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내 작품평1

시조시인 2005. 10. 1. 00:30

/김재황의 작품세계/


순수, 그 자성의 미학


김복근 (창원대 강사, 문학박사)



“목멱산(木覓山) 아래 멍청한 사람이 있는데, 어눌하여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성품은 게으르고 졸렬(拙劣)한 데다, 시무(時務)도 알지 못하며 바둑이나 장기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이를 욕해도 따지지 않았고, 이를 기려도 뽐내지 않으며, 오로지 책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 못하였다. ㅡ 중략 ㅡ 두보의 오언율시를 좋아하여, 끙끙 앓는 것처럼 골똘히 읊조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간서치(看書痴)’즉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해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2004. 정민, 미쳐야 미친다. pp.73~74)


  김재황의 작품과 저서를 읽으면서 조선조의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연상되었다. 이덕무(李德懋)는 책벌레로 알려져 있다.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중에도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다고 하며, 스스로도‘간서치(看書痴)’즉 책만 읽는 멍청이라고 불렀다.

  김재황은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춘문예에 도전을 하다 1987년에야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에 시조‘서울의 밤’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게 된다. 습작기간이 15년이나 걸려 스스로를 둔재(鈍才)라고 불렀다.‘간서치(看書痴)’와‘둔재(鈍才)’라고 칭하게 된 유사점이 이덕무(李德懋)를 연상하게 하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문학적 역정(歷程)과 주요 저서(著書)를 보면서 식물에 대한 해박함과 독서량(讀書量)을 엿볼 수 있어 현대판‘간서치(看書痴)’라고 부를 만한 시인으로 보여진다. 풀과 나무를 사랑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의 마음과 문학을 사랑하는 순수함, 그로 인한 삶의 곤고함이 자성(自省)의 미학(美學)으로 승화(昇華)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구마 푸른 줄기 기어가는 그 밭이랑

        우리들 지닌 마음 닮은 듯한 흙빛이다

        맨손에 속살로 닿아 따뜻함이 느껴지는


                     ㅡ 「황토의 노래」첫수


  흙은 생명이 나서 자라고 죽는 가장 구체적인 공간이다.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흙을 일종의 정령의 성격을 띤 것으로 생각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색깔을 붉은 색이라고 보았다. 집을 지을 때 벽이나 바닥에 황토를 칠하거나 동제(洞祭)의 제관(祭官)이 자기 집 마당에 붉은 흙을 뿌리는 것은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흙은 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의 영원한 고향이다.

  김재황의「황토의 노래」는 우리 민족의 선험적 체험을 노래한 신토불이의 詩다. 한국적 서정이 그대로 배어있는 토속적인 작품이다.‘고구마 푸른 줄기’가‘기어가는’‘밭이랑’을 보면‘따뜻함이 느껴지는’우리들의 마음 닮은‘흙빛’을 볼 수 있다. 집 가의 빈터에는 호박이 심겨져 있고, 멀리서 황소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정경은 우리의 시골 서정이 그대로 흘러넘치고 있다. 흙은 생명을 낳고 거두어들인다는 점에서 모성의 상징이 된다. 땅은 희망이고 기쁨이다. 순수한 자연의 상징이다.「황토의 노래」에서는 강한 생명력과 순수 서정을 느낄 수 있다.


        정성껏 지어야 한다, 밝은 빛 고이는 둥지

        편히 머물 네 시간이 아무리 짧다고 해도

        닦인 듯 반짝이는 숨결 남기고 떠나야 한다.


                               ㅡ 「고니」셋째수


  고니는 철새다. 몸집이 크며, 순백색이어서 아름답고 우아하다. 시베리아 동부에서 번식하며, 겨울에 중국과 한국, 일본으로 날아온다. 그들은 홀로 날기를 좋아하여 흔히 고고한 선비에 비유되기도 한다.

  고니는 시인이 염원하는 또 다른 초상이다. 화자는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 시인이다. 화자는 고니가 되어‘모여 앉기 좋은 자리 잘 마른 갈대숲 찾아/옳은 일이 모두 뵈는 물빛 가슴을 꿈’꾼다. 눈 오는 하늘을 비상하는 고니의 모습은 여유롭다. 넓게 펼쳐진 하늘에‘가벼운 깃을 얹고,'‘두 다리’에 힘을 주어‘흰 구름을 밀어’내면서‘멀찍이 두고 온 호수 안고 웃는 임의 소식’을 기다리게 된다. 하얀 눈이 내리는 하늘을 하얀 색 고니가 하얀 구름을 밀어내며 날아가는 하얀 색 이미지의 연결은 고니가 날아온 시베리아의 색과 연결된다. 시인의 색채 이미지에 대한 의도적 구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따라올 임이 이곳에서 머무를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임을 위하여‘밝은 빛 고이는 둥지’를 만들려는 의지는 가열하다.


        넌 아직도 멋지지만 난 이미 낡아빠졌지

        여기 저기 찢어지고 꾀죄죄한 꼴이라니

        그래도 버리지는 마, 너를 위해 걸레가 될게.


                              ㅡ 「넝마」셋째수


  사람은 옷을 입고 산다. 과거에는 실효성 때문에 옷을 입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아름다움과 개성을 위해 입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위해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 옷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규정하고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형식이 되고 있다.

