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

붉은 입술 열리는 병꽃

시조시인 2006. 6. 14. 08:02

 

 

                                      붉은 입술 열리는 병꽃

          

                                                                                                     김 재 황


                                   산바람 한 자락을 족두리로 얹어 놓고

                                   산안개 얇게 펴서 면사포로 두른 아침

                                   홀연히 열리는 입술 긴 이야기 듣는다.

                                                                      --졸시 ‘병꽃


 병꽃나무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잎겨드랑이에 조롱조롱 매달려서 나팔 모양으로 피어나는 꽃. 병꽃나무는 그 종류가 많다. 즉, 병꽃나무를 비롯해서 ‘노랑병꽃’ 붉은병꽃‘ ’색병꽃‘ ’삼색병꽃‘ 골병꽃’ ‘축자병꽃’ 통영병꽃‘ 등이 있다.

 병꽃나무는 인동과에 딸린 떨기나무이다. 많은 줄기가 밑에서 나온 다음, 큰 포기를 이룬다. 5월경에 끝이 5개로 갈라진 꽃을 피운다. 그 꽃이 보기에 따라서 ‘병’을 닮았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 병꽃나무의 꽃은 처음에는 황록색 꽃을 보이지만, 나중에는 붉은 빛으로 변한다. 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잎의 색깔이 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가 관악산에서 찍은 위의 사진은 처음부터 붉은 빛이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기로는 ‘붉은병꽃’으로 여겨진다. 아무튼 산에서 꽃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옛날, 이야기 듣기를 밥을 먹듯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밤이면 마을 사랑방으로 나간 다음, 마을 사람들을 졸라서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도 그냥 두지 않았다.

 “좀 쉬었다가 가시지요.”

점잖게 불러 앉히고는 끝없이 이야기를 청해서 듣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술집에서 대폿잔을 건네며 나누는 이야기를 곁에 앉아서 엿듣는가 하면, 정자나무 그늘에서 노인들이 장기를 두며 나누는 이야기에 참견을 했다가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렇건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들으러 다녔다. 그런데 그에게도 걱정이 있었다. 그렇듯 많은 이야기를 듣기는 들었으나,   하도 많다 보니 잊어버릴까 봐 그게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궁리를 거듭하다가, 묘한 생각 하나를 떠올리고 무릎을 쳤다.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그가 들은 이야기들을 모두 병 속에 넣고는 마개를 꼭 닫은 다음, 전장에 매달아 놓기로 하였다.

 세월이 지날수록 천장에는 하나 둘  병이 늘어났다.  그리고 얼마 동안이 지나자, 천장에는 이야기가 담긴 병이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병을 매달기만 하였지, 그 병 중 하나도 열어보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니 병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은 얼마나 숨이 막혔겠는가.

 그의 재산을 물려받은 손자가 그 병들의 마개를 뽑자, 병 속에 갇혀 있던 이야기들이 시원히 주절주절 나오더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병꽃 앞에 서면, 많은 이야기들이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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