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다시 민통선 북방으로 가다

시조시인 2005. 11. 9. 07:31
 

다시 민통선 북방으로 가다.


                                                        김 재 황


  철원과 김화, 그리고 평강을 잇는, 이른바 철의 삼각지대(三角地帶). 나는 국방부에서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1차에 이어 5년 만에 그 일각을 이루는 철원평야를 다시 보기 위해 마음이 먼저 달렸다.

  4월 29일 11시경, 우리는 육군 6사단 사령부에 도착하였다. 그 유명한 ‘청성부대’가 바로 이 곳이다. 사단장 이하 여러 장교들이 나와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영내에는 이미 벚꽃이 진 상태였고, 그 대신 개나리와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철통 같은 경계는 물론이요, 자연보호에도 힘쓰고 있다는 사단장의 말에, 우리는 더욱 든든한 믿음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이 마련해 준 점심식사를 즐겁게 마친 후, 우리는 안내 장교를 따라 민통선 북방지역으로 향했다.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 중류의 승일교를 건너, 조금은 번화한 철원군 갈말읍 문예리를 지났다. 왼쪽으로 일명 ‘포병고지’로 불리는 빈장산이 보였다. 들판에는 이따금 논갈이를 하고 있는 농민들이 있었는데, 모두들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안내 장교는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으로 우리를 반기는 것은,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하얗게 웃고 있는 조팝나무들이었다.

  먼저, 우리는 동막리 포사격장을 들러서 155미리 곡사포의 위용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그 우렁찬 사격의 포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귀로 들었다. 그 곳을 떠나 다음으로 찾은 부대는 수색대대였다. 그들은 비무장지대로 들어가서 매복근무를 수행하는 씩씩한 장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이 보여주는 특공무술에, 우리는 믿음에 찬 박수를 보냈다.

  다음의 방문지는 제2 땅굴이었다. 여전히 차창 밖에서는 조팝나무들이 하얗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쪽 좌측으로 한국전쟁 당시에 무수한 포탄이 날아와 떨어짐으로써 그 높이가 3미터나 낮아졌다는 이이스크림고지가 보였다. 도중에 토교저수지도 만났다. 이는 인공저수지로서 둘레가 16킬로미터이며, 넓이는 여의도와 비슷하다고 했다. 철원에서 가장 큰 저수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2 땅굴에 도착하여, 우리는 안전모를 쓰고 굴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았다. 약간 허리를 구부리고 걸었다. 그러나 적군이 침투를 감행한다면 하루에 대군이 이동할 수 있는 넓이라고 했다. 바닥에는 물이 질퍽거렸고, 온 내부는 모두 바위로 되어 있었는데, 돌을 깬 흔적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해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땅굴의 총 길이는 3.5킬로미터라고 하며, 휴전선 북쪽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쪽으로 1.1킬로미터까지 파고 들어왔다 한다.

  제2 땅굴의 견학을 끝내고, 이어서 청송OP로 이동했다. 도착해 보니, 철책이 무겁게 앞을 가로막았다. 청송OP는 남방한계선 안쪽으로 200미터쯤 자리를 잡았다. 고지에서 앞을 바라보았다. 정면으로 고암산이 솟았고, 왼쪽으로 백마고지와 피의능선이 앉았으며, 오른쪽으로 밀양호와 서방산이 보였다.

