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산문6

시조시인 2005. 11. 3. 06:09

은어의 몸에서는 수박 냄새가 난다
 


 
 김 재 황


제주도 서귀포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강정’(江汀)이라는 곳에 이르게 된다. 바닥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이 강정천에는 은어가 서식한다. 내의 하류가 바다와 맞닿아 있어서 은어가 살기에 적당한 곳이다. 예전에는 은어를 홀치기로 잡은 다음, 초고추장에 찍어서 먹었다. 수박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러나 이제는 은어도 나라의 귀한 민물고기이므로 함부로 잡아서는 안 된다.

나뭇잎이 물드는 가을이 되면, 은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혼합되어 염분을 조금 지닌 하류로 내려가서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알에서 부화된 새끼 떼는 강물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서 겨울을 난다. 봄이 되면 새끼 떼는 다시 강물로 거슬러 올라와서 민물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은어의 삶은 1년으로 끝난다. 그래서 ‘연어’(年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은어는 바다에 있을 때와 강에서 살 때의 먹이가 서로 다르다. 바다에 살 때는 동물성 먹이를 먹지만, 강물로 올라와서는 식물성 먹이를 먹게 된다. 이를테면 바다에서는 코페포다(Copepoda)와 엽각류(葉脚類)라는 플랑크톤을 먹는 반면, 강에서는 남조류(藍藻類)와 규조류(硅藻類) 등의 담수조(淡水藻)를 먹는다. 담수조란 다른 게 아니라, 특히 여름철에 냇물 밑의 돌에 붙어 있는 ‘검은 이끼’를 가리킨다. 밟으면 미끄러운 그 이끼가 바로 민물에서의 은어 먹이가 된다. 이끼를 먹은 은어의 몸에서는 이끼의 냄새, 다시 말해서 수박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어를 ‘향어’(香魚)라고 부를 때도 있다.

은어 떼는 이끼가 잘 자란 곳을 발견하면 필사적으로 지킨다. 자기와 같이 이끼를 먹는 물고기를 철저히 쫓아낸다. 그러나 다른 먹이를 먹는 물고기에게는 관대하다. 은어 떼가 지키는 면적은 대략 3㎡ 정도이다. 그 곳의 먹이가 없어지면 상류로 이동한다. 그렇게 분수령까지 도달하여 암놈과 수놈이 작은 무리를 이루고, 가을이 되면 다시 하류로 내려와서 바다가 가까운 산란장으로 서둘러 떠나게 된다. 은어의 알 낳는 모습도 재미있다. 알 낳은 곳을 찾은 암놈은 몸을 약 20도 각도로 누이고는 지느러미를 사용해서 산란장소를 판다. 그러면 수놈들도 암놈처럼 몸을 누이어서 작업을 함께 돕는다. 마침내 지름 10㎝ 정도의 산란장이 만들어지면 암놈들이 먼저 알을 산란하고 수놈이 이어서 사정을 한다. 그렇게 산란과 사정이 이루어지면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그 위에 돌맹이를 물어다가 덮는다. 산란장은 실수할 때를 대비해서 두세 군데로 나누어 만든다. 지혜롭다. 수정된 알은 이틀 이내에 부화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할 일을 끝낸 어미는 아무런 미련 없이 그 목숨을 버린다.

일반적인 은어는 바다와 민물로 이동하며 산다. 그러나 민물에서만 살도록 한 예가 있다. 이를 ‘육봉은어’(陸封銀魚)라고 한다. 이런 육봉은어는 저수지를 바다로 알고, 저수지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강으로 생각하며 산다.

은어는 민물에서 살다가 바닷물로 들어가도 그 염분의 비중변화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몸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바닷물에서 양식한 은어의 표피는 자연산 은어의 표피보다 3배나 두껍고 또 점액세포도 많이 생긴다. 그러나 수온의 변화에는 민감한 듯이 보인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온이 20℃ 이상으로 오르면 은어는 그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눈 위는 노랗고, 아래턱은 푸르지만, 위턱이 하얀 빛인 은어. 그래서 ‘은구어’(銀口魚)라고도 부르는 은어. 최근(2004년)에 서귀포 지역의 어촌마을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 중에 ‘은어 및 습지생태 체험장 확충’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은어의 서식처가 오히려 훼손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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