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음성을 굴리는 향유
김 재 황
마음이 순수하니 저리 앳된 모습일까
부드럽게 뜨는 눈과 향기롭게 열린 입술
가을의 넓은 가슴에 그 이름을 새긴다.
―졸시 ‘향유’
부드러운 털이 돋아, 어린 티를 묻히고 있네. 감미로운 입을 열어, 앳된 음성을 굴리고 있네. 외로움과 그리움이 저토록 순한 얼굴로 노을에 물들고 있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순수를 간직한 자태가 향기를 머금고 있네. 모두를 사랑으로 이끄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있네.
향유(香薷)는 이제 화초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화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향유는 꿀풀과에 딸린 한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분포하며 산과 들판의 풀밭이나 길가 등에서 자란다. 키는 60cm쯤 된다. 줄기는 네모져 있고, 마디마다 좌우로 가지를 치며, 온 몸에 부드러운 털이 돋았다. 마주난 잎은 알꼴이다. 끝이 뾰족하고 가에는 무딘 톱니를 지닌다.
9월부터 10월에 걸쳐서 꽃이 핀다. 꽃은 잔가지 끝에 작은 꽃이 여러 개가 달려서 이삭꼴을 이룬다. 모든 꽃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질서를 보이며, 활같이 휘어진다. 꽃은 원통꼴. 그 끝은 입술 모양이다. 꽃턱잎은 원꼴이고 뒷면은 털이 없으나, 가장자리에 짧은 털이 있다. 수술은 4개, 꽃부리 밖으로 조금 튀어나온다. 꽃은 연한 자줏빛이다. 이 들꽃과 가까운 종류로는 ‘꽃향유’와 ‘가는잎향유’ 등이 있다.
향유는 열매와 모든 풀 포기를 약재로 쓴다. 한방에서는 ‘향여’(香茹)라 부른다. 열이 나거나 땀이 날 때에 먹으면 좋고, 위를 편하게 해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향유는 강한 향기를 지녔다는 특징이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향기는 중요하다. 다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으로 맡고, 먼 세월까지 그 향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옛날, 신라에 강수(强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을 잃고 도리를 깨우쳤다. 그는 젊어서 벼슬에 올라서 여러 관직을 거쳤지만, 조금도 사리사욕을 지니지 않았다. 그는 임금의 뜻을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이고 먼 중국에까지 서한으로 잘 전달하여 강화를 맺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가 먹을 게 궁핍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왕이 좁쌀 일백 석을 하사하려 했다. 그러자, “이미 혼자된 몸이 어찌 다시 후사를 받으오리까?”하고, 강수의 아내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 부부는 모두 향유처럼 삶의 진한 향기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