 350마리가 최대의 무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최근 가고시마 이즈미 지방으로 7천여 마리나 되는 흑두루미떼가 해마다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이들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흑두루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았는데, 참으로 장관이었다.
그들 흑두루미 중에 일부 무리는 우리나라를 거쳐서 북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니, 이들은 일본의 이즈미 지역에서 우리나라까지 400㎞ 정도를 쉬지 않고 날아야 한다. 흑두루미가 나는 속력을 시속 60㎞로 계산한다고 하여도 7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이렇게 날려면, 날개의 근육운동은 얼마나 심할 것이며, 또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열이 발생될 것인가. 그 열을 그때그때 식히지 않으면 그 새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그 일, 즉 공냉 엔진의 역할을 그 때에 기낭이 담당하게 된다. 기낭은 새의 한쪽 폐에 연결되어 있다. 새가 날아갈 때, 이 기낭이 밖의 공기를 빨아들여서 얇은 막면을 이용하여 수분을 증발시킨다. 그렇게 해서 큰 기화열을 방출함으로써 체온의 상승을 막고, 정상적인 체온인 40℃ 정도를 유지시킬 수 있게 해준다.
사람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런 장치가 없다. 먼 거리를 달릴 때에 사람은 모두가 큰 고통을 느낀다. 그렇기에 올림픽 경기에서 마라톤에 참가한 건각들의 모습이 우러러보인다. 그 고통을 이기고 42.195㎞를 완주했을 때, 우리는 박수를 아끼지 않게 된다. 바로 그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