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김 재 황 지난 일 부끄러움 무엇으로 지우랴만바람 앞에 태극기를 세워 보는 마음이야저 뜰 안 낙상홍같이 뜨겁도록 불을 켠다. 또 못난 탓이라고 채찍질로 살았으나활짝 웃는 무궁화를 가득 안는 가슴에선더 높이 기러기처럼 가을 문을 새로 연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21
다시 경복궁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다시 경복궁에서 김 재 황 서러운 강물 곁에 산이 와서 토닥이고뼈대 시린 물소리가 저 하늘에 깊어지면서둘 듯 나무기둥만 동쪽으로 기운다. 가느다란 숨결이야 길을 따라 흘러가고몸을 틀면 언뜻언뜻 깊은 상처 보이는데또 한 번 소용돌이에 어지러운 하루여. 가슴 안을 비웠으니 숨길 것도 없겠으나눈과 귀를 모두 닫고 돌아앉은 마음 하나말 못할 그 속내평을 조심스레 짚는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20
다시 탑골공원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다시 탑골공원에서 김 재 황 거닐던 발소리는 저 밖으로 가버렸고고요만이 그 자리를 채워 가고 있는 지금누군지 그날의 외침 살려내고 있구나. 푸르게 나무들은 여름 입성 갖췄는데더위 맞은 문턱에서 더욱 추운 이내 마음어딘지 그분의 말씀 꼭꼭 숨어 있으리.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9
북한산 용문사 가는 길/ 김 재 황 [양구에서 사귀포끼지] 편 북한산 문수사 가는 길 김 재 황 저 높은 삼각산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박새며 딱새 등이 반갑다고 노래하니가쁜 숨 무거운 걸음 추스르며 오른다. 가는 길 가파르고 끝없는 듯 멀더라도차 향기 코끝으로 나풀나풀 날아들면갑자기 앞이 환하게 임의 동굴 떠온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8
북한산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북한산에서 김 재 황 늘 품고 살았지만 자주 찾진 못했는데모처럼 벗과 함께 좁은 산길 올라간다,하얗게 가파른 숨결 쉬엄쉬엄 누르며. 만나는 나무들과 눈짓으로 인사하고시원한 물소리에 더운 마음 씻어내면어느덧 높은 고개가 구부리고 앉는다. 얄따란 새 울음이 봉우리에 걸릴 즈음저만치 쭈뼛쭈뼛 다가서는 남문이여하늘도 그저 푸르게 가슴 열고 반긴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7
서울 조계사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서울 조계사에서 김 재 황 서울 안 한복판에 숨은 듯이 앉았기에바람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는데고깔 쓴 백송 한 그루 기나긴 꿈 엮는가. 깊은 산 아니어도 깨우침은 있는 것을구름이 기웃기웃 극락전을 엿보는데나이 든 회화나무가 큰기침을 열고 있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6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김 재 황 새파란 숨결들이 내가 되어 흐르는 곳몸과 몸이 맞닿으면 더욱 크게 빛을 내고가슴엔 둥둥 떠가는 옥잠화가 핍니다. 그 걸음 가볍기에 예쁜 여울 이루는데눈과 눈이 마주쳐서 아주 곱게 불을 켜고저마다 머리 뾰족한 버들치가 됩니다. 아무리 붐비어도 흐린 적이 없는 물길한옥들이 엎드리니 먼 산 단풍 활활 타고낮에도 아주 환하게 보름달이 뜹니다.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5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김 재 황 [양구에사 서귀포까지] 편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김 재 황 사람은 가끔가다 외로움을 지니니까그럴 때는 목마름에 여길 자주 찾는다만언제나 그저 덤덤히 길손 맞는 바람길. 나무들 기다림도 제가 절로 무너지듯지금 홀로 그림자를 마냥 끌며 걸어가네,누군가 버린 말들이 빈 발길에 차이고.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4
덕수궁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덕수궁에서 김 재 황 한창 젊을 때였던가, 바람 따라 들어가서벽오동 그늘 밑에 턱을 괴고 앉았는데참 붉게 꽃 피는 소리 내 가슴을 데웠니라. 늙고 나면 누구든지 잊는 일이 많다지만중화전 지붕 위로 구름 밖을 바라보니참 섧게 꽃 지는 소리 내 이마를 식히더라.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3
삼천포에서/ 김 재 황 [양구에서 서귀포까지] 편 삼천포에서 김 재 황 무엇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이끌었나,길고 먼 이야기는 바다에서 마냥 졸고이처럼 어떤 손이 날, 바람으로 밀었나. 섬들은 아이인 양 안개 속에 슬쩍 숨고하늘은 술래처럼 짙은 구름 안았는데왜 그리 이곳으로 난, 부리나케 달려왔나. 갈매기 몇 마리가 소식들을 놓고 간 후조그만 통통배들 지난 세월 되씹는가,도대체 저 연륙교는 무슨 인연 당기는지-. 불빛이 가슴 속에 뜨거움을 옮겨 주면가벼운 입술 모두 꽃인 듯이 피어나고그 누가 이곳에서 날, 못 떠나게 잡는가. (2011년) 오늘의 시조 202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