  현대인은 옷을 구입하는 데 상당히 예민하다. 하나의 옷을 고르는 데도 여간 신경이 쓰인 일이 아니다. 그런 어느 날 시적 화자는 쉽게 옷을 고르게 된다. 진열장의 그를 보고,‘참신한 곡선미와 깜직한 빛깔의 무늬’로 인하여 바로 선택을 하게 되고,‘둘은 하나가’된다. 마음에 드는 옷은 오래 입기 마련이다. 서로는‘많은 날들을’‘단짝’으로 지내게 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主)와 객(客)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가게 되면 옷은 헐게 마련이다. 주인이야 맵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더라도 옷은 낡게 마련이다.

  사람이 주(主)고 옷은 그에 종속된 객(客)이다. 그런데 시인은 3수(首)에 와서 묘한 패러독스를 하고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 인간은 오히려‘여기 저기 찢어지고 꾀죄죄’해져 가는데, 옷은 그대로이기에 오히려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한다. 우리 속담에‘노닥노닥 기워도 마누라 장옷’이라는 말이 있다. 옷은 인격이다. 자신은 넝마처럼 낡아지고 잇는데, 옷은‘참신한 곡선미와 깜찍한 빛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인은 화자와 청자의 위치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자신을 성찰하는 지혜를 묵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목숨보다 중하다고 늘 말하며 살았으나

        바람 앞에 섰을 때는 너무 초라한 내 깃발

        두 어깨 축 늘어뜨린 그림자를 끌고 간다.


                     ㅡ 「이름에 대하여」둘째수


  하늘의 별도 이름이 있고, 들녘에 피어있는 풀꽃에도 이름이 있다. 이름을 통해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파악한다. 이름은 사물의 실체를 나타낸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오랫동안 같이 해 온 자신의 이름이 한 몸을 이루지 못하고 낯설게 다가올 때도 있다. 밤마다 자신을 찾아 되뇌어 보기도 한다.

  현대를 흔히 익명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의 내 이름은 초라하여‘바람 앞에’서도‘어깨’를‘늘어뜨린 그림자를 끌고’가게 된다. 그러나 바르게 살다 보면‘가난한 내 가슴’에도 밝은‘눈’은 뜨이게 될 것이고, 흙탕물 같은 세상에서도 내 이름은 연꽃처럼 오롯하게 피어오를 것이라는 염원을 닮고 있다.

  우리는 이름을 통해서 존재를 볼 수 있다. 화자는 이 작품에서 사물이 있고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잇고 사물이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참 작은 입술이다 하늘 볼에 입맞추는

        종알종알 입김 서린 세상 밖의 이야기들

        가까이 내 귀를 당겨서 소곤대고 있구나


        너무 큰 눈짓이다 온 우주와 눈맞추는

        송이송이 눈길 실린 세월 속의 웃음꽃들

        멀찍이 모두 나앉은 채 반짝이고 있구나.


                    ㅡ 「그 작은 별꽃이」전문


  깔끔한 한 편의 동시조(童時調)다. 동시조(童時調)는 詩이면서 동시(童詩)와 현대시조가 되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안고 있다. 시심(詩心)은 동심(童心)이며, 동심(童心)은 순수하다. 동시조(童時調) 순수 정서와 미적 쾌감, 현장 체험적 감각이 어우러진 창조적 심상(心象) 표출(表出)과 절제(節制)와 응축(凝縮)의 형식 처리 등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살아가는 첨단 사회의 어린이들에게 현실을 수용할 수 있는 소재의 다양화와 생활 체험에 의한 시적 변용이 요구된다.

  김재황의「그 작은 별꽃이」는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작은 입술’로‘하늘 볼’에 입을 맞추고,‘세상 밖의 이야기’를 소곤대는 작은 미감에서‘큰 눈짓’으로‘우주와 눈맞추는’,‘세월 속의 웃음꽃들’반짝이는 큰 미감으로 발전하고 있다.

  어린이의 생활과 심리 변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접근, 유희적(遊戱的) 제재(題材)에서의 탈피(脫皮), 동심(童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고정 관념의 타파(打破)를 볼 수 있는 새로운 형상화(形象化)의 경향(傾向)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어린이를 단순한 독자로 보지 않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로서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김재황의 작품은 순수하다. 꾸밈이 없다. 현란한 기교를 보이거나 과시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중량감 잇는 남성적 톤을 볼 수 있다.

  앞에서 나는 김재황을‘현대판 간서치(看書痴)’라 하였다. 다상량(多商量)에 의한 독서(讀書)와 그 독서(讀書)를 바탕으로 한 시작활동(詩作活動)은 갈수록 빛을 더하게 될 것이다. 김재황의 포에지에서 인간은 자연에 불과하다.  풀과 나무를 사랑하며,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의 마음과 문학을 사랑하는 순수함, 그로 인한 삶의 고단함이 자성(自省)의 미학(美學)으로 승화(昇華)되고 있다. 그는 순수를 염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왔다. 그의 시조(時調)는 생명 존중의 세계관과 자연 사랑의 인식에 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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