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쥬르, 나폴레옹

(10) 자, 덤벼라, 프랑스군아!

시조시인 2008. 9. 2. 00:39

(10)

어린 나폴레옹이 대포를 말처럼 타고 노는 곳에서, 지중해의 넓은 바다를 한 가슴에 안을 수 있습니다. 지중해(地中海)란, 서쪽은 지브롤터 해협으로부터 동쪽은 아시아 남서 해안에 이르며,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에 낀 내해(內海)를 말합니다. 중세에는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지배 아래에 있었고, 1869년에 수에즈 운하의 완성으로 무역에 있어서의 구실이 더해졌지요.

그 지중해 저 멀리에는 프랑스가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대포를 걸터타고 프랑스 쪽을 향하여 크게 소리쳤습니다.

“자, 덤벼라, 프랑스군아! 한 방에 무찔러 버릴 테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프랑스 나라가 있는 바다 저 쪽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한참동안’의 본뜻은 ‘역참’(驛站)에서 나왔습니다. ‘역참’이 고려나 조선조 때에 ‘역마를 바꿔 타던 곳’이라는 건 알지요? 그런데 ‘한참’은 ‘한 역참과 다음 역참 사이의 거리를 나타내는 말이었다가 나중에는 한 역참에서 다음 역참까지 다다를 정도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상당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을 이르는 말이 되었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을 그 어머니가 안방으로 불러들인 후에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짓고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심각’(深刻)은 ‘매우 중대하고 절실함’을 뜻합니다.

“얘야, 너는 흰 빵을 어디로 가지고 가니?”

나폴레옹은 멈칫하였습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게 없었으나, 말없이 어머니의 눈치를 한 번 살폈습니다. ‘가책’(呵責)은 원래 불교에서 쓰던 말이었습니다. 즉, ‘스님들이 수행하다가 잘못을 저지르면 여러 스님들 앞에 죄를 낱낱이 말하고, 거기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 옛적, 부처님의 제자 중에 ‘지혜’라는 비구니와 ‘노혜나’라는 비구니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들은 걸핏하면 서로 헐뜯고 싸웠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비구니들은 그들이 하는 짓을 부처님께 일렀고, 부처님은 모든 비구니들을 모아놓은 후에 두 비구니를 가책했습니다. 가책을 받은 두 비구니들은, 그 동안 비구니로서 행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권리와 자격들을 박탈당했으며, 거기에 준해서 가책이 풀어질 때까지 근신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날에도 ‘가책’은 ‘꾸짖어 책망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라든가 ‘양심의 가책이 된다.’ 등으로 씁니다.

어머니는, 혹시나 나폴레옹이 빵을 가지고 나가서 나쁜 일을 하지나 않는지, 노파심을 지닌 듯했습니다. ‘노파심’(老婆心)은, 글자 그대로 ‘할머니의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할머니는 아주 자잘한 일까지도 지나치게 걱정을 하곤 하지요. 어쩌다가 손자들이 밖으로 놀러 나가면 ‘조심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그렇게 하고서도 믿을 수가 없기에 문 밖으로 나가서 서성거리곤 합니다. 이처럼 지나친 걱정을 하는 모습이 곧 ‘잔걱정 많은 할머니의 마음과 같다.’는 뜻에서 이 말이 생겼답니다.

말썽 많은 어린이야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실직고’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다반사’(茶飯事)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흔히 있는 일’을 가리킵니다. 옛날에도 밥을 먹은 다음에는 차를 마시곤 했나 봅니다. 특히 불교에서 차(茶)와 선(禪)은 같다고 하여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요. 차 마시는 정신에 선이 있고 선에 드는 과정에 차의 도(道)가 통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차 한 잔 마시고 밥 한 그릇 먹는 그 속에 삼매(三昧)의 도가 들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다반사’는 ‘평소의 일 속에서 도를 깨우치기 위하여 불심으로 향하는 방법’을 일컫습니다. 그리고 ‘이실직고’(以實直告)는 ‘사실 그대로 바르게 말함’을 나타냅니다. 다른 말로는 ‘이실고지’(以實告之)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대답이 얼른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언성을 좀 높여서 엄한 얼굴로 다그쳤습니다.

“너는 코르시카의 어린이다. 그런데 너는 왜 우리의 적인 프랑스 군인에게 흰 빵을 주는 거니?”

여기에서 ‘빵’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떡을 해서 먹었으나, 외국 사람들은 빵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빵’은 ‘반죽한 곡식 가루를 굽거나 쪄서 굳힌 음식’입니다.

어머니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에는,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프랑스 군인에게 흰 빵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냥 주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 군인들이 먹는, 검은 빵과 바꾸는 겁니다. 그 사실을 어머니는 미처 몰랐던 겁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이덕보원’하는 줄로만 알았겠지요. ‘이덕보원’(以德報怨)이란,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이릅니다. (김재황)