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산문4

시조시인 2005. 9. 16. 00:39
‘박새’라는 이름의 식물과 동물이 있다
- 김재황



이름은 중요하다. 좋은 이름을 지닌 사람은 우선적으로 좋은 인상을 준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동명이인(同名異人)도 많다. 물론, 같은 이름을 지닌 사람이 또 있다는 게 즐거울 리는 없다. 그러나 그 중에 한 사람이 유명해지면, 다른 사람도 덩달아서 잘 기억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연 속에도 같은 이름을 지닌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박새’이다. 즉, ‘박새’라는 이름을 지닌 식물이 있는가 하면, ‘박새’라는 이름을 지닌 동물도 있다. 이 둘은 내가 볼 때에 모두가 똑 같이 아름답다.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나는 대암산의 고층습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일명 ‘용늪’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기후의 변천이나 식생을 비교하는 데 아주 좋은 지표가 된다. 그 날, 용늪에 살고 있는 식물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으려니까, 약간 가파른 능선을 따라 넓은 박새 숲이 나타났다. 그 커다란 잎들을 삐죽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힘차 보였다.

이 ‘박새’는 백합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1m가 넘는데, 곧게 서며 속이 비어 있다. 잎은 촘촘히 어긋매껴 나고, 끝이 뾰족하게 넓은 타원형이며, 평행맥을 지닌다. 게다가 귀엽게도 잎가장자리는 밋밋한데, 잔털이 돋았다. 잎의 크기는, 길이 30㎝에 나비는 20㎝ 정도이다. 꽃은 여름에 피고, 지름 25㎜의 연한 황백색이다. 생김새는 매화(梅花)를 닮았다. 수꽃과 암꽃이 있고, 여섯잎꽃이며, 6개의 수술과 3개의 암술머리를 지닌다. 이 작은 꽃들이 줄기 끝에 원추화서(圓錐花序)로 밀생한다. 또, 열매는 길이 2㎝ 정도의 삭과(蒴果)이고, 윗부분이 3개로 갈라진다.

이 박새의 뿌리줄기와 뿌리에 제르빈(Jervin), 루비제르빈((Rubijervin), 프세우도제르빈(Pseudojervin), 프로토베라트린(Protoveratrin), 베라트린(Veratrin) 등의 알칼로이드를 함유한다. 이는, 최토(催吐)와 살충의 효능이 있다. 적용질환은, 가래가 목구멍에 막히는 증세, 오래된 학질, 황달, 이질, 옴 등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하나의 박새는 날아다니는 ‘새’이다. 날개길이는 7㎝ 정도이고 꽁지길이는 6㎝ 가량으로 참새만한 크기이다. 그러나 참새는 나무가 없는 들판이나 야산에 주로 사는 반면, 박새는 고목과 같이 큰 나무가 많은 숲을 즐겨 찾는다. 그 이유는 박새의 집이 숲에 있기 때문이다. 즉, 박새는 보금자리를 오래된 나무구멍에 튼다. 부리가 딱따구리처럼 길지 않으니, 박새는 스스로 구멍을 파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새가 만들어 놓은 나무구멍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우거진 숲에는 그들이 깃들 나무구멍이 얼마든지 있다.

박새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 머리와 옆목 및 가슴은 금속광택이 나는 검은 빛이다. 또 뺨에는 흰 색의 큰 무늬가 있다. 그리고 등은 황록색이고, 날개는 흑회색에 한 개의 흰 띠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몸의 아랫부분은, 흰 색에 가슴으로부터 꽁지까지 검은 띠가 둘려 있다. ‘독립 만세’를 크게 외치던, 우리나라 여인들의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가 연상된다. 박새는 텃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 많고, 사할린이나 쿠릴 열도 및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깨새' 또는 백협조(白頰鳥), 사십작(四十雀), 임작(荏雀)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박새’라는 이름은 세련되지 않고 수수하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정감이 간다. 더군다나 꽃과 새가 그 한 이름으로 묶여 있으니, 이 어찌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겠는가. 이 땅의 텃새와 자생식물, 우리는 이 둘을 마음으로 껴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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