 우리는 군부대에서 지급해 준 철모와 군복을 착용하고, 4개조로 나뉘어서 전방소대로 투입되었다. 전방 장병들과 함께, 1식 3찬의 저녁을 먹었다. 실로 30년만에 먹어 보는 감회가 컸다. 옛날에 비한다면 지금은 진수성찬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언덕을 오르려니까, 길가의 풀 숲에서 둥굴레가 꽃망울을 열고 귀엽게 웃고 있었다. 경계근무로 들어가기 전에, 소대장으로부터 점검을 받는 소대원들의 복창 소리가 철조망을 따라 퍼지며, 밤은 서서히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이튿날,  4월 30일은 날이 밝았다. 우리가 묵은 곳은 ‘철의 삼각 전적관’이 세워진 ‘고석정’ 근처였다. 새벽에 일어나, 고석정을 찾았다. 고석정은 바로 임꺽정이 기거했다는 곳이다. 계곡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는 몇 그루 소나무가 돋았다. 마치, 하나의 수석을 보는 경이로움을 지녔다. 그러나 그 주위가 너무나 정돈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저분한 배까지 띄워 놓아서 절경을 망치고 있었다. 계곡 이곳 저곳에서, 임꺽정의 단심인 듯, 철쭉꽃이 눈시울을 붉혔다.

 아침 9시, 우리는 월정리역을 향해서 차를 달렸다. 월정리역은, 지금은 신탄역에서 중단된, 경원선의 역 중에서 가장 휴전선에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모든 역 중에 최북방에 위치한 역이 된다. 원래는 150미터 북방에 있었으나, 지금은 남방한계선 남쪽으로 옮겨서  전시하고 있다.

 여전히, 월정리역의 끊어진 철길 옆에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철마가 녹슬고 있었고,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씌어진 입간판도 청진까지 653킬로미터가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못 가고 있는 평강의 실향민들을 위해, 나는 또다시 망향비 앞에 서서 긴 묵념을 올렸다. 주위에 피어난 민들레와 흰민들레들마저도 망향가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월정리역을 떠나서 좌측 길로 접어들었다.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밖으로 넓은 평야가 펼쳐졌다. 맑은 도랑이 여기 저기에서 흘렀다.

지명은 대마리로, 모두 남대천의 지류들이다. 남대천은 민물고기의 천연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갈겨니' '종개' '묵납자루' '돌고기' '쉬리' '새미' '참마자' '배가사리' '가는돌고기' '큰납자루' '참종개' '다목장어' '줄납자루' '버들치' 등이 개체수는 적으나 비교적 풍부한 종 분포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전에 1차로 왔을 때는 직접 물에서 많은 우렁이를 만났고, 묵납자루와 버들치 등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번의 방문은 생태조사가 아니었으므로 그럴 수가 없었다.

 철원은 내륙지방이면서 지대가 높기 때문에 기온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지형적으로 바람을 받는 지역이 되어서 비가 많이 내리므로 우리나라 3대 다우지역에 해당되며 특히 여름에 강우량이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물이 풍부하고 저수지들도 많다. 철새들의 도래지로, 두루미가 해마다 찾아온다. 그로 인해, 샘통은 그 일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지나가면서 보니까, 강산저수지가 열려 있었다. 이 곳 또한 인공 저수지라고 한다.

 백마고지 전적지에 도착했다. 맨 먼저 우리는 위령탑 앞에 서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 두 손을 모은 형상의 전적비를 바라보며 야트막한 언덕을 올랐다. 그 곳을 지나서 조금 더 오르니,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승전각이 놓여 있고, 그 안에 큰 종이 매달려 있었다.

 울컥, 종이라도 한 번 쳐보고 싶었지만, 일정한 때에만 타종을 하게 되어 있다고 하여 마음을 진정시켰다. 북녘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많은 포탄이 떨어졌던지, 그 파괴된 흔적이 백마처럼 보인다 하여 그 이름을 얻은, ‘백마고지’가 멀리 놓여 있었다. 우측으로는 대성산이요, 좌측으로는 공작새능선이 있다. 백마고지는 분계선 남쪽 비무장지대에 위치하며, 전적지까지는 대략 1킬로미터의 거리가 된다. 주위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철쭉꽃이 그 날의 처참한 상황을 말하고 있는가. 45세로 요절한 김종오 장군의 넋이 다시 꽃으로 피어났는가. 이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우리는 모두 말없이 차에 올랐다.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행문10  (0) 2005.10.15
기행문9  (0) 2005.10.05
기행문8  (0) 2005.09.30
기행문7  (0) 2005.09.29
기행문6  (0) 200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